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예고르 가이다르] 배신의 끝은 독살?

등록 2006-12-08 00:00 수정 2020-05-03 04:24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분위기 제법 음산하다. 예고르 가이다르(50) 전 러시아 총리가 최근 아일랜드의 한 호텔에서 독극물에 중독됐다는 사실이 11월30일 뒤늦게 공개됐다.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으로 영국에 망명 중이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독극물에 중독돼 숨진 지 불과 1주일 남짓 만의 일이다.

[%%IMAGE4%%]

경제학자 출신인 가이다르 전 총리는 옛 소련의 몰락과 함께 1991년 일찌감치 공산당을 탈당하고 보리스 옐친 정권에 가담한 대표적 ‘시장개혁파’ 가운데 한 사람이다. 혼란에 빠진 러시아 경제에 대한 처방으로 ‘충격요법’을 선호했던 그는 국가의 가격통제 기능을 폐지함으로써 일거에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추진했다. 결과는 물론 엄청난 물가급등으로 이어졌다.

가이다르 전 총리는 또 군비감축과 국영기업 보조금 지급 중단, 재정적자 감축 등 잇따른 ‘개혁 조처’를 내놨다. 이런 과감한 행보는 옐친 대통령의 눈에 들었고, 그는 경제개발부와 재무부 장관을 거쳐 1992년 6월 총리에 임명됐다. 1992년 12월 국가 두마의 총리 임명 동의안 부결로 공직에서 물러난 가이다르는 동료 ‘급진개혁파’인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 제1부총리와 함께 ‘러시아민주선택’이란 정당을 창당해 현실정치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3년 선거에서 참패한 뒤 정계를 떠난 이후 연구와 저술활동에 전념해왔다.

그의 이번 아일랜드 방문도 최근 내놓은 책 판촉행사를 위해서였다. 그는 이 책에서 고유가를 바탕으로 안정세를 구가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가 국영기업 민영화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신흥갑부(올리가키) 세력을 두둔해온 반면, 푸틴 대통령은 집권과 함께 올리가키 해체에 적극 나선 바 있다.

음모론은 여기서 시작된다. 숨진 리트비넨코는 가이다르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푸틴 대통령에 대해 비난을 퍼부어왔다. 그를 막후에서 지원한 것은 역시 영국에 망명 중인 올리가키 출신 보리스 브레조프스키였다. 추바이스 전 제1부총리가 “가이다르 전 총리의 독극물 중독과 리트비넨코의 독살 사건이 서로 연계돼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래저래 옛 소련 국가보안위 출신으로, 그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국장을 지낸 푸틴 대통령의 전력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