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시설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라고 했더니, 기업들이 배출 감축을 위한 투자는 하지 않고 배출권만 사들이고 있다.’
2025년 시행 11년을 맞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요약된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로부터 제출받은 ‘배출권거래제 환경·경제적 영향분석 및 연구’(2025년 12월) 보고서에 근거한 평가다. 이 보고서는 기후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숙명여자대학 산학협력단(총괄책임 안영환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에 의뢰해 작성됐다.
2015년부터 시행된 배출권거래제는 제1차 계획기간(2015~2017년), 제2차 계획기간(2018~2020년),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의 11년을 거쳐 2026년부터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이 시행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허용총량을 정한 뒤, 기업별로 배출권을 할당하고 할당량보다 많이 배출한 기업은 배출권거래시장에서 배출권을 사고 적게 배출한 기업은 남은 배출권을 팔 수 있게 한 제도다. 배출권 일부는 정부가 경매로 팔고(유상할당), 나머지는 무상으로 준다(무상할당). 기업이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도록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다. 배출권거래제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70% 이상을 관리하는 핵심 감축 수단이다. 제도 시행 11년이 지난 시점에 정부가 제도 이행의 효과를 점검하고,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NDC) 이행을 위한 제4차 계획기간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이 보고서 작성을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고서에서는 제3차 계획기간 제4차 이행연도(2024년) 배출권 할당 대상 업체 776개사를 대상으로 2025년 11월12일~12월1일 배출권거래제에 관한 인식과 대응, 온실가스 감축 노력과 성과 등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461개사(59.4%)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제3차 계획기간 중 진행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인 내부 감축사업(설비 교체, 공정 개선 등)이 ‘없다’고 응답한 업체가 62.5%(288개사)에 달했다. 내부 감축사업이 ‘있다’고 응답한 업체는 37.5%(173개사)에 그쳤다. 부문별로 보면 내부 감축사업이 없다고 응답한 업체 비율은 건물 부문이 80%(24개사)로 가장 높았고, 이어 전환(발전) 76.8%(43개사), 수송 75.6%(31개사), 폐기물 58.3%(28개사), 산업 57.1%(157개사), 공공·기타 45.5%(5개사) 순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내부 감축활동에서 저조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배출권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내부 감축을 위해 투자하는 비용보다 싼 배출권을 사는 게 유리한 선택이 된다. 배출권 가격은 2015년 도입 초기에 톤(t)당 1만원 안팎으로 시작했고, 2020년 초 4만2500원으로 정점을 기록했다. 이후 2025년까지 다시 1만원 안팎으로 하락세를 보이다, 2026년 9월9일에는 종가 기준 3만450원을 기록했다.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EU ETS)의 2026년 9월 배출권 가격인 t당 85유로(약 13만원)보다 크게 낮은 가격이다. 이에 보고서에서는 “제3차 계획기간에 크게 하락한 배출권 가격의 영향으로 저렴한 감축 수단의 적용이 가능한 기업에서만 내부 감축활동이 진행된 것”이라며 “배출권거래제가 산업 부문 전반적으로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배출권 가격의 적정 수준으로의 유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기업들은 배출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배출권 구입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출권이 모자라 다른 수단을 써야 했던 194개사 중 70.1%(136개사)는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할당량을 채웠다. 설비투자나 공정 개선으로 배출을 줄여 해결한 곳은 24.7%(48개사)였고, 이전에 남겨둔 배출권(이월 배출권)을 활용한 곳은 22.2%(43개사)였다.(복수응답) 2023년과 2024년 설문조사 때도 이번 조사와 마찬가지로 배출권 구입으로 모자란 배출권을 채운 비율이 각각 74.8%, 78.7%로 가장 많았다. 박지혜 의원은 “배출권 할당 대상 업체의 62.5%가 제3차 계획기간 내내 내부 감축사업을 하지 않은 것이나 많은 기업이 배출권이 모자랄 때 배출권을 구입하는 것은, 감축 설비에 투자하는 것보다 배출권을 사는 편이 싸도록 제도가 설계됐던 탓이 크다”며 “과도한 무상할당(90%·유상할당 10%)에 잉여배출권(배출량이 할당량보다 적어 남게 된 배출권)까지 누적되면서 가격신호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3차 계획기간 내부 감축활동 수행 여부. ‘배출권거래제 환경·경제적 영향분석 및 연구’ 보고서
또 할당 대상 업체들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은 저탄소 기술 개발보다는 내부 공정 개선, 설비 효율화 등 단기적이고 확실성이 높은 감축 수단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제4차 계획기간에 진행 예정인 내부 감축과 관련해 계획된 사업이 있다고 응답(복수응답)한 업체는 83개사(18%)였다. 이 중 내부 감축활동 유형은 ‘고효율 설비 설치 및 설비 성능 개선’ 56.6%(47개사),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력생산 및 자가소비’ 53%(44개사), ‘미활용 열에너지 회수 및 이용’ 30.1%(25개사) 순이었다. 반면 저탄소 기술 개발에 해당하는 ‘기존 연료에서 저탄소 연료로의 전환’은 20.5%(17건)로 낮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배출권거래제가 아직 기업의 근본적 기술 혁신보다는 운영 효율화를 유도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배출권거래제는 배출허용총량이 많고, 무상할당 비율도 높아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이에 2026년부터 시행 중인 제4차 계획기간에서는 배출허용총량을 제3차 계획기간 대비 약 16.8% 줄였다. 유상할당도 이전 10%에서 발전 부문에서는 2026년 15%에서 시작해 2030년 50%까지 확대하고, 발전 외 부문에서는 15%로 높였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강한 나라에서 규제가 약한 나라로 생산시설을 옮겨 지구 전체 탄소배출량을 높일 수 있는 탄소누출 우려 업종인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의 경우에는 여전히 100% 무상할당을 유지했다.
박지혜 의원은 “제4차 계획기간은 전체 무상할당 비율이 실질적으로 89% 수준이고,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탄소누출 우려 업종이 가격신호를 가장 적게 받는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계를 지적하며 “제5차 계획기간(2031~2035년)을 준비하는 지금부터 무상할당 축소 경로를 분명히 하고, 유상할당 수익은 감축할 여력이 없는 중견·중소기업의 설비 투자를 지원하는 등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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