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동생은 형편이 좋다

이재오·정두언 등의 도전에도 권력 독점해온 이상득 의원이 건재한 이유
등록 2011-01-19 15:08 수정 2020-05-03 04:26
이상득 의원. 한겨레 탁기형

이상득 의원. 한겨레 탁기형

상왕, 영일대군, 만사형통….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에게 따라붙는 별명이다. 지난 연말엔 누리꾼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명박상득’(命薄相得·명이 짧아야 서로에게 이롭다)이란 말도 만들어냈다. 그만큼 국회의원으로서 위임받은 것 이상의 권력을 이 의원이 누리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증거다.

여권 내부 권력투쟁의 정점엔 늘 이 의원이 등장한다. 대선 경선에서 ‘적’이었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쪽과는 워낙 치열한 경쟁을 벌였기에 ‘철천지한’이 남았다손 치더라도, 함께 정권을 교체한 이명박계 안에서 왜 이런 사달이 벌어졌을까? 갈등과 분화의 씨앗은 승리자의 전리품인 인사와 18대 총선 공천 문제였다.

박영준은 이상득 보좌관 출신

이 정부 들어 첫 권력투쟁은 2008년 총선 공천으로 폭발했다. 이재오 특임장관과 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이명박계 의원들은 ‘개혁 공천’을 하려면 이 의원이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며 ‘반이상득 전선’을 형성했다. 그러나 불출마론이 터져나온 뒤부터 이 장관 등과 가까운 인사들의 공천에 제동이 걸렸다. 한나라당 안팎에선 “이 의원이 자신과 가까운 이방호 (당시) 사무총장을 내세워 공천을 좌우한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인식됐다. 공천 심사 과정을 잘 아는 한 한나라당 의원은 “비례대표 명단을 청와대와 이 의원, 이재오 장관·정두언 의원 세 군데서 작성했는데, 최종적으로 공천심사위원회가 선택한 안은 이 의원이 낸 명단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이재오·정두언계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이 의원 공천 반납을 촉구하는 이른바 ‘55인 파동’이 일어났지만, 이 의원의 ‘피’는 55명보다 힘이 셌다.

2008년 6월 정두언 의원의 ‘권력 사유화’ 발언은 잠잠해진 듯했던 권력투쟁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 이 의원 보좌관 출신의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현재 지식경제부 2차관)과 이 의원 등을 맹비난한 것이다. 이 정부 첫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 공공기관 인선 등을 주도한 건 박영준 차관으로 알려졌다. 또 이 의원이 사장을 지낸 코오롱 출신의 김주성씨가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에 기용되는 등 ‘이상득 라인’이 요직에 포진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일은 박 차관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일단락됐으나, 정 의원으로선 이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 됐다. 하지만 ‘형님’은 건재했다.

2009년 4월 재보선 때도 막후 권력 시비가 재연됐다. 이 의원이 자신과 가까운 정종복 전 의원을 공천하는 데 입김을 넣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근혜계 정수성 의원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논란이었다.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지자 당에선 ‘2선 후퇴’ 요구가 들끓었다. 이 의원은 그해 6월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당과 정무, 정치 현안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서야 했다.

입버릇처럼 스스로 피해자라 주장

그렇다고 이 의원의 힘이 빠졌을까? 이 의원과 가까운 임태희 전 의원과 원희룡 의원은 지난해 각각 청와대 대통령실장과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당·청의 핵심 인사가 여전히 이상득 라인으로 채워진 것이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구명 로비 의혹,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유임 로비 의혹 등 권력형 비리 의혹에도 언제나 ‘형님’은 등장한다. 최근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을 이 의원이 알고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 의원은 억울하다. 측근들은 “이 의원은 이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정치를 시작했고, 무슨 결정을 할 때도 서로 의논하거나 그러지 않는다. 동생이 대통령이기 때문에 온갖 억측에 시달리는 피해자”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진짜 억울한 건 누굴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