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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도 180명이 단식투쟁”

등록 2007-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범국본에 파견돼 활동 중인 뉴욕 진보 모임 ‘재미협의회’의 임월산·김지형씨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미국 뉴욕에 ‘전쟁과 신자유주의 반대 재미협의회’라는 단체가 있다. 뉴욕에 있는 ‘노둣돌’ ‘청년연합’ 등 6개 진보적인 재미동포 단체들이 모인 조직인데, 미국의 시민사회단체 200여 곳도 이 협의회에 들어와 있다.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재미협의회도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처럼 미국 안에서 한-미 FTA 반대 싸움을 벌여왔다. 이 재미협의회 소속의 동포 청년 두 명은 아예 한국에 와 현재 범국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양국 민중들에게 이익 없어

임월산(31)씨는 서재필 박사와 함께 활동했던 재미 독립운동가의 3세로 뉴욕대학에서 박사 과정(한미관계사)을 마치고 1년 전 한국에 왔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에 온 그는 그동안 ‘평택미군기지이전 반대운동본부’에서 국제연대 일을 맡았고, 지금은 한-미 FTA 반대 싸움을 벌이고 있다. 임씨의 쌍둥이 동생도 재미협의회 상근 활동가라고 한다. “한-미 FTA 협상이 서울에서 열릴 때 미국 쪽 원정 투쟁단을 동생이 조직해 서울로 보내기도 했어요. 대다수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협상인데도 그동안 협상 내용이 거의 공개되지 않아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서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임씨는 자유무역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한-미 FTA는 초국적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것에 불과하고, 협상 내용만 봐도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이 아닙니다. 노동자나 양국 민중들한테도 이익이 되지 않는 협정이죠.” 그는 미국과 FTA 협상을 벌인 콜롬비아, 페루, 타이, 말레이시아 등에서 비준이 난항을 겪거나 협상이 중단된 사례만 봐도 미국과 맺는 FTA가 공정한 자유무역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멕시코 농민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대거 이민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거대 자본에 의해 멕시코 경제와 국민들의 삶이 완전히 파괴된 겁니다.”

임씨와 같이 범국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지형(32)씨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박사 과정(동아시아 역사) 학생이다. 김씨는 9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워싱턴·시애틀·몬태나 빅스카이 등 미국에서 한-미 FTA 협상이 열릴 때마다 반대 집회에 참가했고, 지난해 11월 한국에 들어왔다. 김씨는 “한-미 FTA 협상이 절차적으로 비민주적”이라며 “FTA는 몇 년에 걸쳐 준비하고 협상이 이뤄지는 것인데도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 시한에 너무 맞춘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 통해 단식투쟁 주도

그는 한-미 FTA 타결 내용 중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다. “NAFTA에서 미국이 캐나다·멕시코에 제기한 투자자-국가소송이 30여 건인데 미국이 진 사례가 한 번도 없어요. 이 제도 아래서는 한국의 환경·노동·공공 서비스 정책을 미국이 제한 없이 다 바꿔버릴 수도 있습니다.” 김씨는 “한-미 FTA는 단순히 관세를 철폐하거나 축소하는 무역협정이 아니고 한국의 사회적인 공공 서비스 체제를 시장의 경쟁 논리를 적용해 바꾸겠다는 협정”이라며 “국민들의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는 국가가 보호해줘야 하는데, 경쟁을 도입한다고 해서 꼭 성장이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고 또 성장의 과실이 국민들한테 평등하게 분배되는 것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한-미 FTA 홍보에 대해서도 장밋빛 일색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수출을 해야 한국 경제가 성장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신화’에 불과합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 시장을 지나치게 환상적으로 보고 있어요.”

국내에서 각계의 한-미 FTA 저지 단식투쟁이 이어지고 있는데, 김씨는 지난 3월25∼27일 미국에서도 180여 명이 한-미 FTA 저지를 위한 단식투쟁을 벌였다고 소개했다. 단식투쟁은 재미협의회가 온라인을 통해 주도하고, 미국 전역에서 재미동포와 미국 시민 등 180여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됐지만 두 사람은 더 바빠졌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각각 부분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FTA 협상 내용을 꼼꼼히 대조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국 정부가 공개한 내용 외에 또 다른 이면 합의가 있었는지를 찾아내고 폭로하는 일이 맡겨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예컨대 통신산업 개방의 경우 한국 정부는 외국인 간접투자(국내 법인 설립을 통한 투자)를 100% 허용해줬다고 발표했는데, 미국 쪽 협상 결과 자료에는 전화업체(phone company)는 오너십(ownership)을 가질 수 있다고 돼 있어 경영권 직접 소유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미국 쪽 활동가들과 긴밀히 연대해 한-미 FTA에 반대하는 미 의회 의원들을 조직화하기 위한 로비 활동도 우리가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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