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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독버섯, 고문을 기록하다

등록 2006-10-26 00:00 수정 2020-05-02 04:24

박원순 변호사, 고문을 통사적으로 들여다본 대작 펴내 …지금도 살아 있는 현재의 문제, 신문에 변호인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람들이 지옥을 생각해낸 것은 고문에 대한 체험에서였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극심한 고문은 죽음이 희망으로 나타나는, 그치지 않는 고통의 현존이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주되 죽음이라는 영원한 휴식을 주지 않는 것이 고문자의 직업정신이다. 지옥이 지옥인 것은 그곳에는 죽음마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테의 은 ‘지옥의 입구’를 ‘여기 들어오는 너희, 온갖 희망을 버릴진저’라고 새기고 있다.”

일제의 기술은 반공국가의 ‘기술자’에게로

시인 황지우씨는 1990년 에 실린 ‘나의 작품 나의 얘기’라는 글에서 고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문의 본질에 관한 시인의 통찰은 그가 겪은 고문의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시인은 1980년대 초 광주항쟁을 억압한 데 항의하다 군사독재의 모진 고문을 당한 것이다.

고문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왔다. ‘보편적’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쓸 만큼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나타나는 고문의 양상은 좀 특별하다. 정권의 속성이라 할 만큼 고문이 대규모로, 지속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아니, 고문이 없었다면 식민지배와 전쟁, 분단체제가 유지됐을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간첩과 반국가·좌익·용공사범의 양산은 고문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제시대로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자행된 고문을 통사적으로 들여다본 책이 처음 나왔다. 16년 전 을 통해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낱낱이 고발한 바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이번에는 ‘고문’ 시리즈 3권을 최근 펴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는 구조적·분석적·역사적 시각에서 고문에 접근했다. 1600여 쪽에 이르는 이 대작은 (역사비평사 펴냄)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부제 ‘고문의 한국현대사’는 책의 내용을 온전히 담았다.

1권은 전반적인 ‘고문론’이다. 고문에 관한 정의, 한국에서 자행된 고문의 양상, 고문 피해자들의 현황과 법·제도적 측면에서의 개혁과제, 고문에 관한 법률·제도의 문제, 국제 고문 사례와 국제 협력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2권과 3권은 각 시대별 고문 사건의 내용과 유형을 통사적으로 다뤘다. 2권은 일제시대에서 박정희 정권까지, 3권은 전두환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까지를 포괄했다.

저자는 고문을 한국 현대사의 ‘독버섯’이라고 부른다. 일제로부터 전승된 고문이 독재정권에서는 체제를 유지·존속시키는 억압적 국가구조의 일부로 기능함으로써 확대재생산됐고,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치의 영역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침투했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이뤄지는 심각한 고문 관행은 일제시대에까지 그 뿌리가 닿아 있다. 일본 고등계 경찰은 고문의 대명사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고 이는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전수됐다. 해방 이후 일본 고문 기술자한테서 기술을 전수받은 한국의 ‘기술자’들은 해방된 한국의 군대와 경찰로 흘러들어갔고 반공국가를 건설하고 정통성 없는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고문 기술은 고도로 과학화·체계화됐다. 형사 절차는 고문이라는 도구를 통해 시스템화됐다. 특히 중앙정보부(이후 안기부)·치안본부 대공분실(이후 경찰청 보안국 대공분실)·보안사(이후 기무사) 등 공안기관 수사에서는 예외가 없어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사건이 한둘이 아니었다.

불법 납치·연행 → 고립무원의 불법 감금 → ‘추리소설’과 같은 조서 작성 → 고문 흔적 지우기 → 고문을 정당화하는 검찰 조사와 ‘꼭두각시’ 공판 과정이 그것이다. 저자는 고문의 일상화가 가져온 진정한 비극을 학생운동에서 일어났던 프락치에 대한 고문 사건이나 군대를 비롯한 각종 수용시설 등에서 불거지는 고문 사건, 가정에서 생겨나는 고문과 가혹행위에서 찾는다. 사이버 세계에서 고문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은 폭력과 가학성의 뿌리가 고문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라나고 있다.

공안기관이 붕어빵처럼 찍어내던 사건들

저자는 고문이 ‘정리되지 않은 역사의 문제’인 동시에 ‘살아 있는 현재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인권의 전도사로 자처하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허울 아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와 관타나모 미군기지에서 조직적으로 벌이고 있는 고문의 실상에서 드러난다. 또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조차 고문 사건이 종종 일어나는 현상에도 주목한다.

국제앰네스티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 고문금지운동을 새로운 캠페인으로 내걸면서 그 제목을 ‘현대의 전염병’으로 이름 붙였다. 인류 역사의 어두운 저편으로 밀려났던 고문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셈이다. 국제앰네스티가 1997년부터 3년 동안 195개국을 조사한 결과 150개국의 국가기관이 고문과 가혹행위를 했고, 이 가운데 70여개 국에서는 광범위한 정도로 고문이 성행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려고 한 역사인 만큼 고문에 대한 과거 청산은 어렵다. 의도적으로 숨긴 기록을 찾거나 증언자를 확보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형사 피의자에 대한 고문의 특징 가운데 가장 도드라지는 것이 익명성인 만큼 가해자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얼굴 없는 고문기술자 이근안’ 사건에서 알 수 있듯 국가권력이 구조적으로 저지른 고문에서 가해자는 철저히 은폐된다.

역사의 정리는 고문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현대사의 대표적 고문 사건인 조작간첩 사건들(상자기사 참조)의 경우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을 재심하기 위한 절차가 일부 진행 중이다. 1984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문에 의해 간첩이 된 함주명씨의 경우 조작간첩 사건으로 유일하게 지난해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0월14일 취재진이 한국인권재단이 연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와 피해자 권리구제 2차 워크숍’을 찾았을 때 대부분의 고문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심각한 고문 피해에서 나타나는 ‘끝없는 충격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한국의 사법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인식을 보여줬다. “판사나 검사들 모습만 봐도, 아니면 그들의 얘기만 들어도 치가 떨리고 가슴이 뛴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대한 불신, 죄책감, 불안 등은 고문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증상이다.

저자는 고문 피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에 따라 보상과 배상이 이뤄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고문 피해에 대한 전문재활센터를 건립하고 고문희생자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또 후세에 경계의 의미로 삼을 수 있도록 고문기록과 현장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도서관과 기념물을 세우고 교과서에 고문의 역사를 실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게 진정한 고문 방지책이라는 것이다.

공소시효 배제하는 조처도 필요

또 ‘살아 있는 현재의 문제’인 고문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 저자는 ‘고문 없는 나라를 위한 종합적 비전’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문의 주요한 주체였던 국정원·경찰·검찰 등 수사기구의 개혁과 함께 고문과 관련한 법률·제도를 전반적으로 보완하는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헌법에 명시된 고문금지 조항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고문과 공생관계를 이루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되는 게 마땅하며 고문방지협약을 국내법으로 온전하게 반영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법률과 관행의 개혁 가운데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수사기관의 신문 과정에 변호인의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또 고문이 비인도적 범죄이며 그 결과가 피해로 드러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데도 어려움이 큰 만큼 고문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고 김남주 시인은 고문에 관한 체험을 다룬 시 ‘비녀꽂이’에서 이렇게 썼다. 그리고 이 글은 고문이 뿌리뽑혀야 하는 이유에 대한 우리 모두의 답이기도 하다. “비녀꽂이가 끝나고/ 나는 말했다 지하의 사내에게/ 아픔을 주더라도 남에게/ 굴육의 상처를 남기는 그런 아픔은 주지 말라고/ 육체적인 고통은 쉽게 잊혀지지/ 인격이 수모를 당하면 인간은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고.”



“정형근 의원, 증언자가 워낙 많더라”

“정형근 의원, 증언자가 워낙 많더라”

3권 펴낸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고문이라는 키워드로 한국의 현대사를 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인권 변호사 활동을 할 때부터 필생의 작업 가운데 하나로 생각했다. 자료도 15년 이상 모아온 것이다. 하나 바쁘게 살다 보니 책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2004년 12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다.


이때다 싶어 책장 하나 가득 쌓여 있던 자료를 모두 모아서 화물로 부치고 미국에서 원고에 매달렸다. 지난해 원고를 넘겼는데 후반 작업에만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책에 나온 엄청난 분량의 사실 확인과 원본과의 대조 작업을 출판사 쪽에서 꼼꼼히 하느라고 그랬다. 이런 식으로 쓴 책이 등이다. 써야 할 것이 아직 많다.
‘야만시대의 기록’이라는 책 제목을 붙인 것은 저자의 뜻인가. 고문이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기준점이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제목 같다.
= 고문만큼 문명에 대한 야만적 도전은 없다. 남아 있어서는 안 되고 되풀이돼서도 안 된다는 데에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텐데 정리하는 이가 없었다. 고문은 과거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존하는 문제다. 참여정부에서도 고문은 이뤄진다. 물론 이전 시대처럼 본격적이고 엄청난 규모로 일상화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너무나 끔찍한 경험을 했는데도 우리 사회는 고문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 없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가면 고문 피해자들을 위한 전문병원이 있다. 영국에 가보면 한 농장 전체를 비워서 아프리카 고문 피해자를 치유하고 있다. 인권 선진국이 되려면 이런 일 정도는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이 되려면 비경제적 영역에서의 정상성을 찾아야 한다. 경제발전만 된 선진국은 하늘 아래 없다.
개인적 체험도 책 속에 녹아 있다. 고문 피해자였던 친구의 얘기가 머리말에 소개돼 있는데.
= 고등학교 동창 중에 구씨 성을 가진 친구가 두 명 있었는데, 구(具)씨 성을 가진 친구는 민청학련 사건 당시 고등학교 조직을 책임진 이른바 ‘고교책’이었는데 심한 고문을 받고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뒤 어느 날 갑자기 이 친구가 사라져 알아보니 어느 시골 정신병원에 있었다. 구(丘)씨 성을 가진 친구는 고등학교 때인 1972년 유신반대 유인물을 뿌리다가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그 역시 정신질환이 도져 사회생활을 접고 유폐생활을 해야 했다. 두 명 모두 똑똑하고 리더십 있는 친구들이었지만 고문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10년 이상 잠복하다가 발병하기도 한다. 정신은 깨지기 쉬운 그릇 같은 것이어서 한번 피해를 당하면 회복이 어렵다.
우리 사회가 기록문화에 특히 약한데다 고문에 대한 자료는 가해자나 피해자가 현존하는 경우가 많아 자료 수집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고문에 관한 기록은 정말 남기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을 것 같은데.
= 사실은 기록에서 빠진 것도 많을 것이다. 신문기록·단행본·잡지·유인물·재판기록·판사들 회고록·인터넷 등을 낱낱이 뒤져도 안 나오는 사건들이 많을 것이다. 80년대 중·후반 민주화운동이 본격화하고 대중화하기 전 상황은 더욱 그렇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봐라. 여러 명이 살인범이 됐다가 풀려났다.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 가운데서도 무고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책을 보면 ‘정형근 의원의 책임과 진실’이라는 소제목으로 해서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대목이 있다.
= (고문 피해자들한테서) 하도 그 사람 얘기가 많이 나온다. 내 의견을 보탠 것은 아니다. 안기부에서 고문이 가해졌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 아닌가. 당시 수사 책임자였는데 모른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고, 몇 명은 직접 봤다고 하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가 고문의 시대를 기억하고 현존하는 고문을 완전히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고문 없는 나라를 위한 종합적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고문이 관행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도가 고문을 불러온 측면도 있었다. 법·제도·문화·관행·의식 등 모든 측면에서 고문에 대한 경계심을 갖춰야 한다.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의 고문 피해 사례들

“정형근 의원, 증언자가 워낙 많더라”
 
▣ 자료 조사 및 정리: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 김양기씨
일본 관련 사건. 1986년 4월 구속. 불법구금 43일.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함께 실시했다. 철제의자에 앉혀 온몸을 의자에 묶은 뒤 머리를 뒤로 젖히고 얼굴에 수건을 덮은 다음 10리터짜리 흰 주전자로 물을 부어댔다. 고춧가루를 콧구멍에 집어놓고 물을 부으면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고 머리가 깨져버릴 것 같다. 고통 속에서 기절해버리면 다시 깨운다. 몸이 젖은 걸 이용해 엄지발가락과 엄지손가락에 전원을 연결해 전기고문을 가했다. 북한에 갔다 왔다는 얘기를 들을 때까지 고문하고, 고문에 못 이겨 입북했다고 하면 ‘뭘 보았느냐’로 질문이 넘어가서 다시 고문을 하는 식이었다….”

* 박동운씨
행방불명 및 월북자 가족 사건. 1981년 5월 구속. 불법구금 63일.



“벽에 붙은 세면기에 성기를 올려놓게 하고 신발짝으로 세 번 내리쳤다. 그때마다 까무러치면 찬물을 끼얹어 깨웠다. 지금도 하체에 통증을 느낀다. 발가벗긴 채 철창에 손목을 묶고 라이터 불로 온몸을 지져 고통을 줬다. 체모를 태워 수치심을 극대화시켰다. 손바닥과 발바닥을 야전침대 몽둥이로 엄청나게 맞아 움직이기 힘들었다. 온몸의 멍자국을 없애려고 송치되기 전에 일주일 동안 매일 안티프라민 마사지와 온수 목욕을 하도록 했다.”

* 석달윤씨
행방불명자 가족 사건. 1980년 10월 구속. 불법구금 47일.



“작은 송곳으로 하반신 허벅지를 계속 찔러 검붉은 피가 온몸을 적셨다. 상처를 치료한다면서 이름도 알 수 없는 약을 먹였는데 그 약만 먹으면 잠에 취해 정신을 가누지 못했다. 피멍 든 허벅지에 종잇장처럼 얇게 썬 소고기를 놓고 상처 부위를 동여매면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가장 무서운 고문은 잠 안 재우는 고문이었다. 2~3주씩 안 재우고 두들겨패면 완전히 정신분열증에 걸려 자신도 모르게 헛소리를 하는데 정신을 차리고 하지도 않은 일을 고문에 못 이겨 시인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계속 울었다….”

* 차풍길씨
일본 관련 사건. 1982년 10월 구속. 불법구금 66일.



“안기부에서 66일 동안 햇빛도 못 보고 지하실에서 생활했다. 6일 동안 한잠도 안 재워 몽롱한 상태에서 고문을 받았고 ‘죽인다’거나 ‘식구를 다 죽인다’는 협박을 당했다. 수사관들이 일방적으로 조작한 ‘팀스피리트 작전 내용, 군사기밀, 근로자 보수 문제’ 등은 그들이 누렇게 퇴색된 신문을 오려다주며 3일 동안 외우라고 해서 외운 것이다. 외우지 못하자 ‘보고 쓰라’고 했다. ‘너 혼자 3년만 살아주면 된다. 우리 좀 살려달라’는 말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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