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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살인죄, 너무나 정치적인…

등록 2004-12-17 00:00 수정 2020-05-03 04:23

▣ 델리= 우명주 전문위원 greeni@hotmail.com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전 인도가 흔들릴 것이다!” 경찰에 연행되면서도 이렇게 호기를 부린 힌두 사제인 자엔드라 사라스와티(71)가 요즘 인도 사람들을 흥미진진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는 연행될 때 경찰차를 안 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경찰이 다른 일반 차량까지 준비해야 했다. 그는 지난 9월 발생한 사원 직원인 상카라라만의 살해사건과 관련해 살인교사, 범죄공모, 증거인멸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상카라라만은 사라스와티의 부정들, 특히 이성 문제와 공금 횡령 폭로 협박편지를 보내 미운털이 박혔던 터다. 사라스와티는 연행 직후 무죄를 주장하며 종교의식을 집전할 수 있는 방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결국 나중에 살인교사 혐의를 털어놓았다. 그가 속한 힌두교 종파는 전국을 다섯으로 나누어 지역별로 책임자를 두고 있는데, 그는 남부 지역의 대표다. 이런 대표들은 ‘상카라차리야’로 불린다. 그는 취임 뒤 정치와 이권사업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가 속한 단체는 병원, 학교, 대학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나오는 수입과 신도들의 기부금은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연간 5천억원에 달했다. 또 그는 정치인들과도 끈끈한 관계를 맺어왔다. 전임 총리들이나 대통령들과도 가까운 사이였고, 그의 단체가 자리잡은 타밀 나두주의 주지사 자야랄리타와는 각별한 사이였다. 자야랄리타 주지사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늘 그와 상의해왔다.

그런데 이 주지사가 사라스와티의 연행을 직접 지시해 화제다. 자야랄리타는 지난해 사실상 힌두교도가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사라스와티가 반색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난 하원선거에서 자야랄리타 주지사가 속한 당이 단 한명의 의원도 배출하지 못하는 참패를 당한 이후 개종방지법을 철회했다. 그러자 사라스와티는 선거 패배가 자야랄리타의 오만 때문이라며 악담을 퍼부었다. 또 주정부는 그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병원 경영권을 넘겨받고 싶어했으나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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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이 두 사람의 사이를 금가게 했고 사라스와티의 연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살인교사 정도는 가볍게 묻어줄 수 있는 것이 인도 정치와 종교의 관계다. 인도 사람들은 사라스와티 연행이 살인 때문인지, 아니면 정치적인 문제 때문인지를 궁금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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