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미산학교·일본 지유노모리, 두 대안학교 학생들의 9박10일 교류의 현장…상대 역사를 배우고 희망과 친구를 얻는 수업 열기는 누룽지 생길 정도로 후끈
▣ 사이타마=황자혜 전문위원 jahye@hanmail.net
주민들이 세운 도심 속 대안학교로 유명한 서울 마포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일본의 대표적 대안학교인 ‘자유의 숲 학원’(지유노모리가쿠엔)으로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입시전쟁에서 비껴나 자유롭게 배우고 즐겁게 익히는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은 언어의 장벽을 몸으로 메우고, 현장체험과 토론으로 마음의 문을 열었다. 황자혜 전문위원이 지난 11월4일부터 9박10일 동안 이어진 한-일 대안학교 학생들의 나눔과 교류의 현장을 둘러봤다. 편집자
성미산학교는 지난 2004년 문을 열었지만, ‘자유의 숲 학원’(이하 지유노모리)의 역사는 그보다 20년이나 길다. 그럼에도 지유노모리와 성미산학교는 ‘붕어빵’이다. 두 학교 모두 입시와 경쟁 위주의 교육을 피하고, ‘자립하는 자유로운 학생’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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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학교 학생의 만남은 지난 2002년 한·일 청소년 교류 행사 참여를 위해 제자들과 함께 지유노모리를 방문했던 최현삼 교사(중앙고·역사)가 성미산학교 학부모가 되면서 성사될 수 있었다.최 교사는 “한눈에 반해버린 지유노모리의 ‘자유’를 성미산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지유노모리 교사 후지와라 사토시(47)의 노력도 보태졌다. 그는 한국 방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간을 쪼개 성미산학교의 탄생 과정을 지켜봤고, 교사와 학부모들을 만나 대안학교의 꿈과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일단 한번 놀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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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4일 성미산 학교 중등부 학생 18명과 교사 3명, 학교 운영위원장이 드디어 지유노모리를 향해 비행기에 올랐다. 설레는 맘으로 공항에 도착한 학생들이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언어의 장벽’이었다. 하지만 서먹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후배’들을 마중하러 지유노모리 고교에서 ‘한국강좌’를 선택과목으로 듣고 있는 학생들이 나왔다. 또 3년 내리 ‘한국강좌’를 듣고, 졸업 뒤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돌아와 모교의 한·일 교류가 있을 때마다 자원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나에(22)와 와카바(23)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언어의 장벽을 손쉽게 뛰어넘은 학생들은 전세버스 편으로 지유노모리에 도착하자마자 놀이판을 벌였다. 이른바 ‘일단 한번 놀아보기’ 오리엔테이션. 학년별로 나뉘어 미리 정해진 홈스테이 짝꿍들과 한방에 여장을 풀고 곧장 체육관에 모였다. 한국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똑같은 일본의 ‘다루마상가 고론다’(달마가 넘어졌어요)를 상대방의 언어로 외치다 보니, 어느새 서로의 놀이문화가 같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방문 일정 동안 단연 빛난 것은 현장체험이었다. 오가와마치에 위치한 ‘요시미 하쿠케츠’(吉見百穴)는 6~7세기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도자기 문화 등을 전수하며 정착한 이들의 공동묘지로 알려져 있다. 모두 219개의 구멍이 있는 이곳에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거대한 지하 군수공장이 들어섰다. 당시 노동자로 동원된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강제 징용을 당한 조선인 3500명 가량이었다. 그 영향으로 당시 일본인이 먹지 않던 돼지 머리고기로 꼬치 요리를 만들어 고추장에 찍어먹는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일본 교사의 알기 쉬운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연방 고개를 끄덕이던 두 학교 학생들은 어느새 평화적 교류와 전쟁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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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찾은 곳은 ‘사이타마 평화자료관’이다. 후지와라 교사는 전시된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가 아시아에서 저지른 만행들을 하나하나 설명해나갔다. 자료관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진보적인 분위기와 달리 보수적 성향이 강해지면서 일제가 중국에서 저지른 ‘남경학살’은 ‘남경점령’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후지와라 교사는 이런 분위기가 일본 후쇼사교과서와 새역모의 역사 왜곡과 같은 맥락임을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일제의 ‘세뇌교육’함께 체험해보니
전쟁 당시 학교수업 체험관에 앉아 대형 화면으로 당시를 재현한 영상물을 보면서, 대동아공영권과 ‘천황을 위한 성전’에 나섰다 전사하면 ‘영광스럽게도’ 야스쿠니 신사에 묻힌다는 당시의 세뇌교육을 양국 학생들이 함께 체험했다. 칠판 앞에 놓인 일본·조선·중국이 모두 같은 색깔로 칠해진 지도를 보면서, 전쟁을 일으킨 일제와 그런 역사를 낱낱이 파헤쳐주는 일본인 교사, 그리고 곁에 앉은 일본 친구들. 성미산학교 학생들의 표정이 아연 진지해졌다.
“아~, 이제 좀, 동시통역 수신기 헤드폰을 벗자고요.” “밥 먹고 합시다~.” 사이타마 자연동물원을 산책하며 신나는 외식 시간이 시작됐다. 앞다퉈 메뉴를 정하고 일본의 엔화 환율과 물가를 계산해가며 모밀국수와 우동, 돈가스를 먹는다. 이어 본격적인 지유노모리 생활이 시작됐다. 홈스테이 짝꿍 반에 들어가 학급회의 시간에 자기 소개까지는 일본어로 했지만, 이어진 대화에서는 손짓, 발짓에 그림까지 동원하고도 대화보다는 감탄사만 물결을 이룬다.
지유노모리 생활 나흘째부터 본격적인 수업 참관이 시작됐다. 피아노 주변에 둘러앉아 화음을 넣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음악 시간, 염색과 목공을 배우는 미술 시간, 마구 굴러보는 체육 시간, 일본 전통 북 ‘가미쓰키 다이코’를 동료 학생에게서 배우는 방과후 수업까지 하루가 짧기만 하다. 성미산 친구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던 수업은 3가지였다. 먼저 오니자와 교장(46·사회과)이 직접 나선 임업 수업. “일본에선 왜 젓가락만 사용할까?” 이리저리 머리를 쓰고 답안을 짜내던 8학년 재익이가 제일 먼저 손을 든다.
“온도 때문 아닌가요?”
“세카이(정답)!”
이어 산림이 풍부해 목기가 대부분이었고, 나무는 뜨거운 음식을 담아도 쥘 수 있으므로 직접 입가에 대고 젓가락만으로도 먹을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또 국수류를 많이 먹는 일본 문화에서 후루룩 소리를 내는 것도 공기와 음식물이 만나 먹기 적당한 온도가 되기 때문이란다. 이날 수업이 끝난 뒤 성미산학교 학생들은 젓가락만으로 식사를 하면서, 국수를 먹을 때면 일본 친구들보다 ‘후루룩’ 소리가 2배는 커졌다.
두 번째 인기 강좌는 후지와라 교사의 사회 수업이다. 후지와라 교사가 칠판에 ‘원폭’이라고 쓰자, 학생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지도에서 찾아본다. 미국이 밝힌 원폭 투하 이유인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에 대한 ‘진실게임’이 시작됐다. 왜 하필 히로시마였을까? 1945년 3월10일에 미국의 도쿄 대공습으로 10만 명이 숨졌다는 ‘정보’가 나오고, 바다에 면해 있는 분지 히로시마는 공습 피해도 없었기 때문에 원폭실험 최적의 장소였다는 ‘심증’이 제시됐다. 더욱이 일본군이 전쟁을 포기한 것은 소련의 참전 때문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수업을 마친 뒤 8학년 민수와 같은 학년인 원태는 “역사를 되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다”며 자못 의젓하게 말했다.
전통북 연주에 풍물놀이로 화답하고
‘한국강좌’ 시간에는 “일본의 좋은 점과 싫은 점”에 대한 미니 포럼이 열렸다. ‘친절함, 재활용, 질서의식, 시간약속 엄수’ 등 칭찬이 쏟아지다가, 역시나 역사 문제에 대한 질문이 터져나왔다. 9학년 승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아느냐”고 묻자, “한국강좌를 듣기 전엔 전혀 몰랐지만, 한국 고교생들과 교류하면서 나눔의 집도 방문하고 수요집회도 참가하면서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알게 됐다”는 대답이 나왔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일본 학생들의 질문엔 9학년 꽃분이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된다”며 “강대국의 핵은 문제가 안 되고 북한 핵에 대해서만 따지는 건 모순”이라고 답한다. 추궁과 질타가 아니라 토론을 통해 상대의 생각을 알아가는 학생들의 모습에 교사들도 놀라고 있었다.
마지막 날 요리 시간. ‘아싸~!’ 구호와 함께 일본 친구들은 ‘군만두’(야키교자)를 만들었고, 성미산 친구들은 다양한 크기(?)로 파를 썰어 매운 떡볶이와 파전을 마련했다. 일본 학생들의 전통북 연주에 한국 학생들은 풍물놀이로 화답했다. 토론으로 차이를 알고, 서로 인정함으로써 배우는 ‘자유의 숲’에서 한·일 대안학교 학생들의 우정 나누기는 이날 밤늦도록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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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장도 히노마루도 없는 학교 |
사지선다형 시험도, 성적표도 없는 학교가 일본에 있다. 사이타마현 한노시 ‘자유의 숲 학원’(지유노모리가쿠엔·이하 지유노모리) 중·고등학교다.
일본에선 이미 1900년대 다이쇼 시대에 천황제 아래에서 ‘국가를 위한 교육’에 저항하는 ‘자유 교육’의 물결이 일었다. 학생을 중심에 놓고, 아이들의 성장을 중시하는 교육이념의 발로였다. 이런 흐름은 태평양 전쟁이 막을 내린 뒤 전후 입시교육 위주의 풍토가 확산되면서 그 속에 편입되는 것을 반대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에 나온 도야마 히라쿠의 는 이런 교육계의 정신을 대표한다. 지유노모리는 이 책의 영향을 받아 전국에서 모여든 교사들이 만든 학교다.
지유노모리는 개교 당시부터 매스컴의 큰 관심을 받았다. 독특한 전형방법 때문이었다. 이 학교는 국어·영어·수학 등 이른바 ‘주지과목’ 시험과 면접, 표현활동 세 분야의 평균점수로 학생을 선발한 게 아니라,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뛰어나면 합격하는 다원적 전형을 첫 입학생 선발 때부터 도입했다.
분명한 방향성과 도달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장애는 있기 마련이다. 재정 기반이 허약한데다, 그나마 학교 경영을 하고 싶어했던 기업들이 ‘버블 경제’로 도산을 거듭했다. 결국 “지유노모리 같은 학교는 꼭 필요하다”는 데 의기투합한 시민들과 학부모들은 발벗고 나서 10억엔을 마련해왔다. 이후 매년 입학하는 학생들의 학부모는 100만엔 이상 ‘기부금’을 낸 뒤, 자녀가 졸업하는 3년 또는 6년 뒤 이를 이자 없이 상환받는 방식으로 학교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입시 위주인 ‘진학 고교’를 그만두고 지유노모리로 들어오려는 학생들의 ‘열기’도 뜨거웠다. 학교가 문을 연 1985년 당시는 일본의 교육체제가 ‘신자유주의적 전환기’를 맞았던 시기다. 당시 문부과학성은 ‘자유화’를 내세우면서 경쟁논리를 부각시키고, 지유노모리를 ‘개성적인 학교’란 이미지로 활용했다. 오니자와 마사유키 교장(46)은 이를 두고 “완전한 동상이몽이었다”고 잘라 말한다.
1990년대 지유노모리는 또 다른 사건과 맞닥뜨린다. 이라는 정체불명의 우익계 출판물이 지유노모리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보수교육계에서도 덩달아 “(개별 학교에) ‘자유’를 주면 이 따위 결과가 나온다”고 흥분했다. 오니자와 교장은 “아마도 결정적인 계기는 1989년 전쟁의 책임이 있는 쇼와텐노(소화천황)의 장례식 날에 학교가 쉬지 않은 때문인 것 같다”며 “일부러 눈에 띌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조의를 표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해 휴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영과 교육의 조화가 쉽지 않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믿는다.”
‘학부모와의 연결망을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교장에 선출된 그는 학교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학부모회가 정착된 것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교직원 1천 명에 전체 학생은 770명에 불과한 지유노모리 고등학교엔 자유 선택 강좌가 90개나 마련돼 있다. 또 ‘조직화는 곧 고정화’라는 인식으로 반장·부반장도 없고, 학생회도 없다. 그야말로 ‘자유’가 ‘숲’을 이루고 있다.
입학식·졸업식을 비롯한 학교 행사는 모두 학생들이 실행위원회를 만들어 주관한다. 문화적 메시지로 풍성한 행사에 상식적인 선에서 교장의 인사말이 들어가지만, 그런 인사말 정도 빠져도 전혀 문제될 것 없다. 히노마루(일장기) 게양도, 기미가요 제창도 강요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지유노모리는 일단 입학하면 좋은 점이 명확히 보이는 학교다. 아이들의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듯, 학교 역시 진학률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보호자와 학교의 두터운 관계가 이번 한국 성미산학교와의 교류에서 빛났다. 사전 준비부터 사후 평가까지 학생·학부모·교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 갈수록 보수·우경화의 길로 치닫고 있는 일본 교육계의 현실 속에 지유노모리의 존재 이유는 뭘까? 오니자와 교장은 주저 없이 “교사의 몸을 통해 발산되는 교육활동의 자유와 또 그만큼 중요한 학생의 자유”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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