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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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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마약 혐의, ‘범죄자’ 좌표 대신 ‘치료·보호’ 먼저

치료보호·사회복귀는 국가 의무, 마약류 단순 소지·투약자는 치료 중심으로 운영해야
등록 2023-11-03 13:30 수정 2023-11-05 05:36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씨가 2023년 10월28일 오후 조사받기 위해 인천 논현경찰서에 있는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씨가 2023년 10월28일 오후 조사받기 위해 인천 논현경찰서에 있는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연예인 마약 투약 사건. 이렇게 짜릿한 소재도 드물다. 베일에 싸인 은밀한 사생활이 드러난다. “그럴 줄 알았다!” 마음껏 손가락질해도 되는 신호가 된다. 2023년 10월20일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씨’로 시작하는 기사가 일제히 쏟아졌다. 어디서 누구와 투약했는지 의심되는지부터 입건, 출국금지, 소변검사, 진술 태도까지 수사기관만 아는 내밀한 내용이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마약사범 방송 출연 금지를 검토하겠다”(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같은 대책도 곁들여졌다.

모두가 돌을 던졌다. 나쁜 마약을 투약했다(고 의심되)는 나쁜 사람이니까. 이선균 보도에만 그치지 않는다. 후속으로 배우 이름 여럿이 등장했다. 아직 제대로 수사되지 않았지만 검찰 수첩을 꿰뚫어본 듯한 내용이 보도된다. 자극적인 헛소문도 아무렇지 않게 매스컴을 탄다. 2023년 4월 배우 유아인씨 마약류 투약 의혹에는 ‘뇌피셜 기사’가 난무했다.

김영호 한국중독전문가협회장(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은 이런 보도 행태가 마녀사냥이라고 단정한다. “마약류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을 편견과 낙인, 비난과 차별의 대상으로만 삼아 이 사람들이 ‘치료 장면’으로 나오는 걸 포기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선균씨가 마약을 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범죄’라는 점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마약에 경계심을 주기보다는 치료받을 사람들이 숨어들게 하고 중독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하는 결과를 만듭니다.”

‘일단 패고 보자’는 식의 처벌·보도 관행은 약물(마약류)중독자가 치료받을 기회를 빼앗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단순 투약·소지자가 중증 중독자가 되도록 내몰고, 판매상·밀매범이 되도록 하는 악순환을 조장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치료 기회 잡은 약물중독자는 2.5%에 불과

김영호 협회장은 “마약류 투약은 법을 어기는 거지만, 한편으론 중독이라는 질병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독에 치료’를 보증하는 것은 법에 명시돼 있다. 약물(마약류)중독자의 치료보호와 사회복귀에 필요한 조처(연구·조사·재원마련 등)는 국가의 의무(마약류관리법 제2조의 2)다. ‘국민은 마약류 중독자에 대해 치료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문구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찰과 검찰은 마약에 대해 ‘질병’의 관점은 없다. 정부와 수사기관의 편향된 인식은 치료 통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2022년 치료 기회를 잡은 약물중독자는 △치료보호 421명 △치료감호 18명 △다르크(민간약물중독 재활치료 센터, 경기·인천·김해·대구 4곳)를 통한 치료 30명 등 469명에 불과하다. 전체 검거 인원 1만8395명의 2.5%에 불과하다. 숨은 약물중독자(50만~100만 명 추정)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미미하다. 처벌도 ‘큰상선’(대규모 판매자)을 소탕하기보다 투약·소지자(51.7%)나 소규모 마약판매자 중심으로 이뤄진다.
특히 검찰이 의뢰한 치료보호·감호는 25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중독자 스스로 병원 문을 두드린 경우다. 그마저도 상당수는 병상과 의사, 예산이 없어 되돌아가야 한다. 반복적인 마약류 복용으로 구속된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의 맏아들은 정신감정 등을 통해 2023년 9월13일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치료감호 처분을 받아 항소를 포기했지만, “형량이 약하다”는 검찰 쪽 항소로 치료가 시작되지 않고 있다.

약물중독 치료의 권위자인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전국에 21개 지정병원이 있지만 예산이 없어 국립병원조차 환자를 받지 않습니다. 중독은 질병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니, 검찰은 치료보호를 의뢰하거나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2022년 치료보호를 받은 중독자(421명) 가운데 대부분은 인천 참사랑병원(276명)과 국립부곡병원(134명)을 이용했고, 나머지 19개 병원에서 13곳은 치료 실적이 단 한 건도 없다.

심지어 보건복지부가 요구한 약물중독자 치료지원 2024년도 예산(28억600만원)은 기획재정부 심사에서 삭감돼 4억1600만원으로 동결됐다. 전쟁을 벌이겠다면서 총알은 못 사준다는 격이다. 마약류 범죄 재범률은 36.6%(2021년 기준)로 절도(22.8%), 강도(19.7%) 등 다른 범죄보다 훨씬 높다.

아이돌 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씨가 2023년 10월12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돌 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씨가 2023년 10월12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담 중심 지원정책도 현실과 동떨어져

“처음에 약물중독을 혼자 해결하려 했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단약(약물 끊기)을 결심한 뒤 유튜브에서 단약하는 방법 등을 검색했고,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지금 센터(다르크)까지 오게 됐습니다. 재활시설에 입소해보니 약물중독 문제가 심각한데도 대부분 센터장의 사비로 운영되는 등 정부 지원이 너무 부족합니다. 약물중독으로 다르크에 ‘도와달라’ ‘살려달라’는 전화가 매일 오지만 수용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약물에 호기심을 갖는 어린 친구가 많은 것으로 알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단 한 번이라도 손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약물중독은 혼자선 해결할 수 없으므로 용기 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길 바랍니다.”

10월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가수 남태현씨가 한 말이다. 그는 현재 인천다르크에 입소해 치료받고 있다. 남씨는 입소치료를 강조했지만, 정부의 약물중독 지원 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정부는 주간 상담센터 중심의 마약중독재활센터를 기존 2곳(서울·부산)에서 대전에 1곳 더 설치해 3곳으로 늘린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전문가와 회복자들은 ‘상담’ 역시 필요하지만, 치료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약물중독 회복자로 경기다르크를 운영하는 임상현 목사는 상담만으로는 약물중독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약물중독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얼굴이 많이 알려진 유명인들은 병원이나 재활센터를 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남태현씨는 정말 대단한 겁니다. 정부의 약물중독 지원은 낮시간 상담센터 중심이에요. 중증 중독자는 상담만으로는 회복이 어렵습니다. 입소시설이 있어야 중증 중독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습니다.” 조성남 원장은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모두 보건복지부(의사 중심)에서 담당하지만 마약류 중독만 식품의약품안전처(약사 중심)에서 맡고, 보건복지부도 (이에) 크게 반발하지 않습니다. 마약류 업무를 두려워하고 귀찮아하는 것은 아닌지. 재활도 치료의 일부라고 문제 삼았더니 ‘사회재활’이란 말을 만들었더라고요. 사회재활에선 약처방도 안 되고 입원도 안 됩니다”라고 했다.

또 다른 범죄 씨앗이 되는 ‘치료 부족’

치료 부족은 또 다른 범죄의 씨앗이 된다. 조 원장은 말했다. “호기심 등으로 일단 한번 접하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다시 시작하고 (그런 일이) 반복되죠. 중독 재발로 10년씩 감옥을 들락거려도 중독 치료 병원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임 목사의 의견도 비슷하다. “이 아이들이 회복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감옥 가고, 감옥 가서 다른 중독자를 만나 더 깊게 빠지고 판매상이 돼서 다른 사람한테 마약을 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조 원장은 연예인의 마약 관련 뉴스가 나오는 시점을 마약 예방의 기회로 삼자고 말한다. “이선균씨가 오죽하면 ‘범죄 시인’이 되는 걸 알면서도 협박범을 신고했겠습니까. 유명인들에게 재발하는 이유도 빨리 치료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황하나씨가 그렇잖아요. 유아인씨나 돈 스파이크 등도 치료를 못 받고 있잖아요. 제대로 된 회복자가 다른 중독자를 돕는 것이 중독 치료에 가장 효과가 있어요. 유명인이 치료받고 회복돼서 ‘중독은 무서운 질병이다’ ‘그래도 회복이 가능하다’고 알리면 예방 효과도 매우 클 겁니다.”

이관희 전 경찰대 교수는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 주나라 때 의사 편작의 예를 들었다. “큰 병을 고치는 자신보다 병이 생기기 전에 원인을 제거하는 큰형과 병이 미미할 때 치료하는 둘째 형이 자신보다 더 훌륭한 의사라고 했어요.”

이 전 교수는 예방하지 않는 이유가 ‘실적주의’와 관련 있다고 말했다. “어떤 범죄든 그 범죄가 얼마나 나쁜지 평가하기 전에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죠. 수사는 아무리 잘해도 마이너스를 제로로 올려놓은 겁니다. 애초에 그런 문제가 안 생기게 하는 예방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방은 성과가 수치로 나타나지 않아요.” 정부나 공무원이 수사 쪽으로 집착하는 이유다. “일부 유럽 국가처럼 마약류 단순 소지·투약자를 치료를 중심으로 운영하면 판매자에 대한 신고가 늘어나서 마약류가 억제된다”고 설명했다.

‘너 처벌 조금 받으려면 대라’는 식의 수사

치료가 빠진 엄벌은 마약류 억제에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쏟아지지만 정부는 왜 기조를 바꾸지 못할까. 또 검경 수사는 왜 투약·소지자나 소규모 판매자만 검거하는 수준에서 못 벗어날까. 급기야 ㄱ씨가 마약류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구속돼 3개월 넘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2023년 8월 풀려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른 마약사범 ㄴ씨가 ㄱ씨를 마약밀수범이라고 제보했는데, 검찰이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마약류 전과자는 나쁜 놈’이라는 인식만 가지고 ㄱ씨를 구속해 재판에 넘긴 것이다. 억울한 피해자는 ㄱ씨뿐일까.

“현행 수사 자체도 문제가 많습니다. 수사기관들은 마약류 수사 대상자를 노예처럼 취급합니다. ‘너 처벌 조금 받으려면 대라’는 식으로 딜(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정보로 수사합니다. 이선균씨도 형이 확정된 것이 아닌데 피의사실이 언론에 며칠을 대서특필되지만 누구도 문제 삼지 않죠.”(이관희 전 교수)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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