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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근학] 할아버지, 드디어 국적을 찾았습니다

등록 2007-01-20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 형제들에 대한 기사를 쓰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엄근학(54)·엄운학(46)·엄창휘(42) 형제. 그들을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인 2004년 11월이다. 그때 큰형 근학씨는 한국에서 7년째 도피 생활을 하고 있던 불법체류자였다. 그는 자신을 중국 시안에 본부를 뒀던 광복군 2지대 군의관 엄익근(1890~1950·1982년 서훈) 선생의 손자라고 소개했다. 엄씨의 사연을 듣고 2004년 11월7일치에 ‘광복군 손자 근학씨 조국 멸시에 운다’는 기사를 썼다.

국가보훈처가 기록해둔 엄익근 선생의 ‘공적 내용’을 보면, 그는 3·1운동 이후 조직된 ‘청년전지공작대’에 가입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쫓겨 중국으로 몸을 피한 것으로 확인된다. 엄익근 선생은 ‘왕인석’이라는 가명으로 광복군 2지대 군의관으로 활동했고, 그의 부인 윤을남(1894~1943)씨는 아들 윤희(1916~87)씨의 강제 징집을 피해 43년 중국으로 피신했다. 엄익근 선생은 해방 이후 귀국했지만, 윤희씨는 돌아오지 못했다. 삼형제는 윤희씨의 아들이다. 할아버지의 피땀으로 독립할 수 있었던 조국은 그들을 ‘조선족’이라 부르며 배척했다.

기사가 나간 뒤 삼형제는 국적회복 신청서를 국가보훈처에 제출했지만, 국적 회복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보훈처는 그들이 엄익근 선생의 자손임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 증거를 요구했고, 삼형제는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서울 도심의 오래된 초등학교( 2005년 4월2일치)와 고향인 헤이룽장성 마을의 자료관을 뒤져야 했다. 1차로 법무부는 그들에게 외국인 등록증을 교부( 558호)했고, 부친 윤희씨가 고향마을의 공산당위원회에서 “우리 부친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라고 말한 자료가 발견되면서 2년 넘는 기다림 끝에 국적 회복의 길이 열리게 됐다. 지난 12월21일과 22일 근학씨와 운학씨는 서울특별시 용산구청장과 경기도 고양시장이 발행한 주민등록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중국에 머물고 있는 창휘씨도 귀국하는 대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서울 강남구 학동 영월엄씨종친회 사무실에서 만난 형제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형제는 둘 다 공사장에서 철근 기술자로 일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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