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서울을 떠나 파주쪽으로 30분 남짓 달리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돼 보상이 한창 진행 중인 경기 파주 운정지구를 만날 수 있다. 운정지구에서 교하면쪽으로 접어들어 10여분을 달린 끝에 ‘한국근대사박물관’에 도착했다. 최봉권(50) 관장은 “평생을 바쳐 박물관을 세웠는데 이제 그만 사기가 꺾였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작은 박물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작은 중소기업의 사장인 최 관장은 지난 30년 동안 전국 곳곳을 돌며 사라져가는 1950~60년대 생활 문화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그저 옛날 물건들을 보면 마음이 설레었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으로 낡은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철렁했죠. 누군가 챙기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조바심이 들더라고요.” 1·2관으로 나뉜 전시실에는 정미소·방앗간·목공소·세탁소·구두수선소·한약방·왕대포집·다방 등 점포 30여개가 빼곡하게 재현돼 있다. 이발소에 설치된 라디오를 틀어보니, 치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힘찬 노랫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작동되는 골동품 라디오다.
‘지방 출장을 갈 때마다 1t짜리 트럭을 몰고 가는’ 최 관장의 수집 여행은 올해로 30년째다. 시골 마을의 폐가를 뒤지거나, 이사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면서 시골 노인들과 얼굴을 틔웠다. 지붕 위로 올라가다가 굴러떨어지는 일은 예사고, 도둑놈으로 몰려 경찰서에 드나든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게 모은 유물 5만점과 사재 50억원을 털어 박물관의 문을 연 것은 지난 1월15일. 1500평의 터에 꾸며진 박물관은 1950~60년대 변두리 골목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과 실물들로 채워져 있다.
기쁨도 잠시, 파주시와 대한주택공사에서는 “박물관 터가 파주·교하 택지개발 지구 안에 포함돼 강제 수용하겠다”고 통보를 해왔다. 최씨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감정평가를 통해 보상가격을 정한다고 하지만, 손때 묻은 소중한 근·현대 문화유산이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는 “평생 박물관 건립을 위해 노력했는데,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떡해야 할까. 주공은 해답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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