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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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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보고’ 거제 노자산, 답정너 골프장을 거부한다

눈가림과 꼼수로 개발 밀어붙이는 카르텔… 지칠 줄 모르고 맞서는 노자산지킴이들
등록 2026-07-30 21:28 수정 2026-08-0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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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 거제도 남쪽 끝 노자산에 자생하는 대흥란.

경남 거제시 거제도 남쪽 끝 노자산에 자생하는 대흥란.


 

“여기서 보기로 한 거 맞나?”

2026년 7월5일 경남 거제시 거제도 남쪽 끝 노자산의 옆구리를 타고 올라가다 난데없이 나타난 작은 주차장에 섰다.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맞닿아 있는 노자산은 늦장마 습기를 머금고 짙푸르렀다. 거기서 노자산지킴이들과 생태계 이슈를 다루는 창작 집단 ‘이동시’ 멤버들을 기다렸다.

검은색 에스유브이(SUV) 자동차가 들어왔다. 왼팔에 검정 토시를 낀 60대 남자가 내렸다. 8자 모양의 낡은 은색 벨트 버클이 반짝였다. 남자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노자산지킴이들이랑 대흥란 보러 왔죠.”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언가 잘못됐다. “그런데 누구세요?” 남자가 답했다. “이 산 주인이오.” “에이, 거짓말.” “경동건설 상무요.” 남자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사라졌다.

 

시민들 답사조차 막아서는 건설사

 

10여 분 지나 원종태(58)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생태조사팀장이 팔을 휘휘 저으며 나타났다. 동글한 인상의 그는 시집 ‘시로 쓴 생물도감’ 등을 낸 시인이라 ‘원시인’이라고 불린다. ‘대흥란 함께 삽시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노자산지킴이 박소현(44)씨도 함께다. “차가 따라붙었어.” 이동시 멤버가 속삭였다. 원시인이 차도 옆 수로를 따라 걷다 멈췄다. 그 길로 산을 오르면 곧 ‘대흥란 이식지’가 나온다. “못 들어가요.” ‘상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막아선다. “살짝 보고 올게요. 시시티브이(CCTV) 다 설치해두셨잖아요. 저 아시잖아요.” 원시인이 구슬렸다. “원 선생이야 잘 알지요.”

아무렴, 요즘 원시인을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상무’일지 모른다. 노자산 자락 마을 사람들은 원시인의 차 번호도 안다. 그의 차가 노자산 근처에 주차되기만 하면, 경동건설 쪽 관계자가 나타난다.

대치가 팽팽해진다. 지쳐 보이는 ‘상무’가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마을 사람들 부를까요?” 원시인은 후퇴하기로 한다. 소현씨는 화가 났다. “약자 대 약자의 싸움이 돼버렸어요.” 내일 작전을 소곤소곤 짰다. “두 팀으로 나눠 성동격서식으로 합시다.”(원시인)

우여곡절 끝에 대흥란 군락을 보았다. 쭉쭉 뻗은 곰솔이 하늘을 가렸다. 두 팔로 다 안지 못할 크기의 100년 이상 나이 든 곰솔은 검었다. 그 아래 엄지손가락 길이의 난이 올라왔다. 흰색 꽃잎 안쪽이 붉었다. “별로 안 예쁜데요.” 곁에 선 소현씨가 말했다. “의미를 알면 더 예뻐져요.”

이 꽃에 노자산의 운명이 걸려 있다. 팔색조, 긴꼬리딱새, 거제외줄달팽이와 거제도롱뇽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 10여 종, 솔개·두견이 등 50여 법정보호종의 삶터가 골프장으로 갈아엎어질지 이 소박한 꽃에 달렸다.

 

경남 거제시 거제도 남쪽 끝 노자산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거제외줄달팽이.

경남 거제시 거제도 남쪽 끝 노자산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거제외줄달팽이.


 

‘새빨간 거짓’ 덜미, 그러고도 ‘협의완료’

 

2017년 거제시와 경동건설은 노자산 일대에 27홀 골프장과 호텔 등을 짓는 약 370만m² 규모의 관광단지 지정을 신청했다. 이듬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고 2019년 경남도는 ‘거제 남부관광단지’ 지정 고시를 한다. 핵심은 노자산 정상 부근에서 해발 350m 지점까지 다랑논처럼 이어질 골프장이다.

첫 단추인 전략환경영향평가서부터 수상했다. 평가서엔 팔색조도 대흥란도 없다. 법정보호종은 황조롱이 한 마리가 전부다. 아니나 다를까, 노자산을 조사한 연구소와 그 대표는 환경영향평가서 96건을 거짓 작성한 혐의로 2023년 벌금 1천만원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는다.(2025년 대법원 확정) 이 중 노자산 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었지만, 경찰 수사 결과 연구소 대표가 노자산 현장 조사를 한 번도 안 했으면서 7차례 조사한 것처럼 꾸며 식생조사표 41건 중 10건을 허위로 작성한 게 드러났다. 2025년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은 ‘거짓·부실 전문 검토위원회’를 열어 노자산 건을 포함해 관할 지역 85개 사업의 환경영향평가가 ‘거짓’이라고 의결했다. 바뀐 것은 없었다. 환경부 낙동강유역청 관할 내 84곳은 이미 공사 중이거나 완공됐다. 유일하게 첫 삽을 뜨지 않은 거제남부관광단지 사업은 착공까지 사업 승인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생태·자연도 1등급지는 멸종위기종의 주된 서식지로 개발할 수 없다. 국립생태원이 5년마다 조사한다. 거짓으로 작성된 노자산 전략환경평가서엔 1등급지가 개발 예정지의 1.8%(6만2500㎡)에 불과하다고 적혀 있다. 환경단체가 시민과 함께 산으로 가서 대흥란, 팔색조 둥지, 거제외줄달팽이를 줄줄이 찾아냈다. 2023년엔 경남도 및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과 공동 조사를 벌여, 대흥란 727개체와 거제외줄달팽이 22마리를 찾았다. 생태·자연도 1등급지 범위는 오락가락하다 41%(151만㎡)로 조정됐다. 그런데 2022년 사업자가 전략환경영향평가서의 후속으로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생태·자연도 1등급지 1.8%’를 적용했고, “행정의 연속성과 신뢰성”을 이유로 2023년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이를 협의완료한다.

단, 협의에 조건을 걸었다. 사업부지에서 확인한 대흥란 230촉 가운데 10%인 23촉을 먼저 시범 이식한 뒤 최소 2년간 생존이 검증될 경우, 나머지 개체를 이식해 사업을 추진하도록 한 것이다. 이식 성공 여부는 승인기관인 경남도, 협의기관인 낙동강유역환경청, 국립생태원, 한국환경연구원, 국립생물자원관이 추천한 전문가 그룹이 판단하도록 했다.

 

일본인 전문가 “대흥란 이식, 성공 어려워”

 

2024년 6월25~28일, 운명의 대흥란 23촉이 이식됐다. 2026년 7월, ‘최소한’의 시간으로 정해놓은 2년이 됐다. 7월10일, 뙤약볕 아래 노자산은 소란스러웠다.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에서 ‘이식 실패’ 기자회견을 여는 날이다.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엔 동부·남부면발전위원회와 인근 마을 사람들이 손팻말을 들었다. ‘팔색조, 대흥란, 달팽이 쳐다보고 있으면 묵을 기 나오나?’ 한 주민이 마이크를 들었다. “이 지역은 발전이 안 됩니다. 이렇게 반대하면 누가 투자하겠습니까?” 길 맞은편에서 반박한다. “이런 산에 골프장 짓는 게 말이 됩니까? 대흥란 이식 과정 전체가 꽝이라.”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은 전문가 그룹이 이날 노자산에 온다는 ‘첩보’를 들었다. 전문가 그룹이 ‘이식 성공’을 발표해버려도 반대하는 쪽에서 검증할 방법은 없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의 질의에 대한 거제시의 답변 자료 등을 보면, 2024년 6월25일부터 28일까지 대흥란 이식 과정에서 전문가 그룹은 27일 하루, 2시간 동안 현장을 방문했다. “사업자인 경동건설에서 이식했어요. 이식한 대흥란 옆에는 작대기를 꽂아놨어요. 작대기 옆 대흥란이 자생한 건지 이식한 그 대흥란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초등학교 과학실험도 이렇게는 안 해요. 정보공개요청을 해보니, ‘전문가 그룹’에 대흥란과 관계없는 뉴트리아 박사, 산림토목 전공 교수, 석사가 포함돼 있더라고요. 지금은 이 중 두 명이 빠지고 세 명이 추가됐어요. 객관성을 입증하려면 이해관계자와 전문가가 참여한 공식 위원회가 투명하게 실험해야죠.”(원시인)

이에 대해 낙동강유역환경청 쪽은 “적법하게 이식을 허가했고 이식도 적절하게 이행됐다”고 밝혔다. 또 “(환경단체 쪽이) 뉴트리아 박사라고 말하는 분은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추천했는데, 수십 년간 멸종위기종 관련 업무를 수행한 전문가”라고 반박했다. 전문가 그룹을 운영하는 거제시 쪽은 “협의에 따라 전문가 그룹이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고 진행 과정은 비공개”라며 “언제 결과가 나올지도 전문가 그룹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주일 뒤인 7월16일 새벽 6시, 원시인은 오구라 유키 일본 사가대학 교수 팀과 노자산으로 들어갔다. 대흥란 등 난초와 균류 연구의 권위자인 오구라 교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대흥란이 이렇게 밀집한 지역은 보기 어려워요.” 잎이 없는 대흥란은 균근균의 땅속 네트워크에서 영양물질을 받는다. 이 균근균은 100년 이상 오래된 곰솔에 기대어 산다. 삼자공생관계다. “대흥란은 줄기에 영양분을 저장하고 있어 이식 뒤 2~3년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요. 그렇다고 이식에 성공한 거라 볼 수는 없죠. 땅속 네트워크로부터 단절되기 때문에 이식은 거의 불가능해요.”(오구라 유키 교수)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2026년 7월10일 노자산 대흥란 ‘이식 실패’ 기자회견을 열어 “골프장 건설을 중단하라”고 외치고 있다.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2026년 7월10일 노자산 대흥란 ‘이식 실패’ 기자회견을 열어 “골프장 건설을 중단하라”고 외치고 있다.


 

온몸 던지는 토박이 시인 “아름다움을 본 죄”

 

“호잇 호잇.” 다음날 아침 8시, 검정 장우산을 든 원시인과 노자산지킴이 소현씨를 따라 들어간 숲에서 팔색조 울음소리를 들었다. 2025년 6월20일 낮 12시30분, 소현씨는 팔색조를 처음 봤던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매일 아침 거제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한 지 2년이 되는 날이었다. “0.001초였어요. 말로 표현 못하겠어요. 보자마자 얘를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2023년 4월 벚꽃 비를 맞으며 노자산에서 콘서트를 본 날 이후 4년째 노자산에 매달려 있다. “힘들지 않아요?” 소현씨는 원시인을 가리켰다. “제가 그만두면 저 사람은 혼자 해야 하잖아요.”

원시인은 2023년 7월3일 노자산에서 팔색조를 보았다. “바위를 짚고 있는데 뒤쪽에서 팔색조 소리가 들렸어요. 탁 고개를 돌렸는데 팔색조 엄마랑 눈이 딱 마주친 거야. 알을 품고 있었어요. 헉, 나도 놀라고 걔도 놀라고. 서로 모른 척 가만히 있었어요. 제가 슬금슬금 후퇴했어요. 팔색조 눈이 새카만 게 고양이 눈처럼 컸어요. 발견의 기쁨이 얼마나 대단한데요.”

그는 안개에 휩싸인 대흥란 군락을 보았고, 그간 껍데기만 나와 애간장을 태우던 거제외줄달팽이 생체를 2019년 6월29일 빗속에서 와글와글 보았다. “꽃 한 송이 그게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꽃이 우리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근거예요. 개발 폭주에 유일한 제동장치가 환경영향평가법인데 너무 허술해요.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해요. 용역사는 사업자 입맛에 맞춰 어떻게든 생태 가치를 낮출 수밖에 없죠. 첫 단추부터 그렇게 끼워지니, 보세요. 우리 얼마나 힘들어요. 수백억 투자한 사업자는 또 얼마나 힘들겠어요. 환경영향평가를 공공기관이 객관적으로 벌이면 사업자도 제대로 투자할 수 있잖아요. 지금은 극한 대립뿐이에요.”

거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물었다. “공공의 적으로 사는 거, 힘들지 않아요?” “아름다움을 본 죄죠.” 시인은 휘청휘청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러 일어났다.

 

글·사진 김소민 자유기고가

 

*거제 노자산 생물들과 이를 지키는 사람들의 더 깊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를 글, 사진, 영상으로 담은 창작 집단 ‘이동시’의 ‘우리-경관’ 전시회가 2026년 10월15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온수공간에서 열린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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