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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케이블카 공사 예정지에 희귀식물 수백 개체 그대로 있다

희귀식물 군락지 나오고 운영 주체도 사라진 사업, 2025년 만료 앞두고 “지금이라도 취소해야” 비판
등록 2025-11-28 08:20 수정 2025-11-30 07:46
2025년 9월29일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가 들어설 상부정류장(1430m) 일대. 우리나라에 약 1% 남은 천연림이다. 착공 2년이 지났지만 아직 벌목 등 실질적인 공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2025년 9월29일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가 들어설 상부정류장(1430m) 일대. 우리나라에 약 1% 남은 천연림이다. 착공 2년이 지났지만 아직 벌목 등 실질적인 공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2023년 11월20일 강원도와 양양군이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공사를 시작할 때 밝힌 준공 예정일은 2026년 1월이다. 준공 예정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오색케이블카 공사는 공사 전 단계인 ‘희귀식물 조사’ 등 과정에 머물고 있다. 희귀식물 이식 기한인 2025년 6월 말 이후에도 현장에서 만병초 100여 개체 등 희귀식물이 무더기로 확인돼 축소·은폐 조사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다. 사업 점검 의무가 있는 환경청·국가유산청 등 정부기관들의 봐주기 의혹까지 나왔다. 앞서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전제조건이던 양양관광개발공사 설립이 무산(2025년 1월)되기도 했다. ‘조건부 허가’를 남발하며 정치적으로 무리하게 추진해오던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환경적·경제적 근거가 모두 흔들리는 셈이다. 2025년 말로 만료가 예정된 ‘공원사업 시행 허가’ 연장 여부에 이재명 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나무에 줄만 둘러놓은 채 멈춰선 사업

‘원주지방환경청·국가유산청과 협의한 결과, 내년(2026년) 봄 합동조사를 통해 이식 대상 희귀식물을 확정해 추가 이식을 진행하고, 그 전엔 벌목 등은 시행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시민 1107명이 제기한 오색케이블카 사업 시행허가 처분취소 소송 항소심 및 집행정지 신청 재판이 진행 중인 2025년 11월17일, 양양군은 재판부(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제1행정부)에 이런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간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던 관련 협의 기관들이 오색케이블카 공사 예정지에 대한 희귀식물 조사·이식과 점검이 실패했음을 시인한 것이다. ‘희귀식물 이식’은 윤석열 정부 시기인 2023년 원주환경청·국가유산청·국립공원공단 등이 잇따라 ‘조건부 허가(협의)’를 내리면서 내세운 공통 조건이다. 오색케이블카 첫 빗장이 풀린 2015년 8월 국립공원위원회 ‘공원계획 변경’ 조건부 승인의 하나이기도 하다.

박성율 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는 “희귀식물 이식 하나만 놓고 봐도 이 사업이 얼마나 부실하고 무책임하게 추진되는지 알 수 있다. 우리(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가 9~10월에 엉터리로 조사·이식한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해 지적해도 환경청 등은 수수방관했다”며 “이미 첫눈(10월20일)이 내린 상태에서 초본류 조사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봄까지 공사를 못하는데다 최소한 봄·여름·가을 세 계절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내년에도 저 공사가 시작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이 어떻게 보고받았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현장은 벌목하겠다고 나무에 줄만 둘러놓았지 실제 공사가 진행된 것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앞서 9월12일 이재명 대통령은 강원 타운홀 미팅에서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너무 많이 진행된 것 아니냐”며 “(중지 여론이 많다는 건 알지만) 중지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케이블카 자리에 희귀식물 수백 개체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쪽 얘기를 들어보면 2025년 10월 조사에서 5번·6번·상부가이드·상부정류장 등 정상부 케이블카 중간지주가 들어설 예정지에 분비나무 군락지를 비롯해 만병초·금강제비꽃·태백제비꽃 등 희귀식물 수십~수백 개체가 그대로 방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희귀식물을 옮겨 심었다는 대체 서식지에는 희귀식물 흰인가목 대신 일반 인가목이 엉뚱하게 심기는 사례도 확인됐다.

알고 보니 양양군은 이식 완료 기한을 한 달여 앞둔 2025년 5월19~20일 이틀 동안만 희귀식물 조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양양군 ‘희귀식물 조사 결과보고서’ 참조) 식물의 정확한 식별을 위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시점에 맞춰 조사해야 하는 기본 지침을 지키지 않고 일회성 조사로 대체한 것이다. 설악산 아고산대 지역의 만병초만 해도 꽃이 피어 눈에 띄는 시기는 7월이다. 체계적 계획 없이 이식 완료 기한이 돼서야 부랴부랴 조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0월24일 국가유산청 국정감사에서 ‘보존해야 할 국가유산에 대해 이렇게 민간업자들의 엉터리 보고서에 관해 현장 확인도 하지 않으면 되겠냐’(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질의가 나왔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이식하는 과정에서 (종자 및 뿌리번식으로) 퍼졌던 것 같다”는 상식 밖 답변을 했다. 박성율 대표는 “만병초처럼 매우 더디게 자라고 번식이 까다로운 식물이 저렇게 크게 자라 있는데 우연히 퍼졌다는 건 정말 기본이 안 된 답변”이라며 “내용도 양양군이 했던 해명과 같았다. 이행을 감시해야 할 기관들이 사업자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고 꼬집었다. 이기헌 의원이 제공한 답변 자료를 보면 심지어 국가유산청은 하부가이드·1번·2번·3번·4번 중간지주까지만 점검했을 뿐 ‘아고산대 핵심 식생 지역’인 5번 중간지주 위쪽은 점검하지 않았다.

원주환경청의 수동적인 대응도 논란이다. 7월10일과 9월19일 추가 현장 점검을 하고서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다가, 10월10일 환경단체들의 현장 확인 결과 발표와 관련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10월14일 뒤늦게 양양군에 ‘추가 발견된 희귀식물 이식 계획을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그마저도 한 달 뒤(11월13일)에야 회신을 받았다. 이에 대해 원주환경청 관계자는 “환경단체가 공사 중지 등을 요구했지만, 공사 중지 명령 조건인 ‘정당한 사유 없이 협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정도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연말까지 공원사업 시행허가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할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아직 신청이 접수되진 않았다. 환경영향평가 부분을 포함한 추진 경위와 향후 계획을 검토해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25년 6월25일 오색케이블카 4·5번 중간지주 노선 아래에서 발견된 산양 어미와 새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2025년 6월25일 오색케이블카 4·5번 중간지주 노선 아래에서 발견된 산양 어미와 새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2025년 5월25일 오색케이블카 4번 지주 일대. 멀리 오색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아직 국립공원 내 공사는 시작조차 못한 상황이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2025년 5월25일 오색케이블카 4번 지주 일대. 멀리 오색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아직 국립공원 내 공사는 시작조차 못한 상황이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오색케이블카 운영 주체조차 설립 안 돼

‘양양관광개발공사(가칭)를 설립해 지역관광 전반 업무를 하면서, 설악산 오색삭도(케이블카)를 공공위탁 형태로 전문 운영하겠다.’

2023년 6월 1172억원의 지방재정(양양군 948억원, 강원도 224억원 각각 부담)이 투입되는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중앙투자심사위원회(행정안전부) 지방재정투자심사를 통과할 때 양양군이 냈던 ‘타당성 검토서’(양부남 민주당 의원 제공) 중 ‘운영계획’의 첫 문장이다. 양양군 1년 예산(2025년 기준 4133억원)의 28.3%가 투입되는 막대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요건으로 ‘공사를 통한 전문적인 운영’이 제시됐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성 1.0697’을 받아 기준치(1.0)를 간신히 넘겨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그 핵심 고리인 ‘양양관광개발공사’가 2025년 1월29일 경제성·재무성·타당성, 설립 명분 부족 등의 이유로 지방공기업평가원 위원 전원 일치 의견으로 미승인 처리된 것이다. 이에 따라 2년간 양양군은 양양관광개발공사 설립을 재추진할 수 없다.

양양군은 “지방재정투자심사에서 ‘효율적인 운영’ 등이 승인 조건이었을 뿐, 반드시 양양관광개발공사를 통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해석을 내놓으며 “아직 (운영 주체가) 확정되진 않았다. 군 직영 등을 포함해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인철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상황실장은 “개발공사는 양양군이 밝혔던 유일한 오색케이블카 사업 운영 주체였다. 사업 추진 타당성의 전제가 상실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경제성·재정 문제는 민감한 지역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양양군이 오색케이블카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전체 사업비와 양양군 자체 부담 규모 등을 투명하게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일 미래양양시민연대 대표는 “2015년 587억원에 국비 지원 300억원 규모라며 추진했던 사업이다. 그러다 2023년 6월 지방재정투자심사 이후에야 정확한 사업비가 공개됐다. 지역사회의 충격이 컸다”며 “주민들에게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일단 하고 보자’는 식으로 졸속 추진한 게 아닌가. 일부 매몰비용이 있더라도 지금 취소하는 것이 양양군을 위해 나은 결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봉균 양양군의원도 “지난 2년간 향후 오색케이블카 관련 재정 부담 때문에 중앙정부 보조금 등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며 “지역에 돈이 말라가고 소규모 공사부터 크게 줄어 중장비 쪽 자영업자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와 박 군의원 모두 케이블카 찬성론자였다가 재정 문제 등으로 입장을 바꿨다.

양양군이 오색케이블카 경제성의 근거로 제시한 “해마다 57만 명의 관광객이 30년 동안 찾을 것”(지방재정투사심사 때 제출한 검토서)이라고 한 장밋빛 전망은 이번 국정감사 때 논란이 됐다. 10월24일 강원도 국정감사에서 양부남 의원은 “해마다 57만 명씩 30년간 온다는 말도 안 되는 데이터를 가지고 수익 구조를 짜는 건 열악한 재정을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전국 케이블카 현황 분석’(2022년 12월)을 보면 개장연도 4년차에 이용률(영업능력 대비 이용자 수)은 21.54%로 최고치를 찍은 뒤 10년차에 3.45%, 12년차에 1.47%까지 떨어진다. 또 전국(39곳) 케이블카 관련 이용객도 2015년 77만4731명에서 2019년 56만1379명으로 27.5% 감소하는 추세고, 운영 중인 곳 가운데 흑자를 내는 곳은 두세 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박 군의원은 “애초에 경제성이 있을 것 같으면 자신 있게 예비타당성조사를 통해 국비 지원을 받았겠지만, 경제성이 부족하니 그나마 허들이 낮은 지방재정투자심사로 선회한 것 아니겠느냐”며 “수익이 날지 안 날지 모르는 이런 사업에 민간사업자라면 한다고 했겠느냐”고 말했다.

 

2025년 9월29일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가 들어설 상부정류장(1430m) 일대. 우리나라에 약 1% 남은 천연림이다. 착공 2년이 지났지만 아직 벌목 등 실질적인 공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2025년 9월29일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가 들어설 상부정류장(1430m) 일대. 우리나라에 약 1% 남은 천연림이다. 착공 2년이 지났지만 아직 벌목 등 실질적인 공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정치적 욕망이 ‘조건부’ 누더기 사업 만들어

사실 그간 오색케이블카 허용 과정은 사회적 합의나 과학적 검토에 따르기보다 개발 욕망에 편승한 정치적 선택의 연속이었다. 2010년 국가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자연보존지구 케이블카 설치를 허용하고 그 허용 거리도 확대(2→5㎞)했다. 2015년 ‘친환경 케이블카’를 확대하겠다며 환경부 내 비밀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국립공원위원회의 설악산국립공원 변경 계획을 통과시켰다. 2023년엔 5개 전문기관 검토 결과를 깡그리 무시하고 부동의됐던 환경영향평가에 조건부 통과 도장을 찍어줬다. 정인철 상황실장은 “안 되는 걸 정치권 높은 곳에서 억지로 되게 해주다보니, 오색케이블카 관련 모든 허가 사항이 조건부에 걸려 있다. 사업자(양양군)는 문제 해결 능력이 없고, 협의 기관들은 위만 쳐다볼 뿐”이라며 “해결사 노릇을 하던 정치권과의 연결고리인 군수까지 구속(2025년 1월 구속 기소, 6월 1심 징역 2년 선고)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벌써 이 문제는 2026년 6월 지방선거 강원도지사 여권 후보의 입장에 따라 좌우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공동대표는 “결국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이 문제”라며 “전 국토의 4%에 불과한 국립공원은 ‘현재세대와 미래세대를 위해 보전되는 것’(자연공원법 제2조의 2)이 기본 원칙이라고 써놓고선 이걸 안 지키고 (케이블카를) 허가했다”고 말했다.

2025년 11월26일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공동대표가 설악산소공원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2025년 11월26일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공동대표가 설악산소공원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우리가 산길을 잘못 들었으면 처음 시작한 길로 내려와서 다시 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어요.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지금이라도 취소하는 게 양양군과 설악산을 위해 훨씬 더 나은 길이라고 생각해요.” 박 공동대표가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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