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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 고어] <불편한 진실>의 진실은 대출마?

등록 2006-09-20 00:00 수정 2020-05-02 04:24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앨 고어의, 앨 고어에 의한, 앨 고어를 위한….’
최근 국내에서도 개봉돼 화제를 모은 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해설자로 출연해 100분 남짓 동안 줄기차게 되풀이하는 ‘강연’을 듣다 보면, 영화가 끝날 무렵 적어도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된다. ‘이 사람, 틀림없이 또 출마할 것’이란 점이다.
“저는 앨 고어라고 합니다. 한때는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고어 전 부통령의 ‘예전’이 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현역 정치인 시절 그는 근엄한 척하는 ‘엘리트주의자’에, 워싱턴 ‘제도권의 상징’으로 통했다. “괜찮은 사람인 줄은 알지만, 왠지 비호감’이란 게 정치인 고어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싱거운 농담을 던지면서도, 복잡한 과학적 사실을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스크린 속의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1948년 워싱턴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테네시주 출신으로 상원의원을 지냈고, 어머니는 명문 밴더빌트 법대를 졸업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명문 사립학교 세인트 앨번스를 거친 그는 대학 입학 당시 하버드대학에만 원서를 냈고, 무난히 합격했다. 반전운동에 적극 가담했음에도 대학 졸업 뒤엔 베트남전 참전을 위해 자원입대를 했고, 제대한 뒤에는 테네시주 지역 일간지에서 5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명문가의 자제답게 28살 나던 해인 1976년 일찌감치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무난히 당선된 그는 내리 3선을 했고, 1984년 상원으로 자리를 옮겨 1993년 부통령이 될 때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2000년 대선에서 전체 득표에서 앞섰음에도 결국 선거에 패한 것도, 단 한 차례의 실패도 없이 순탄한 삶을 살아온 ‘심심한 범생이’란 그의 이미지가 한몫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 몰고 온 인기 때문일까? 지난 6월까지만 해도 “대선에 다시 출마할 계획이 없다”던 그가 최근 “출마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진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하긴 인터넷 매체 가 이미 지난 5월 민주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8%가 그를 차기 대선 후보로 꼽았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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