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엔 다소 부담스러워도 ‘인권이 라이프’는 계속
“후진 얘기로 은주의 죽음이 더럽혀지는 게 싫어 사랑한 것 밝혔다”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박수진 인턴기자 lenne21@freechal.com
‘공공의 적’. 그를 잘 아는 한 기자가 최근 그를 설명한 말이다. 적어도 최근 한달 동안 그는 그런 타이틀이 어울릴 정도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가 왜 ‘공공의 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자작극 아니냐” “(두 사람이 사랑했다는 것을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사랑했다면 그 입 다물라”는 등 의혹과 비난은 여전하다. 아니, 갈수록 정도가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퇴폐, 그 핵심은 섹스
7월5일 오후 삼청동에서 가수 전인권(51)씨를 만났다. 배우 이은주씨 사망 이후 그와의 사랑을 실토하면서 생겨난 이른바 ‘전인권 사태’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스며 있는 나이주의, 외모주의, 죽은 이에 대한 태도 등을 돌아보게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침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아들인 케네디 주니어와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얘기를 다이애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시먼스가 <다이애나-마지막 이야기>라는 책에서 밝혔다는 기사가 나온 직후였다.
그는 듣던 대로 솔직했다. 6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막힘이 없는 인터뷰이를 만나기란, 기자 처지에서는 ‘하늘의 별 따기’이지만, 그는 정말 그랬다. “인터뷰 때문에 필리핀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그는 마닐라를 방문한 이유가 카지노에 들르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열심히 노래하고 나서 카지노에 가는 게 제일 좋고,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요. 내가 자주 강조하는 말인데 ‘아름다운 퇴폐’라는 말 들어봤어요? 여기서 말하는 퇴폐의 핵심은 섹스입니다. 정말 열심히 노래한 뒤 필요한 건 사랑이고 연인 아닌가요.” 기자가 묻지 않았는데도 “은주가 (카지노 가는 것을) 싫어했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해선 안 되는 사랑, 공개해서는 안 되는 사랑도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너무 웃기는 얘기”라며 “사랑이 나이를 초월한다는 건 초등학교 때 이미 배웠다”고 대꾸했다. “은주와 만나면서 나이, 마약 전과, 이혼 경험 등으로 불안해하고 조심스러워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힘들 때마다 은주는 항상 내 옆에 있어줬다”고 그는 회고했다.
“한번은 연예인 마약사건 기사가 났어요. 그런 날이면 아무한테도 전화도 안 오고 사람들도 나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데 은주한테 전화가 왔어요. 미사리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는데 와서 노래해달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내가 ‘안 가는 게 좋겠다. 나 마약 전과 4범이야’라는 문자를 보냈죠. 은주가 문자로 답을 했어요. ‘그런 게 사랑 아니에요’라고.”
‘채식주의자 은주’와 고기 먹기 즐겨
그와 이씨는 “‘눈빛’으로 시작해 ‘문자(메시지)’로 소통한 관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씨와 대화하려고 문자메시지 보내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건 우리 스타일이지. 목 마를 때 물을 감질나게 조금씩 마시는 것처럼 그렇게 메시지를 주고받았어요. 새벽에 은주가 ‘주무시나요’ 하고 문자를 보내면 ‘안 자’라고 대답하죠. 그러면서 대화가 시작되는 식이에요. 그 문자 기다리느라 안 잔 적도 많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날린 문자는 ‘은주 영혼이 편해지길 바라’라는 말이었어요.”
이씨는 그의 가수활동에 대한 조언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3집 타이틀 곡을 ‘DESTINY’로 정해준 사람도 이씨고, 음반 재킷 사진을 고른 것도 이씨라는 것이다. “그룹 들국화를 영화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검토한 뒤 영화를 하지 말라고 조언한 것도 은주였어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을 물었다. “정말 사랑했다면 고인이 된 사람과의 관계를 묻어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왔다. “은주의 죽음을 아름다운 죽음으로 승화시키고 싶었어요. 귀한 배우, 대단한 배우로 남겨줘야 하는데 가족들한테 쏠리는 시선이 무척 부정적이었잖아요. 그런 시선들을 돌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나쁜 시선들이 내가 ‘사랑했다’는 말 한마디 했더니 모두 나한테로 쏠렸어요. ‘후진’ 얘기로 은주가 더렵혀지는 게 싫었어요. 그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인터뷰 당시에는 엉겁결에 말한 측면도 있어요. 인터뷰하던 기자가 복선을 깔면서 물었어요.”
그가 설명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보통의 성인 남녀의 연애 이야기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가 둘의 관계를 “레옹과 마틸다 사이였다”고 한 것은 적확하지 못한 비교인지도 모른다. 서로 주고받은 선물도 쌓여 있다고 했다. 이씨가 그에게 보낸 선물은 대부분 1만원 안팎의 소박한 것들이라고 그는 털어놨다. 손수 만든 장식물에 ‘전인권 만세, 이은주 만세’ 같은 문구를 적어넣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제일 자주했던 군것질은 ‘오뎅 먹기’였어요. 나를 스토커처럼 묘사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은주가 채식주의자였다고 하대요. 그건 거짓말입니다. 나랑 은주랑 만나면 무조건 고기 먹으러 갔는데 특히 불고기를 좋아했어요. 자기 앞에서는 선글라스를 벗어달라고 요구했고, 공연을 하고 난 뒤에 풍기는 내 땀 냄새가 무지 좋다고 했어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걱정 말아요, 그대’는 그가 이씨의 장례식장에서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가사를 곱씹어보면 그가 하고 싶은 얘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의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 깊이 묻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는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선보일 새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예전처럼 희망을 노래하는 록음악들로 채울 예정이다. 이씨에 대한 기억이 녹아 있는 곡들도 여럿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 공연을 할 때면 관객들 앞에서 “(제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서 신나죠?” 하고 소리 지른다고 했다. 그러면 관객들도 맹렬히 호응한단다. 자유인은 ‘영원한 철부지’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엔 다소 부담스런 ‘인권이 라이프’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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