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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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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항소, 무지하게 무식하다

등록 2005-11-17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대만 한센인 보상 판결에 항소한 일본 정부, ‘보상법’ 제멋대로 해석
“국외요양소 대책 마련”이라는 당국의 불성실한 발언 과대 포장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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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영/ 소록도 보상소송 변호인단·도쿄대 박사과정 andrep84@hotmail.com

지난 11월8일 오후, 일본 후생노동성은 대만 낙생원의 한센병 보상청구 소송에 대해 도쿄 고등재판소에 항소했다. 이것으로 지난 10월25일의 패소 판결 이후 일본 정부의 항소를 저지하기 위해 시작된 2주일간의 투쟁이 막을 내렸다. 1년 동안 소록도 식구들과 함께했던 싸움도 이것으로 일단 끝이다. 또다시 소록도 어르신들의 가슴에 응어리를 지게 했다는 무참한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다.

“우리가 다 죽기를 기다리는가”

그날 오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구니무네 나오코 일본 변호인단 대표 변호사는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80살이 넘은 노령의 원고들에게 이렇게밖에 못하는 일본이란 나라가 정말 한심스럽다”라는 그의 흐느낌에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도 눈물을 보였다.

일본 정부가 밝힌 항소 이유는 “1953년에 제정된 ‘나예방법’에 의해서도 여전히 한센병 환자에 대한 격리정책이 취해져왔고 이로 인해 일본 국내의 한센병 환자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끼치게 되었다. 2001년에 시행된 ‘한센병보상특별법’(이하 보상법)은 그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사죄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해석되며, 국외 요양소의 입소자들은 현행 보상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보상법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결과에 불과하다. 보상법은 1조에 “이 법률이 한센병요양소 입소자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금 지급에 관한 법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제2조에서는 “한센병 요양소 입소자들이란 1953년 제정의 ‘나예방법’뿐만 아니라, 1907년에 제정된 ‘나예방법’에서 규정하는 국립한센병요양소에 입소했던 사람들”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법률 조항 어디에도 ‘1953년 이후’와 ‘국내에 한정’한다는 규정이 없음에도,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이해력 부족을 반성하지 않고 항소를 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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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본 정부는 “‘보상법’ 입법 과정에서 국외의 요양소에 입소했던 사람들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는 충분하게 내용을 파악하지 못해 차후의 과제로 남겨지게 됐던 경위가 있기 때문에 항소와는 별도로 국외 요양소에 입소했던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 방법을 신속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의 일부 언론들은 이러한 일본 정부의 답변을 그대로 받아들여 마치 보상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왜곡된 보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일본 정부의 이번 발언은 신뢰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2001년 ‘보상법’ 입법 직후, 당시 후생노동성은 일본 국회에서 “국외의 요양소에 대해서는 현재 파악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부터 조사·검토해 적절한 대책을 세우겠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그들이 무언가를 조사하거나 검토했다는 흔적이 없다. 항소 뒤에 면담을 요청한 원고단에게 일본 정부는 “지금부터 검토하겠다” “얼마 정도 걸리겠는가”는 질문에 “가능한 한 빠르게”라고 말해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소록도의 한 할아버지는 “일본 정부는 우리가 다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앞으로의 싸움, 한국의 응원이 중요

앞으로 일본 정부는 원고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걸고 협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응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의 변호인단 그리고 원고들은 이기는 그날까지 이날의 분노를 가슴에 담고 싸울 것을 결의했다. 정근식 서울대 교수는 “한센인의 인권 문제에서 우리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와 함께 한센인을 소록도로 몰아넣었던 언론들은, 왜곡된 보도를 당장 그만두고 이제라도 각성해 이들의 인권 회복을 위한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년 동안 법정에 발길조차 하지 않은 한국대사관에 “도대체 누구를 위한 대사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지만, 지금은 그것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소록도 식구들과 같이 손잡고 당당하게 종로통을 걸어보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 꿈을 위해서라도 일본 정부와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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