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과 연계된 성매매 업주 강력단속… 물대포 늘리고 방패 바꿔 과잉진압 시비 해소할 것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최기문(53) 경찰청장은 경찰 역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쳤다. 최고권력자가 ‘맘대로’ 임명했던 이전 청장들과 달리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검증을 통과한 경찰 총수다. 그래서 경찰 내부에서는 그를 ‘정통성 있는 청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첫 임기제(2년) 청장이기도 하다.
최 청장은 행시 18회 출신으로 지난 1981년 경찰에 투신했다. 청장 발탁 때 개혁적이고 추진력이 강하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경찰의 숙원사업인 수사권 독립과 자치경찰제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로 꼽혀 경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1인시위 단속과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전국 설치 추진과 관련해 시민단체들로부터 “인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최 청장을 지난 11월3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수사경찰 전문성 높일 ‘수사경과제’도입
- 청장 임명 때부터 수사권 독립을 강조했는데.
= 수사권 독립 문제를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 안타깝다. 수사권 문제는 전적으로 국민 불편 해소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수사에 관한 권한이 한곳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시민들은 이중의 불편을 겪고 있다. 어느 한 기관이 권력을 독점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견제와 균형, 자율과 책임이라는 민주주의 원리가 수사 절차에서도 필요하다. 경찰과 검찰이 이런 원칙에 동의했기 때문에 지난 9월 ‘수사권 조정 협의체’를 구성한 것이다. 우리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주장할 때마다 자질 문제를 거론하는데, 자질 문제는 수사권 논의의 핵심이 아니다. 일본 경찰은 1948년에 수사권을 갖게 됐는데, 그렇다면 그 당시 일본 경찰에 비해 지금 우리 경찰의 수준이 더 떨어진다는 얘긴가. 지금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하는 직원들을 보면 4년제 대학을 나온 우수한 인력들이 많다.
- 경찰의 수사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 유영철 사건이라든지,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등에서 시민들의 눈에 우리 경찰이 무기력하게 비친 측면이 있다. 최선을 다했으나 그만한 성과가 없어서 안타깝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지적을 안 듣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할 것이다. 수사 경찰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수사경과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수사 파트에서 독자적인 인사, 교육, 승진 시스템을 가동해 수사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경비부서 차출 등 다른 분야 근무가 면제돼 평생 수사에만 전념할 수 있다. 또 수사 단서에 의한 잡화점식 수사 체계에서 벗어나 강력, 조폭, 마약 범죄 등 죄종별 수사 체계로 전환해 좀더 과학적인 수사를 할 수 있다. 수사 경찰은 3∼4년 주기로 전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실제로 올 한해 동안 3700여명이 수사 전문 교육을 받았다. 내년에는 4400명 이상으로 늘릴 것이다.
- 경찰에 수사권을 줄 경우 인권침해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 인권침해는 강력한 징계로 다스릴 것이다. 수사 및 법 집행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면 해당 경찰관을 엄하게 징계할 것이다.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기에 앞서 경찰 내부에 강한 통제 장치부터 마련할 것이다.
- 요즘 여성들이 밤거리를 맘 놓고 못 돌아다닌다고 할 정도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 우리 경찰이 가장 신경쓰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통계를 보면 강도, 절도, 폭력 등 5대 범죄 발생률은 최근 줄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같은 기간(1∼10월)에 비해 9.8%(4만1500여건) 정도 감소했다. 물론 시민들이 과거보다 더 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면 이런 통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좀더 과학적인 대책을 세워놓고 있다. 대표적인 게 범죄정보 관리시스템인데, 이는 지역별·시간별로 어떤 범죄가 발생하는지를 분석해 범죄 취약 시간대와 취약 지역에 순찰을 강화하는 것이다. 또 현재 서울 강남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CCTV가 범죄 발생률 감소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서 이를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말년 경사’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 CCTV 설치에 대해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 않은가.
= 주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인권침해 시비가 일지 않을 것이다. 또 수사 목적이 아닌 다른 용도로 CCTV를 열람할 수 없도록 엄격한 관리기준을 마련할 것이다. CCTV는 전적으로 자치단체가 중심이 돼 운영된다. 우리 경찰보다 자치단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강남에 CCTV를 설치할 때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 인권침해 시비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 2006년부터 자치경찰제가 시행되는데, 일반 시민들은 자치경찰제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 자치경찰제는 수사권 독립과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도입하려는 것이다. 자치경찰제를 시행하면 국가 경찰과 자치단체 경찰이 서로 치안 서비스 경쟁을 하게 되므로 치안 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 그만큼 시민들의 삶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 자치단체의 치안 역량이 보강되면서 전체적으로 국가의 치안 수준이 향상된다. 그런데 자치경찰제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경찰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지역 치안 문제에 개입해주셔야 한다.
- 경찰인사는 ‘복마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재임 중 경찰인사 시스템을 개혁하겠다고 했는데.
= 청장 부임 뒤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이다. 지난 2003년을 경찰인사 혁신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경찰의 인사 적체는 다른 정부 기관에 비해 심각했다. 간부인 경위 자리가 너무 적어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직원의 80%가 간부도 못 해보고 퇴직할 정도였다. 경위 승진 대상인 경사는 한해 3만5천여명인데 경위 승진자는 370여명에 불과했다. 지방 일선 경찰서는 아예 경위 승진자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올 초에 경위 정원을 1700여명으로 늘렸다. 특히 은퇴를 코앞에 둔 ‘말년’ 경사의 35%는 시험만 통과하면 무조건 승진시켰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감사편지가 날아오더라. 평생의 한을 풀어줬다고…. (웃음) 경위 승진을 대폭 늘린 것은 내가 일선 서장으로 있을 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직원들과 자주 대화를 했는데, 나이 드신 경사분들의 가장 큰 소원이 경위 승진이었다. 경위면 파출소장인데, 평생을 경찰에 투신해서 파출소장도 못하고 퇴직하는 게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어떤 분은 사돈과 처음 상견례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직업을 제대로 밝히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내년에는 경위 정원을 2천명 규모로 늘릴 것이다.
- 고위직은 인사 때마다 로비 잡음이 끊이지 않았는데.
= 고위직 간부들은 공개 평가 방식을 도입했다. 주요 고위직은 보직공모제를 실시해 공개 경쟁을 시켰다. 자기가 가고 싶은 자리에 가려면 외부 인사들이 포함된 심사위원들의 까다로운 인터뷰를 통과해야 한다. 새로운 자리에 가서 어떻게 일할지 비전을 밝혀야 되는데, 충분한 학습이 안 돼 있으면 통과하기 어렵다. 옛날에는 술 잘 마시고 아부 잘하면 고위 간부가 됐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다.
인권단체와 ‘경찰·시민 합동참관단’운영
- 경찰의 시위 진압 방식이 국민의 정부 때보다 과격해졌다는 지적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1999년에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힌 이후 경찰은 그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 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집회 참가자들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경찰에게 다가와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다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합법 집회는 주최쪽 책임 아래 자율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불법·폭력 시위에 대해서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 비해 폭력시위도 크게 줄었다. 올해 1∼9월 폭력시위는 55건인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89건에 비해 38% 정도 감소한 것이다. 폭력시위대의 접근을 안전하게 막기 위해 현재 3대뿐인 물대포를 내년에는 29대로 늘릴 것이다. 또 경찰의 방패 끝을 날형에서 둥근 봉형으로 바꿔 충돌 때 부상이 없도록 할 것이다. 경찰의 과잉진압 시비를 없애기 위해 인권단체가 참여하는 ‘경찰·시민 합동 참관단’을 운영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 최근 경찰의 1인시위 단속 방침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순수한 1인시위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우리가 단속하겠다는 것은 변형된 1인시위다. 예를 들면 한 단체가 같은 주제로 같은 장소에서 번갈아가면서 하는 이른바 ‘릴레이 시위’ 같은 걸 단속하겠다는 거다. 지난번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왔을 때 1인 시위자가 던진 계란이 파월이 탄 차에 맞았는데, 만약 그게 계란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될 뻔했나. 이는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경찰의 입장을 시민단체들이 잘 이해해주길 바란다.
“국민 여러분, 경찰을 사랑해주세요”
- 성매매 업소에 대한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에 시민들의 많은 지지가 있었다. 반면 성매매 업주들은 지나친 단속이라고 반발했는데, 앞으로도 강력한 단속을 계속할 것인가.
= 물론이다. 성매매 종사자를 폭행하고 협박하는 등 인권유린을 일삼은 악덕 업주들에 대해 앞으로도 강력한 단속을 펼칠 계획이다. 특히 조직폭력배와 연계된 업주들이 1차 단속 대상이다. 또 경찰의 단속을 피해 주택가나 온라인으로 숨은 음성적인 성매매도 강하게 단속할 것이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난 9월23일부터 한달 동안 7만2천여명의 경찰관을 동원해 집중 단속을 한 결과 인권유린을 일삼은 악덕 업주 849명 등 모두 4365명을 검거했다. 이 중에는 성매수남도 상당수 포함됐는데, 이들은 사실 경찰의 ‘표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매매가 근절되려면 성매수남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내년 3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남은 임기 동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지난 여름에 성폭행 피의자를 검거하려던 경찰관 2명이 피의자의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일선 경찰들이 업무 중에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대한 보상은 형편없다. 이렇게 처우가 열악하니까 직원들이 현장 근무를 꺼린다. 그래서 공상을 당했을 경우 직업군인 수준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이번 정기국회 때 법안을 제출했는데, 하루빨리 통과됐으면 좋겠다. 일선 현장에서는 일부 시민들이 경찰관을 폭행하는 등 공권력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시민들도 경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버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시길 부탁드린다. 경찰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