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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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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라, 소나무여

등록 2007-03-30 00:00 수정 2020-05-03 04:24

저마다의 사연으로 소나무를 품은 ‘솔바람 모임’의 생태기행

▣ 예천·문경·충주=글·사진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난 3월18일 일요일 아침 전영우 교수(국민대 산림자원학과)는 집을 나서며 복분자술과 포도주 한 병을 챙겼다. 그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을 ‘소나무 사랑’으로 더불어 지내는 사람들과 함께 ‘자축’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5년 전 이날 아침 교수회의 자리에서 쓰러진 뒤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가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곧바로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다. 더 이상 암 환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기까지 4년9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12월 주치의에게서 “항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암 진단을 받은 뒤 휴직 상태에서 전국의 소나무를 만나기 시작했다. 소나무와 소통하고 교감하면서 신비로운 생기를 부여받은 듯하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소나무에서 나오는 솔향기의 청신한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전 교수는 인체의 종양을 말끔히 제거하는 데 소나무의 치유력이 작용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항암 치료와 강의·저술 활동, 현장 답사 등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소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솔바람 모임’(www.solbaram.or.kr) 회원들의 ‘동행’도 큰 힘이 됐다. 그들의 맑은 기운으로 ‘항체’가 형성될 수 있었으리라.

함께 떠난 ‘소나무 기행’의 인연

올해 세 번째 소나무 생태기행을 떠나는 길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었다. 미리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서 국제 마라톤이 열리는 바람에 대형버스를 다른 장소에 대기시켜야 했다. 전 교수가 준비한 ‘자축의 날’을 이심전심으로 알았는지,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경북 예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대부분 출범부터 함께한 솔바람 모임의 터줏대감들이었다. 이날 처음으로 소나무를 만나러 가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다가 일주일 뒤 돌아갈 예정인 일본 주루대학 변영호 교수(비교문화학) 가족도 포함됐다.

이처럼 전국의 소나무를 순례하는 솔바람 모임의 탄생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 교수는 2003년 한 일간지에 매주 1회씩 20주에 걸쳐 ‘소나무를 찾아서’라는 글을 연재했다. 항암 치료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화가 이호신씨와 함께 전국의 ‘명목 소나무’를 순례하는 연재물이었다. 이를 통해 소나무를 다시 보게 된 이들이 같은 해 가을 1박2일에 걸쳐 소나무 기행을 떠났다. 당시부터 함께한 출판기획자 남미은씨는 “이전에 숲과 문화 연구회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나무를 가까이하게 됐다. 소나무가 아름답다는 말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소나무 기행을 하면서 아름다움과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때의 기행을 계기로 다음해(2004) 2월 솔바람 모임이 정식으로 발족했다. 소나무숲과 명목 소나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널리 알리려는 것이었다. 덤으로 생활의 에너지와 예술적 영감 등도 챙길 수 있었다. 해마다 6회가량 진행되는 소나무 생태기행은 호젓한 오솔길만을 향하지 않았다. 구불구불 산길을 대책 없이 헤맨 끝내 소나무 앞에 서기도 하고, 벼락을 맞아 식물의 일생을 마감한 곰솔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때론 지적 갈증을 채울 기회도 마련했다. 원로시인 박희진 선생으로부터 소나무의 품격을 즐기는 방법을 배웠고, 변영섭 교수(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한테선 전통 회화에 나타난 소나무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구한말 ‘사산송계’ 결성해 소나무 관리

이미 소나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일까. 초보 소나무 답사자를 위한 ‘가르침’은 없었다. 아마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품는 것을 넘어서는 배움은 따로 없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경북 예천 용문면 상금곡리(금당실 마을)의 용문중학교에 들어서자 운동장 동편에 있는 ‘금당실 솔숲’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지난해 3월 천연기념물 469호로 지정된 금당실 솔숲은 50m 안팎의 폭에 800여m의 길이로 펼쳐져 있었다. 여기에 2천여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대부분 수령 120년 안팎인데 300년 이상의 것도 50여 그루나 됐다. 이 소나무숲은 마을의 휴식처로서 찬바람의 가림막 구실도 했다.

일행은 순식간에 저마다의 자리로 흩어져 소나무를 만났다. 현지에서 합류한 사진작가 장국현씨는 소나무 사이에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한 뒤 솔숲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렌즈에 담았다. 1년에 4개월씩 산에서 지내며 받은 산의 정기(精氣)를 솔숲에 풀어놓는 듯했다. 그 주변에서 한국화를 그리는 이영복·이호신씨 등은 스케치북을 앞에 놓고 빠르게 붓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튼실한 소나무를 껴안더니 “큰 어른을 만난 것 같다”고 했고, 다른 이는 굵은 소나무에 구멍을 낸 솔잎혹파리 방제 흔적을 바라보더니 “솔숲에서 어린 소나무를 찾을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때 전 교수는 한 무리의 탐방객들에게 ‘한국형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구한말 격변기에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솔숲의 울창한 소나무를 베어야 했던 마을 사람들이 ‘사산송계’(四山松契)를 결성해 소나무를 다시 심고 관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껏 유지되는 금당실 마을의 송계처럼 200여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서구의 내셔널트러스트보다 앞서 생태계 보존의 모범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이야기를 곁에서 듣고 있던 변영호 교수가 “조선시대에는 금벌정책만 있지 않았냐”고 질문을 던졌다. 국가적으로 나무를 심는 게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조선의 산림정책은 나무를 베어가지 못하게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며 “그때 심고 가꾸지 않으면서 산림이 황폐화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만일 많이 심는 사람에게 벌채할 자격을 주는 정책을 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산림 녹화사업은 성공 사례로 인정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녹화사업에 성공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독일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로 따지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임산물 연료 대신 화석연료가 쓰이고, 국토 녹화사업이 효과적으로 진행되면서 숲이 되살아날 수 있었다.

“마을의 주인이 소나무인 듯하다”

그야말로 금당실 솔의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조형미를 발산하고 있었다. 비단 굵고 기다란 때문만은 아니었다. 껍질마저도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기가 엄숙해서 나를 감싸더니 하나가 되는 듯하더라”는 말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보유자 이애주 교수(서울대 체육교육학)가 소감을 말하자, 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박희진 시인이 가만있지 않았다. “춤사위 많이 연구했어요?”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멀리에 있는 이 교수가 질문을 알아듣지 못한 듯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박 시인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춤추지 않는 소나무가 없다. 소나무를 제대로 살펴보면 새로운 춤사위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치듯 말했다.

울창한 솔숲의 쾌청한 정기를 느낀 솔바람 모임 사람들은 전 교수가 준비한 복분자술과 포도주를 반주로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 다음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마을에 있는 ‘부자나무’ 석송령(石松靈)을 향했다. 600여 년 전 마을 앞 석간천에 떠내려가던 어린 소나무를 건져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이 나무는 마치 용트림을 하는 듯한 신비로운 생김새가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석송령은 높이가 11m이고 밑동은 4.65m로 어른 세 아름을 넘으며, 보통 소나무 밑동보다 굵은 가지가 뻗어 있다. 1920년대 말 마을의 부자 노인이 자신이 소유한 토지 6600㎡(1400여 평)를 이 나무에 상속하며 등기까지 마쳤다.

이를 계기로 마을 사람들은 ‘석평동의 영험 있는 나무’라는 뜻의 석송령이라 이름짓고 석송계를 조직해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있다. 상속 재산으로 인해 세금도 납부해야 한다. 수령 500년 된 팽나무 ‘황목근’(黃木根·천연기념물 제400호)과 함께 인격체로 대접받는 희귀한 사례인 셈이다. 누구나 석송령 앞에 서면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된다. 그만큼 인상적인 풍모를 지녔다. 그림 그리는 건축가 김석환씨는 “근육이 뭉쳐 있는 듯한 나무의 표정이 인상적”이라며 “석송령 뒤로 계곡이 만나 마을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소나무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시멘트 붕대 감은 모습에 염려

그것은 부자 나무의 위용을 만끽한 대가였을까.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의 소나무(천연기념물 제426호)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령 4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반송인 대하리 소나무는 줄기와 가지가 옆으로 뻗어 우산 2개를 받쳐놓은 듯한 형상이었다. 그런데 소나무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아픔’이 전신에 파고드는 듯했다. ‘수령이 특이하고 손상이 거의 없으며 관상적인 가치가 크다’는 정보는 오래전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대리석으로 만든 버팀목은 문화재에 대한 예의였는지 모른다. 군데군데 시멘트를 입힌 수술 자국이 선명했고, 지난해 여름부터 솔잎혹파리가 갉아먹은 이파리가 수두룩했다.

이미 문경시 산양면의 존도리 소나무(천연기념물 제425호·2006년 8월7일자로 해제됨)가 말라죽은 터였다. 충남 서천군 신송리 마을에 있던 곰솔은 나무 전체를 방부 처리해 외형이나마 보존하고 있지만 존도리 소나무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대하리 소나무의 병세가 완연하자 솔바람 모임 사람들의 표정은 이내 굳어졌다. 시멘트로 붕대를 한 것도 모자라 늘푸른 빛깔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내년쯤에는 베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여성가족부 이성미 과장은 “시한부 환자를 본 느낌”이라는 말로 충격을 고백했다.

사실 대하리 주민만큼 소나무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은 없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00년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대하리 소나무의 위기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수세 약화를 이유로 가지를 자르거나 시멘트를 입히는 외과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대하리 주민 김철한씨는 “이파리가 병들 때 시청 산림과에서 방제를 했지만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양봉농가가 민원을 제기하자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공무원들이 관리를 지금껏 미뤄오고 있다. 이제라도 전문가 중심으로 ‘특별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회생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애당초 소나무 생태기행은 대하리 소나무가 마지막으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서울행을 서두른다면 고사 위기의 소나무가 솔바람 모임 사람들의 마음에 남긴 생채기가 지워질 리 없었다. 이때 충북 충주가 고향인 신세영씨가 “어차피 올라가는 길이니 충주의 맏형 같은 단호사 소나무를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한동안 병든 이파리의 잔상 때문에 무거운 공기가 흐르던 버스 안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이내 버스는 충주시 단월동의 단호사를 향했다. 오래전부터 단호사 소나무를 화폭에 담아온 이영복씨는 “층석탑(원래는 5층석탑이었음) 등 노송을 그리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솔바람춤으로 응어리를 풀어볼까

실제로 단호사 소나무는 병든 이파리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어디에서 보더라도 황홀한 자태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마치 분재처럼 구불구불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수령이 500여 년이나 되는데도 여전히 ‘청춘시절’을 보내는 듯했다. 그 푸름에 한껏 빠진 이애주 교수는 소나무에 어울리는 춤을 선보였다. 이미 솔바람 모임 사람들 앞에서 솔바람춤을 보여주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몸짓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동작이었다. 거기엔 앞으로 500년 아니 1천 년을 지나도 변함없이 늘푸른 소나무로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으리라.

소나무 생태기행은 이렇게 솔바람춤으로 응어리를 풀면서 마무리됐다. 그렇지만 그것은 잠시의 위로일 뿐이다.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이 나날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재선충병 방제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병균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를 아직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치사율 100%인 재선충병을 잡지 못한다면 ‘민족수’로 여겨지는 소나무가 한반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솔바람 모임은 조성된 기금을 활용해 오는 4월7일 강원도 홍천 인근의 국유림에 소나무 식목행사를 한 뒤, 소나무재선충 방재사업에 적극 나서려고 한다. 서울 태평로와 을지로 등지에 조성되는 ‘소나무 가로수’의 운명도 재선충병에 달려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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