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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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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확인한 밤

11월8일 <한겨레21> 독자·후원자 모임에서 나온 격려, 불만, 아쉬움의 이야기

“사안의 본질 보고 판단 기준 제시해달라”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
등록 2019-11-20 09:50 수정 2023-11-25 17:24
11월8일 독자·후원자 모임에 참석한 <한겨레21> 기자와 독자·후원자.

11월8일 독자·후원자 모임에 참석한 <한겨레21> 기자와 독자·후원자.

종이 잡지를 펼치는 사람, 그렇게 해야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사람, <한겨레21>이라는 공동체에 기꺼이 속하는 사람, 그런 우리가 자랑스럽고 때로 안타까운 사람. <한겨레21>로 이어진 ‘우리’는 어떤 사람들일지, 문득 생각합니다. 11월8일, 여느 금요일 오후와 달리 뉴스룸이 분주합니다. 늘 ‘우리’로 묶여 있다고 믿으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했던 <한겨레21> 뉴스룸과 독자·후원자가 한데 모이는 날입니다. 선물 꾸러미를 옮기고, 행사 순서를 확인하며 정신없는 와중에 괜히 (나름대로) 차려입고 온 옷매무새를 가다듬어봅니다.

두 번째 <한겨레21> 전체 독자·후원자 모임이 열렸습니다. 1년 만입니다. 돌아보면 그사이 <한겨레21>에도, 한국 언론에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품은 말도 많았을 것입니다. 설레기도,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궁금증과 답답함을 가지고 올 독자·후원자에게 간편하고 속 시원한 답, 끝내 드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들어야 한다”(류이근 편집장)는 마음만은 컸습니다.

자리에 참석한 마흔두 분 독자와 두 시간여 인사하고, 대화했습니다. 자주 웃었고, 깊이 돌아봤습니다. 우리는 같이 좀더 좋은 언론을 고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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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이날 사회를 본 변지민 기자가 정해준 ‘1분 시간 제한’을 의식하며, 배경에 펼쳐진 자기 사진 앞에 쭈뼛거리며 기자들이 섰습니다. 첫인사다운 수줍음이 목소리 군데군데 묻어납니다. “사진 저렇게 크게 띄우는 거 알았으면 작은 사진 보낼걸 그랬어요. 날씨가 추워졌는데, 오늘 이곳 따뜻함 많은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허윤희 기자)

그래도 단단히 마음먹고, 지난 1년 써온 기사를 되짚고 나름의 포부도 밝혀봅니다. “상이군경회장 재산 형성 과정 기사를 썼더니 저렇게 (사진을 가리키며) 회사 앞에 몰려왔어요. <한겨레21> 기자로서는 영광이었죠. 기자 소명이 거악과 싸우는 거잖아요.”(김현대 기자) 전정윤 기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사회 곳곳의 아픔을 지난 1년 대면해왔습니다. “저는 가장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분들을 찾아다녔던 것 같아요. 고아 기사, 청소년 자해 기사, 오빠 미투 기사들을 썼습니다.” 이재호 기자는 지난해 모임에서 독자에게 큰 응원을 받았던 난민 관련 기사들이 “곧 책으로 엮여 나온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승준 기자는 독자와 함께 썼던 기사를 떠올립니다. “‘플라스틱 로드’를 독자들과 함께 썼고, 서초동 촛불집회 기사를 쓸 때도 집회에 참석한 독자들을 인터뷰했어요. 독자들과 협업하며 쓸 수 있는 기사들을 앞으로도 고민하겠습니다.”

새로운 시도, 강직한 싸움, 진심 어린 위로이길 바라며 써온 기사 하나하나가 언급될 때마다 독자·후원자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잘 읽었다는 표정에 기자들도 힘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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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웃음과 안타까움을 자아낸 건 ‘82년생 서보미 기자’였습니다.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서 회사 행사에까지 아이를 데리고 온 82년생 서보미입니다. 유모차를 몰고 신촌에 오니 다른 것들이 보이네요.” 서보미 기자와 함께 온 ‘유난히 핑크색을 좋아하는 아이’ 구서은(2)은 행사장 곳곳에서 독자·후원자들과 눈을 맞추며 제 나름대로 엄마를 도와 분주히 소통했습니다.

기자들 소개가 끝난 뒤, 변지민 기자가 만들어온 깜짝 퀴즈에 답을 외치는 독자·후원자들 모습에서 <한겨레21>에 대한 애정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독자 전용폰이 지난 9월 고장 났습니다. ‘뉴스룸에서’ 코너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요. 그 이유는?”

준비한 보기가 제시되기 전부터 정답(독자들의 뜨거운 사랑 때문에)을 아는 독자들이 손을 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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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멀리서 왔다 하시는 분께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부산!”

“내가 가장 <한겨레21>을 오래 읽어왔다 하시는 분께도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창간 독자!” “창간 때부터!” 곳곳에서 <한겨레21> 첫걸음부터 함께한 독자·후원자들의 목소리가 울립니다.

류이근 <한겨레21> 편집장이 독자·후원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류이근 <한겨레21> 편집장이 독자·후원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대화

독자·후원자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뉴스룸의 고민을 전하고 싶어서 마련한 자리입니다. 권태호 출판국장이 여느 종이 매체처럼 줄어드는 잡지 판매, 그 빈자리를 채우는 후원에 대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참여한 독자들이 미리 보내준 질문에 류이근 편집장과 전정윤 기자가 답변하며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격려, 불만, 아쉬움이 오갔습니다.

독자 <한겨레21>은 한겨레에서 어떤 위치인가. <한겨레21>만의 특화된 장점은 무엇인가.

류이근 편집장 <한겨레21>은 깊이 있는 기사를 다룰 수 있는 매체다. 올해 독자들은 어느 매체에서도 볼 수 없는 기사를 보셨다고 생각한다. ‘오빠 미투’같이 생각지 못한 문제를 제기한 기사도 있었고, 기자들이 군산과 울산 동구에 6주 동안 머물며 기사 작성까지 석 달 정도 시간을 들인 ‘공장이 떠난 도시’ 기사도 있었다. 하나의 기사를 쓰기 위해 이 정도로 투자하는 일은 한겨레 안의 다른 단위에서도 쉽지 않고 한국의 모든 매체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독자 한겨레가 가진 철학적 바탕은 무엇인가. 최근 검찰총장의 고발도 있었는데 이 국면에서 ‘누구와 손잡고 싸울 것인가’ 같은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류이근 편집장 신문 <한겨레> 창간 때로 돌아가보면 민족·민주·민생을 내걸었다. 거창하지만 그 가치 지향은 여전히 잃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때 과연 누구와 같은 편이 돼서 싸울 것인지 물으신 것 같다. 그런 지점과 언론의 기본 중의 기본인 자본과 권력에서의 독립 같은 가치를 두고 균형점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의도치 않은 실수를 할 때도 있고, 우리는 원칙대로 간다고 하지만 독자들 그리고 밖에서 우리를 보는 시선과 괴리가 있을 때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사랑이 있어서 이 자리에 와주셨다고 믿고 싶다. 다만 그런 서운함과 비판은 계속 이야기해달라. 우리도 들어야 한다.

독자 청소년 자해, 보호종료 청년 인터뷰 같은 소수자 이슈를 어떻게 발굴하고 관계 맺고 취재하나.

전정윤 기자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일하는 기자들 모두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고 나도 그중 하나다. 전문가들이 기사를 제안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제안이 있을 때 여러 번 생각해서 기사가 되도록 노력하는 편인 것 같다. 내가 썼던 기사 속 소수자들은 어딘가에 말하고 싶고, 꺼내놓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분들이었다. 취재를 고마워하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말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겨레21>에서 호흡이 긴 기사를 쓰고 주제와 관련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어떻게 이런 취재원을 만나고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싶을 때가 많다.

고민

좋은 언론에 대한 바람과 고민은 여덟 개로 나뉜 탁자에 각각 둘러앉은 기자와 독자·후원자의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과 사퇴 과정에서 느꼈던 언론에 대한 서운함, 애써도 잘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기자들이 느낄 어려움에 대한 걱정, 개별 기사에 대한 궁금증과 대답을 담은 목소리로 행사장이 가득 찼습니다. 금요일 저녁, 전국 곳곳에서 자동차와 사람으로 가득한 도시를 뚫고서 쥐고 온 이야기들입니다. 하나하나 소중히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자·후원자들은 말했습니다.

“평범한 독자는 기사가 양비론으로만 흐르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곤란하다. 기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뿐 아니라 사안의 본질을 보고 판단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겨레> 창간 독자이고 <한겨레21> 정기후원도 하지만 계속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다. 한겨레가 너무 보편적인 생각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한겨레 안에서도 최근 언론 상황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고, 그 과정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 자체는 희망적으로 봤다. 내가 마음에 품고 왔던 질문은, ‘그래서 어떤 문제를 찾았고 어떻게 잘할 것인가’였다. 앞으로 ‘기사로 보여주겠다’고 했고, 나는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고 했다.”

“말씀들 무게를 잘 알고 있다. 허투루 만들지 않겠다고 다시 다짐하겠다.”(류이근 편집장) 묵직한 독자·후원자의 말들 앞에서 ‘다시, 다짐’을 말하는 편집장 목소리도 한결 단단해집니다. 독자·후원자들과의 대화는 행사를 마치고도 자리를 옮겨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뒤엉킨 채 정신없는 세상 속에, 그 복잡함 어딘가를 더듬는 <한겨레21>도 손쉽게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쓰는 것이 바른 일일지, <한겨레21>은 어떤 이야기를 담는 매체가 돼야 할지 혼란스러워 “한동안은 어떻게 기자 일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던”(변지민 기자)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고민과 혼란을 딛고 한주 한주 써내는 문장들을 꼼꼼히 바라보고 같이 고민해주는 독자·후원자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 존재를 확인하고 돌아가는 밤, 책임감과 고마움과 든든함이 한데 섞인 마음에 쌀쌀한 바람이 조금 가뿐해진 것도 같습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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