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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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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물 버리는 ‘오랜 관행’과 싸우자

지구 곳곳에서 방사성 물질 배출 계속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하는 일본 규탄 넘어서는 싸움 필요
등록 2021-04-17 10:04 수정 2021-04-19 01:57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에 항의하는 수협중앙회 관계자들이 4월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선임기자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에 항의하는 수협중앙회 관계자들이 4월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선임기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보관 중인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4월13일 결정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인근 지역엔 주민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본격적인 해체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고, 원자로 내부에 로봇을 넣어 촬영하거나 핵연료 중 극히 일부를 거대한 집게로 건드려보는 정도만 진행했을 뿐이다.

더딘 해체 과정만큼 골치 아픈 것이 오염수 문제다. 지금도 빗물과 지하수로 유입된 물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건물 지하를 지나면서 계속 오염되고 있다. 지하수 유입을 막기 위해 2016년 땅속을 영하 30도로 얼리는 1.5㎞짜리 ‘동토벽’(凍土壁)을 만들었지만, 오염수 양을 줄이는 수준이었을 뿐 애초 계획한 차폐는 불가능했다. 오염된 지하수와 원자로 내부를 식히기 위해 투입된 물이 계속 쌓이면서 현재 후쿠시마 핵발전소 부지에 약 125만t의 방사능 오염수를 보관하고 있다. 오염수는 매일 약 140t씩 늘어나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도쿄전력은 이 오염수를 1천여 개 저장탱크에 나눠 보관하고 있다.

125만t의 후쿠시마 오염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인 2011년 4월, 도쿄전력은 오염수 1만1500t을 주변국과 협의 없이 방류했다. 당시 도쿄전력은 상대적으로 저농도인 오염수를 방류해 고농도 오염수를 저장할 탱크를 확보한다는 명목이었다. 관리 부실로 오염수가 누출되기도 했다. 2011년과 2012년 도쿄전력은 수차례 고농도 오염수가 누출된 사실을 발표했다. 모두 저장탱크 관리 소홀로 오염수가 누출된 뒤 그 사실을 발표한 것이었다.

가장 큰 오염수 누출 사고는 2013년 8월에 있었다. 당시 도쿄전력은 리터(ℓ)당 8천만 베크렐(Bq)의 스트론튬이 포함된 고농도 오염수 300t이 누출됐다고 밝혔다. 역시 사후적인 발표였지만 워낙 고농도 오염수가 누출된 것이라,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 일을 후쿠시마 사고와 별도로 기록했다. 사고 규모에 따라 0등급부터 7등급까지 매겨지는 국제핵시설사고등급(INES) 3등급으로 기록됐다. 체르노빌 사고와 후쿠시마 사고가 각각 7등급이었음을 고려하면 규모는 작지만 묵과할 수 없는 사고였다. 당시 이 사고로 일본 국내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수산물 소비가 급감하고 해양 오염을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처리수’라는 말을 강조한다. 방사능 오염수를 그냥 방류하는 게 아니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한 물을 바다에 버리겠다는 것이다. 다핵종제거설비는 물에 포함된 방사성물질 62종을 걸러주는 장치다. 이 설비를 거치면 방사성물질 농도가 낮아진다. 하지만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농도를 낮출 뿐이다. 현재 후쿠시마 핵발전소 내부에는 고농도 오염수가 많아, 이를 일본의 기준치 이하로 낮추려면 수차례 다핵종제거설비를 거쳐야 한다. 삼중수소처럼 이 설비를 거쳐도 걸러지지 않는 방사성물질도 있다. 따라서 ‘처리수’란 말은 마치 방사성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깨끗한 물이라고 들릴 수 있으나, 현실은 결국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오염수’일 뿐이다.

2019년 일본 정부는 지층 주입, 해양 방류, 수증기 방출, 수소 분해 뒤 방출, 지하 매설 등 5개 오염수 처리 방안을 검토했다. 이 중 해양 방류를 결정하면서 일본 정부는 이 방식이 가장 경제적이며 국제 관행에도 적합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양 방류는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2.5㎞ 깊이에 보관하는 지층 처분보다 최대 200배 이상 저렴한 방법이었다. 현재 저장된 탱크에서 바다까지 약 1㎞에 이르는 구간을 연결할 파이프 건설 비용과 희석을 위해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취수구와 연결 파이프 정도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국제 관행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세계 각국의 핵재처리시설과 핵발전소를 언급하며 이미 많은 핵시설에서 다량의 방사성물질, 특히 삼중수소를 바다와 대기 중으로 배출하고 있으므로 국제 관행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습. 일본 정부는 보관 중인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습. 일본 정부는 보관 중인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처리수 방류는 ‘국제 관행’에 부합한다?

일본 정부의 해양 방류 결정이 발표되자,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일본 정부의 결정은 국제적 관행과 일치한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미국 역시 국무부 성명으로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와 같은 발표를 이해하려면 ‘국제 관행’을 먼저 알아야 한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정부와 핵산업계는 핵발전소에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방사성물질 누출은 없다’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사실 핵발전소와 연구소, 핵재처리 공장 등 핵시설에서는 끊임없이 방사성물질을 방출하고 있다.

고체 상태의 핵폐기물은 드럼통 같은 별도 용기에 담아 핵폐기장으로 가지만 보관이 어려운 액체나 기체 상태의 핵폐기물은 농도를 낮춰 하천이나 바다, 대기 중으로 내보낸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핵시설이 동일하다.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나 한국원자력연구원 누리집에 들어가면 액체·기체 상태의 방사성물질을 배출한 기록이 공개됐다.

방사성물질을 바다에 버린 역사는 길다. 미국은 1946년부터 태평양과 대서양, 멕시코만 등에 핵폐기물을 버렸고, 영국·독일·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들은 북대서양에, 일본은 동해에, 러시아는 동해와 북극해, 카라해 등 다양한 곳에 핵폐기물을 버렸다. 이 중에는 상대적으로 준위가 낮은 중저준위 핵폐기물도 포함됐지만, 핵잠수함 원자로나 고준위 핵폐기물 같은 것도 있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초반까지 동해에 핵폐기물을 버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방사성물질 오랫동안 바다로, 대기 중으로

각국의 핵폐기물 해양 투기가 문제가 되자, 이에 관한 규정이 마련된 것은 1993년이다. 1972년 채택된 ‘폐기물 및 기타 물질의 투기에 의한 해양 오염 방지에 관한 협약’(런던협약)에는 처음 선박이나 항공기의 고의적 해상 폐기가 명시됐으나, 핵폐기물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1993년 방사성물질의 해양 투기 금지 조항이 들어갔다. 이에 따라 과거 같은 방사성물질의 투기는 현재 이뤄지지 않는다. 자국 연안에 방사성물질을 방류하는 건 별도 규정이 없어, 핵시설의 오염수 방류는 전세계적으로 이뤄진다. 일본 정부와 IAEA가 말하는 ‘국제 관행’은 이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인류는 직접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린 것 외에도 핵실험을 2천 번 이상 진행했다. 또한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처럼 피치 못할 사고로 대기 중에 방출된 방사성물질도 많다.

인류가 지구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 지질시대를 의미하는 ‘인류세’(人類世)의 징표로 플라스틱·닭뼈와 함께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지구상에 방출해온 이런 ‘국제 관행’ 때문이다. 지금도 전세계 어느 지역의 바닷물을 검사해도 인류가 만든 인공 방사성물질이 검출된다. 이는 어패류에서도 비슷하다. 마치 전세계 바닷물에서 미세플라스틱이, 참치나 상어류에서 유기수은이 검출되는 것과 동일하다. 인류가 그동안 지구 생태계에 끼쳐온 많은 악행 가운데 핵폐기물 해양 투기도 포함돼 있다.

이런 ‘국제 관행’에는 우리나라도 함께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국내 핵발전소에서 배출된 삼중수소 중 38.4%는 경북 경주에 있는 월성 핵발전소에서 나온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포함된 바로 그 삼중수소이다. 월성 핵발전소는 다른 핵발전소와 달리 삼중수소 배출이 많은 중수로형 원자로이다. 이로 인해 월성 핵발전소 인근은 다른 지역보다 삼중수소 농도가 높고, 심지어 주민들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높게 발견된다. 또 갑상샘암 등 건강상 문제를 제기한 지역주민들의 소송과 이주 요구 시위가 몇 년째 진행되고 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이나 연구소에서 일어난 대규모 피폭의 인체 영향은 그동안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다. 처음엔 ‘핵실험장의 버섯구름’이 관광상품이 되거나 ‘어린이용 방사선 실험 세트’ 같은 상품도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대표적 발암물질로 방사성물질을 엄격히 관리한다. 하지만 저선량 방사선에 오랫동안 노출됐을 때 인체 영향에 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하다. 피폭선량에 따라 암 발생 확률이 단계적으로 높아진다는 것, 특히 어린아이와 여성에게 암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알려졌으나, 이를 법적 소송으로 증명하고 피해 보상을 받는 일은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지금도 많은 양의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고, 후쿠시마 오염수는 그중 하나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아직 방류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아직 2년이 남아 있다. 이 기간에 어떻게 싸우는지에 따라 오염수 방류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혹자는 반일 감정을 앞세워 일본을 규탄하고 강제하려고 한다. 또 누군가는 미-중 갈등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70여 년간 지구상에 핵폐기물을 버려온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싸움은 무책임하게 핵폐기물을 지구상에 버려온 핵산업계 ‘오랜 악행’과의 싸움이다.

일본 정부의 논리에 설득되지 않으려면

일본 정부는 ‘국제 관행’을 앞세워 IAEA와 전세계에서 핵실험을 가장 많이 한 미국을 설득했다. 이 싸움에서 정말 이기고 싶다면,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을 규탄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얼마나 많은 방사능 오염수를 버리는지 돌아봐야 한다.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 없는 동아시아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그동안의 ‘국제 관행’을 버릴 것을 촉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책임하게 오염수를 생산하는 핵발전소 가동을 멈춰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과 IAEA가 설득당한 것처럼 우리 역시 일본 정부의 논리에 설득당하고 말 것이다.

이헌석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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