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maroon">페루 · 볼리비아 · 에콰도르에서 날아온 이방인 밴드들… ‘신나면서도 슬픈’ 안데스 음악에 푹 빠져보세요 </font>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노스뜨로스 베니모스 데 페루. 소모스 그룹뽀 위냐이(우리는 페루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위냐이입니다). 캄~사합니다.”
인사말이 끝나자 은은한 기타 선율에 실려 지하철역에 페루의 민속음악인 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무표정하게 걸음을 재촉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춰섰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걸어가던 20대 초반의 젊은이도, 교복을 입은 중학생도, 손을 꼭 잡은 머리 하얀 노부부도 모두 걸음을 멈춰 기웃거린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만 가득하던 삭막한 공간은 순식간에 작은 콘서트장이 되었다.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던 이들은 어느 순간 흥에 겨워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벤치에 앉아 지루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던 여성도 발목을 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췄다. 엄마 손을 잡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오던 대여섯살 먹은 한 여자아이는 아예 밴드 앞에 신문지를 펴고 눌러앉았다. 지난 5월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역에 있던 사람들은 공연이 진행된 30분 동안 행복했다.
삼뽀냐와 케나 소리에 맞춰 히~호~
거리의 ‘이방인’ 악사들이 회색 콘크리트 공간에 색깔을 입히고 있다. 잉카문화의 중심지였던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에서 날아온 이들은 원주민 복장을 하고 자신들의 고유음악인 안데스 음악을 연주한다. 팬플루트처럼 생긴 ‘삼뽀냐’와 토착민들의 피리인 ‘케나’, 작은 기타 ‘차랑고’, ‘까하’라는 커다란 북 등을 들고 “히~호~” 하는 ‘추임새’를 넣으며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지난 3월 남미의 페루에서 날아온 ‘위냐이’라는 5인조 밴드다. 인디오 말로 ‘영원’이라는 뜻을 가진 ‘위냐이’는 훌리오(31)와 제랄드(26), 조나단(19), 프레드(18), 요한(17) 등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또 다른 ‘위냐이’ 팀까지 더하면 위냐이의 전체 멤버 수는 10여명으로 늘어난다. 페루의 국립민속음악학교 교사인 훌리오를 리더로 지난 2000년 2월 결성했고, 올해 3월 전통타악연구소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의 전통 타악과 안데스 음악을 접목한 ‘퓨전’ 음악을 고민하고 있는 연구소 방승환 소장이 일본에서 활동하는 위냐이를 “찜했고”, 페루의 위냐이팀이 ‘행운’을 잡았다.
앳된 얼굴의 조나단과 프레드, 요한은 대학생이다. 어렸을 때부터 악기를 만지며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갔다고 했다. 걱정하는 부모님에게 “돌아가면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가끔 가족과 친구들이 못 견디게 보고 싶지만, 외로움을 잊을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이 신기하다. 가장 나이 어린 요한은 “지도를 펴놓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 나라에 정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한국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안데스 전통음악을 많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위냐이에서 기타와 타악기를 연주하는 제랄드는 본업인 치과의사를 그만두고 ‘딴따라’의 길로 들어섰다. 제랄드는 “사람 입 들여다보는 것보다, 사람들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이들은 경기도 김포시 양곡에 둥지를 틀었다. 가끔 음식이 입에 맞지 많아 고민스럽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행복하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 지하철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것외에 이들은 경기문화예술회관이 주도하는 ‘모세혈관 프로젝트’에도 참가한다. 모세혈관 프로젝트는 경기지역 예술단체들이 읍·면·동 지역을 찾아 문화 혜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덕분에 경기 지역 곳곳의 초등학교, 주민회관 등을 찾아 한국 곳곳에 안데스 음악을 알리고 있다.
지명도 오르면서 단독 콘서트도
한국에서 ‘위냐이’가 비교적 ‘신참’이라면, ‘시사이’와 ‘잉카엠파이어’는 한국 공연 경력이 각각 5년차, 3년차인 ‘고참’들이다. 이들은 모두 지하철 공연 전문기획사인 ‘레일아트’(www.railart.co.kr) 소속으로, 전국의 지하철역과 기차역은 물론 서울 인사동, 신촌 등에서 공연하며 거리에서 잔뼈가 굵었다. 에콰도르 출신 5명으로 구성된 시사이는 한국에 안데스 음악을 처음 알린 밴드다. 지난 1999년 서울 정동극장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뒤, 이듬해부터 한국에 터를 잡았다. 공연 횟수가 많아지고 팬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원하는 곳도 계속 늘어난다. 공연의 무게중심도 초기의 지하철 예술무대에서 조금씩 벗어나 대학축제와 초청공연 등 외부행사로 차츰 옮겨가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있는 지하철 공연 말고도, 보통 일주일에 4~5군데에서 안데스 음악을 들려준다. 지명도가 올라가면서 지난 2002년에는 대학로에서 단독 콘서트도 열었다.
시사이 멤버인 호세(28)는 “큰 공연의 장점도 있지만, 지하철역에서 관객들과 가깝게 마주 보며 소통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며 “무표정하던 관객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흥겨워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페루와 에콰도르 출신 3명으로 구성된 잉카엠파이어는 각각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이 한국에서 의기투합해 만든 밴드다. “한국인들만큼 공연을 진지하게 감상하고 환호와 지지를 보내준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것이 한국 활동을 고집하는 이유다.
안데스 음악이 지하철과 거리에 울려퍼질수록 팬들의 사랑은 깊어진다. 서울 ㅊ여중 김아무개(15)양 등 여중생 세명은 지난해 6월, 서울 종로3가 지하철역에서 시사이의 공연을 본 뒤 안데스 음악 마니아가 되었다. 처음에는 이국적인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고, 두 번째부터는 “신나면서도 슬픈” 음악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아침마다 ‘위냐이’의 매니저인 김세라(35)씨에게 전화를 걸어 스케줄을 물은 뒤 학교와 가까운 곳이면 수업이 끝나고 달려간다. 맨 앞줄에서 흥겹게 박수치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얼마 전부터는 밴드 멤버들과 터놓고 얘기하고 싶어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인터넷 홈페이지(www.winay.co.kr)에 들어가 일정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중생 열성팬, 스페인어를 배우다
김양은 “음악선생님한테 자랑할 수도 있고, 안데스 음악이 좋아지면서 라틴아메리카를 더 배우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며 “처음에는 부모님이 밴드 쫓아다니는 걸 싫어했지만, 알아서 영어와 스페인어를 배우는 걸 보고 이제는 좋아하신다”고 귀띔했다.
‘고참’인 시사이(www.sisaykorea.co.kr)와 잉카엠파이어(cafe.daum.net/
incaempire) 역시 인터넷 팬카페를 통해 팬들과 교류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공연 일정과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팬들의 감동 어린 글을 보면 인기가수가 부럽지 않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 찾아온 이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에게 지구본 저편, 남미의 향취를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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