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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현] 무섭다, 이 에너자이저

등록 2006-12-08 00:00 수정 2020-05-03 04:24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와 옐로우필름이 공동 주최한 ‘숨은 드라마 찾기’ 단편 부문 대상의 영예는 약년의 오보현(25)씨의 에 돌아갔다. 백은하 편집장의 말대로 “얌전하고 조신할 듯한 사람이 올 것 같았는데 박슬기가 왔다”. 단아한 드라마 극본과 속사포 오보현씨, 작품과 사람 간의 간극을 메운 공력은 대화를 나누며 짐작되었는데 그 느낌은 이렇다. ‘무섭다.’
는 살인사건으로 포문을 여는 ‘조선시대판 <csi>’로 형이 양자로 온 동생을 사랑하는 것이 사건의 열쇠인 ‘퀴어물’이다. ‘사랑을 잃은 삶은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는 처연한 주제를 부각시키는 사람이 범인(이제야 말하지만, 스포일러 주의!)인 형의 부인이라는 것은 인상적이다. 마지막 장면에 형이 알면서 독주를 받아 마시고 술잔을 든 채 사랑을 고백할 때는 차곡차곡 쌓인 슬픔이 억울려 터져나온다. 오보현씨 또한 이 장면에서 ‘내장이 뺏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하지만 그 내장의 자기 재생력은 무섭다. 그의 기사회생적 글쓰기에 도움을 준 사람은 그가 ‘애비’를 붙여 부르는 버트런드 러셀이다. “직장 일을 하고 있으면, 다른 전국의 몇천 명의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서 글만 쓰려니 생각해서 자책이 심했다. 자책에 피 흘리면서 ‘그래, 나는 영혼이 없어’라고 되뇌곤 했다.” 그런 그에게 ‘러셀애비’는 일러주었다. “자신에 몰두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상황을 힘들게 하는 건 나다.” 그 과정의 미묘함을 감지할 순 없으나 그는 일주일에 5권씩 책을 읽어내는 동력을 얻었고, 내장을 뺏기고도 재생하는 힘을 얻었다.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면 공모에 작품을 내지도 않았을 거예요.”
천만1번, 천만2번, 에너자이저인 그는 자신의 한계 또한 잘 알고 있다. “지금의 나이에 한마디 던지면 꽃이 되고 나비가 되는 글은 쓰지 못한다. 사랑, 가족, 인간애를 잘 모르는데 작품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 주력하는 분야는 미스터리 등의 장르물이다. 그는 잘 다니던 삼성 홍보팀을 그만두고 습작에 올인할 생각이다. 여름 친구와 간 해변에서 친구가 “너는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니?”라고 물었을 때 우물쭈물했는데, 이제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 중에 일어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왜 빠졌냐고. 인터뷰 끝난 뒤에는 바로 힙합을 추러 간다고 한다. “춤은 비트와의 사랑이에요. 글쓰기는 인물과의 사랑이고요.” “밥은요?” “안 먹어요.” “진짜요?” “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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