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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김현희, ‘언니’에게 오라

등록 2004-07-28 00:00 수정 2020-05-02 04:23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김현희를 데리러 바레인으로 갈 때 무서워서 혼났어요. 북한이 김현희를 태운 비행기를 테러할 것이라는 정보가 있었거든요.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아무 말씀도 못 드렸죠.” 수사 기간 동안 김현희와 함께 생활한 여성 수사관은 당시 수사팀의 ‘막내’였다. 그는 남자 선배 수사관과 함께 김현희 압송 임무를 부여받았다. 1987년 11월29일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는 무기한 대기 명령을 받았다. 처음에는 다른 일을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12월13일 아침 김포공항으로 이동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임무를 통보받았다. “바레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는 200인분의 식사가 준비돼 있어 배불리 먹었는데, 서울로 오는 비행기는 극비리에 준비되는 바람에 식사를 싣지 못했어요. 그래서 10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그는 김현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남쪽 사람’이었다. 김현희가 처음에는 우리말을 전혀 하지 않아 수사관들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일본말 하다 중국말 하다 그러는데, 답답하더라고요. 정말 일본인이면 우리가 엉뚱한 사람 잡아다 놓고 있는 셈이 되니까 무척 긴장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김현희는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김현희가 자백을 시작한 뒤 “언니, 미안해”라고 말했다는 그 ‘언니’가 바로 이 여성 수사관이다. 김현희는 다른 수사관들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결국 지난 97년 결혼식을 올렸을 때 그 상대자는 자신을 돌보던 안기부 직원이었다.

하지만 돈독했던 김현희와 안기부의 관계는 지난해 11월 완전히 끊겼다고 한다. 잇따른 언론 보도로 신변에 ‘위협’을 느낀 김현희가 가족과 함께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우리도 김현희를 만나서 여러 가지 의혹을 확인하고 싶은데, 연락처를 몰라 애만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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