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적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30년까지, 앞으로 8년간 국가 차원에서 온실가스를 어떻게 줄일지에 대한 정부 계획이 최근 나왔다. 사실상 책임을 훗날로 미룬, 위기 대응을 외면한 계획이란 비판이 거세다. 온실가스 주요 배출원이 어디인지, 배출량 감축을 위해 실제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돌아볼 때다.
배출량 절반을 상위 10개 기업이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환경부는 2023년 3월21일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초안을 발표했다. 이 계획 수립을 정부의 의무로 규정한 ‘탄소중립기본법’이 공포된 지 1년6개월 만이다. 법정 수립 기한을 불과 나흘 남겨놓고 나온 초안은 현 정부 임기인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4890만t의 온실가스를 줄이고, 다시 2028년부터 목표 연도인 2030년까지 3년 동안 1억4840만t을 줄이는 게 뼈대다. 전체 감축량의 4분의 1만 현 정부가 감당한다. 그러면서 산업부문 감축률(고점인 2018년 대비 목표 연도인 2030년까지의 배출량 감소분)은 14.5%에서 11.5%로 낮췄다. 대신 전환(에너지 생산), 국제감축 부문의 부담이 늘었다.
이런 조처는 국내 배출량의 대부분을 기업이 배출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특히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 상황을 분야별로 보면 총 6억7960만t(2021년) 가운데 가정(4.7%)과 농업(3.1%) 정도를 제외하면 배출 주체가 기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강과 화학, 기타 산업 공정에서만 30%가 넘고 전기·열 생산(32.7%), 수송(14.4%), 폐기물(2.5%) 분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절반 이상이 산업에서 유래한다. 더 자세히 보면 몇몇 주요 기업에 몰려 있다.
사단법인 기후변화행동연구소는 3월22일 “대한민국 기후변화 책임 4분의 3이 ‘100만톤 클럽’에 있다”며 국토환경연구원,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와 함께 분석한 관련 보고서를 내놨다. 한 해 온실가스 배출량 100만t이 넘는 73개 국내 기업에 대한 분석이다. 이 100만톤 클럽은 앞서 2월16일 기후위기 전문매체 <뉴스펭귄>이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등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 대상업체(온실가스 연간 5만t 이상 배출) 1075곳(2021년)을 분석했다. 이 중 배출량이 100만톤을 넘는 기업만 분류했더니 73개가 나왔다. 이들 기업은 업체 수로 보면 6.3%에 그치지만 배출량은 5억974만t으로 국가 전체 배출량의 75%를 차지한다.
여기서 다시 기업 수를 상위 10개로 좁히면 문제가 또렷해진다. 100만톤 클럽 상위 10개 기업의 배출량은 3억1307만t으로, 국가 배출량의 절반에 가까운 46%를 차지한다. 사실상 이들 10개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 저감 노력을 어떻게 하느냐에 국가 기후위기 대응의 성패가 달린 것이다.
이들은 한국 산업경제의 근간이라 할 주요 제조업종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순서대로 철강(포스코와 현대제철), 발전(남동·남부·서부·중부·동서발전), 반도체(삼성전자), 시멘트(쌍용C&I), 정유화학(에쓰오일)이다. 당분간 우리가 지금의 산업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이들 업종별로 배출량 감소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데 과제가 만만치 않다.
우선 국내 산업부문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업종은 철강이다. 산업부문 온실가스 4분의 1이 철강에서 나온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두 회사가 내뿜는 것만 국가 배출량의 15.7%다. 철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원인은 철을 만드는 과정에 있다. 철은 광산에서 채굴한 철광석을 녹여 만드는데, 철광석은 산소가 결합한 산화철이고 이 산소를 떼어내려 탄소 덩어리인 코크스를 이용한다. 고온에서 철이 환원되면서 탄소는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가 된다. 여기에 고온을 위한 연료에 석탄이 쓰여 다시 온실가스가 나온다.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탄소가 아닌 수소를 환원제로 쓰고(이 경우 부산물은 물), 전기를 이용해 고온을 내는 기술이 거론되지만 실용화는 아직이다.
시멘트의 경우도 주원료인 석회석이 문제다. 시멘트를 만들려면 석회석이 ‘클링커’라 부르는 중간 생성물로 바뀌는 소성 공정을 거치는데, 이때 석회석의 화학적 변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 비중이 67%가량이다. 나머진 원료의 예열, 소성에 필요한 1500도 이상의 고온을 만들면서 발생한다. 클링커 대신 탄소집약도가 낮은 ‘비회’ 등을 쓰는 방안이 논의되지만 내구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석유화학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쓰는 부생가스에서 60%가 넘는 온실가스가 나온다. 역시 철강이나 시멘트처럼 열을 발생시키기 위해 전력과 증기를 쓰는데 나머지 온실가스가 이때 발생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은 직접배출은 거의 없고 공정배출, 간접배출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전기를 매우 많이 쓰는 게 문제다. 반도체의 경우 제조 공정에 쓰이는 과불화화합물(PFCs) 등에서 18%가량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문제는 이들 기업이 업종에 맞는 기술 개발을 통해 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을 얼마나 하는지, 또 정부가 이를 얼마나 강제하는지에 있다. 개인이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것만으론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부문 부담만 덜어준 정부 탄소중립 계획이 오히려 우리 기업에 안이한 신호를 준 셈이란 지적이 나온다. 기후솔루션은 “산업부문의 기존 감축목표(14.5%)도 타 배출원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비판받았는데 정부는 (이번 계획 수립 과정에서) 산업 쪽 이해관계자 의견만 수렴했다. (유럽연합이 2026년부터 본격 시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국제적 탄소비용 증가를 고려하면 탈탄소화 지연은 국내 산업의 경쟁력만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술 개발 등을 통한 위기 대응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더 근본적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정부 계획에 대해 “사실상 탄소중립 포기 선언”이라며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바꾸는 전환이 필수적이고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지구환경·에너지위원회 부위원장)의 박재용 과학저술가는 “경제성장이란 목표 아래 기후위기 대응을 종속변수로 놓고 대책을 세우는 게 문제”라며 “산업부문에서 온실가스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점은 재가공, 폐기가 아닌 생산 영역이다. 생산 자체를 줄이려는, 근본적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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