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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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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없는 안마’ 살려주세요

등록 2004-12-02 00:00 수정 2020-05-03 04:23

성매매 특별법 유탄 맞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 폐업 초읽기 몰렸지만 다른 ‘밥줄’ 전혀 없어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경기도 구리시에서 안마시술소를 운영하고 있는 박현수(31) 원장은 시각장애인(3급)이다. 그는 대구 광명학교에서 3년 동안 안마 전문 교육을 받은 뒤 지난 1992년 안마사 자격증을 땄다(현행 법상 안마사 자격증은 시각장애인만 받을 수 있다). 6년여 동안 서울에서 안마사로 생활하다 지난 96년 그동안 모아둔 돈과 은행 대출 등으로 2억원을 들여 안마시술소를 차렸다. 안마시술소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잠시 고전하기는 했지만, 하루 400만∼500만원의 순수익이 보장된 ‘고소득’ 업종이었다.

그동안 왜 ‘변태영업’을 했던가

그러나 지난 9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그의 업소는 지난 두달 동안 3천여만원의 적자를 봤다. 성매매특별법에 따른 경찰의 강력한 단속으로 손님이 확 줄어 매출이 절반 이상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루 30명에 육박했던 이용객은 요즘 10명 이하로 뚝 떨어졌다. 박 원장은 “내년 1월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가게 월세와 대출 이자,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폐업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매매특별법의 불똥이 안마사들에게로 옮겨붙고 있다. 안마업계에 따르면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안마시술소의 매출은 이전의 30% 수준으로 급감했다. 전국 1천여개 안마시술소 중 80%에 이르는 800여개 업소가 ‘폐업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문제는 박 원장처럼 직접 업소를 운영하거나 이들 업소에 고용돼 있는 시각장애인들이다. 이들은 ‘비장애인’들과 달리 다른 생계 대책을 마련하는 게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1만명에 이르는 안마사들은 지금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안마사들이 이런 상황에 내몰린 것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잘못이 크다. ‘순수하게’ 안마만 취급하지 않고 성매매와 결합된 형태의 영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박 원장처럼 업소를 직접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업주들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비장애인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변태 영업’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하더라도, 시각장애인 업주들은 안마의 고유 영역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한다. 박 원장은 “안마시술소의 성매매 행위는 업주와 관계없이 별도로 관리됐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안마사들과는 관계없다”며 “그러나 우리가 안마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고 현실과 쉽게 타협한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이들의 잘못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성매매 산업이 날로 번창하는 상황에서 순수 안마시술소는 변태 업소에 비해 아무래도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박 원장도 안마시술소를 개업하기 전인 지난 94년 안마만 전문으로 하는 업소를 차렸으나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국내 안마업소가 성매매와 결합된 형태의 영업을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다. ‘3저(저유가ㆍ저금리ㆍ달러 약세)’에 따른 경기 호황으로 기업들의 접대비 씀씀이가 커지자 성매매 산업이 급팽창하기 시작했는데, 안마업계에도 이에 편승한 변태 영업이 등장했다. 이 ‘신종’ 안마업소는 90년대를 거쳐 지금의 안마시술소로 정착됐고, 2000년대에는 자본금 10억원대의 기업형 업소가 대거 등장했다.

누구나 서비스 받는 안마원 육성 꿈꿔

이처럼 안마업소가 ‘유사 성매매 업소’로 변신하는 과정에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는 게 안마사들의 주장이다. 정부가 안마업소의 변태 영업을 묵인하는 대신 일반 장애인 업체에 주는 혜택을 전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체 직원의 2%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하는 사업주는 1인당 30만∼60만원의 고용장려금을 받게 돼 있지만, 안마시술소는 이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안마사들이 고용 관계가 아닌 도급 형태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박 원장은 “안마사들에게 월급을 주기 때문에 일반 고용 관계와 똑같다”고 반박했다. 또 안마시술소는 룸살롱 등과 같은 유흥업소로 분류돼 높은 종합소득세율(33%)을 적용받는다. 이 때문에 부가세 면세 혜택이 있음에도 세제 지원 효과는 거의 없다.

안마사들은 이번 기회에 자정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한안마사협회는 퇴폐 이미지가 강한 안마시술소 대신 순수 안마 서비스만 제공하는 안마원을 육성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개방된 공간에서 순수 안마만 제공하는 안마원이 정착되면 주부와 학생들도 적은 비용으로 쉽게 안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지난 2002년 처음 선보인 이 제도가 성매매특별법을 계기로 빠르게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마사들은 이런 자정 노력이 성공하려면 △장애인 고용 장려금 지급 △종합소득세율 인하 등의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산의 한 안마시술소 시각장애인 업주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본력이 강하고 교묘하게 단속을 피해가는 기업형 업소들은 더욱 잘나가고 있다”며 “자정 노력을 하는 업소들이 이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현수 원장은 “안마는 시각장애인들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업종”이라며 “16만 시각장애인들이 자립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마, 30여개 과목 이수해야 하는데


안마사의 미래는 곧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미래다. 안마가 시각장애인들의 유일한 고소득 직종이기 때문에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대부분 안마사가 되기를 꿈꾼다. 서울맹학교 등 전국 12개 시각장애인학교에서는 안마를 필수과목으로 두고 있다. 이들 학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안마사로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안마사들이 겪고 있는 생계 위협은 이곳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맹학교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안마업소로 졸업생의 80∼90%가 취업했는데, 올해는 50%도 안 될 것 같다”며 “안마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곳 졸업생들은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학교 교사나 복지시설 취업 등으로 진로를 바꾸려는 학생들이 늘고 있지만, 이 직종은 수요가 적고 비장애인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한 해 400여명에 이르는 시각장애인학교 졸업생들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관계자는 “안마사 문제에 이곳 학생들의 생존권이 걸렸다”며 “정부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안마사가 되기 위해서는 30여개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과목은 침구·경혈·한방 등 한의학 과목뿐 아니라 해부·임상 등 의학과 관련된 것도 있다. 안마사 자격증을 따려면 각 과목마다 일정한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자격증을 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안마사 자격증은 보건복지부에서 발급하는데, 현행 의료법에 따라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주도록 규정돼 있다. 박현수 원장은 “안마사 자격증을 따면 일반 병원의 물리치료사로도 취직할 수 있지만, 병원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을 고용하지 않는다”며 “안마사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결국 안마업소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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