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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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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불편해질 준비 됐나요

<한겨레21> 필자와 독자의 다리 ‘필독 콘서트21’ 첫 회…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펴낸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사무차장 정책특보와의 만남 지상 중계
등록 2015-09-24 22:52 수정 2020-05-03 04:28
이 필자와 독자의 만남을 주선하는 ‘중매쟁이’로 나섰다. 첫 구혼자는 에 연재되는 ‘이상헌의 理想한 경제학’에서 경제는 물론 문학, 스포츠, 음악, 정치를 횡단하는 글쓰기로 많은 애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경제학자 이상헌 박사(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 정책특보)였다. 최근 그는 연재칼럼 등을 묶어 (생각의힘 펴냄)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지난 9월16일 ‘필독 콘서트21’이라고 이름 붙인 자리에 첫선을 보러 온 필자와 독자들은 수줍은 미소를 띠며 마주 앉았다가, 격렬한 포옹을 하며 헤어졌다. 북콘서트가 진행되는 2시간여 내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깊이 있는 사유, 재치 있는 유머가 가득했다. 조금 불편해져야 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은 자리였다! 추첨을 통해 책과 무료구독권 등 푸짐한 선물도 나눠가졌다. 참여하지 못한 독자를 위해, 북콘서트 현장을 짧게 지상 중계한다. 은 앞으로도 매달 한 차례 정도 ‘필독 콘서트21’을 개최할 예정이다. 평소 남몰래 흠모해왔거나, 그의 글맛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던 필자가 있다면 전자우편(arum@hani.co.kr)으로 필자와의 만남을 신청해주기 바란다. 기꺼이 이 ‘오작교’가 되겠다. _편집자
<한겨레21>에 연재되는 ‘이상헌의 理想한 경제학’ 필자인 이상헌 박사(오른쪽)와 최우성 <한겨레> 논설위원이 지난 9월16일 열린 ‘필독 콘서트21’에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용일 기자

<한겨레21>에 연재되는 ‘이상헌의 理想한 경제학’ 필자인 이상헌 박사(오른쪽)와 최우성 <한겨레> 논설위원이 지난 9월16일 열린 ‘필독 콘서트21’에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용일 기자

지난 9월16일 저녁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Hu:)’. 이상헌 박사는 인천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주요 20개국(G20) 관련 회의를 하러 한국에 머무는 일정이 닷새뿐이라, 10시간 넘는 비행의 여독을 풀 새도 없었다. 호텔 체크인도 미뤘다. 하지만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독자와의 첫 만남. 첫걸음, 첫사랑. 처음으로 ‘필독 콘서트21’을 시작하는 안수찬 편집장도 평소와 달리 사춘기 소년처럼 해사했다. 추석 합본호 마감도 뒤로한 채 편집장과 출판마케팅팀이 총출동했다.

빨갱이 집단도 노동자기구도 아닙니다

“홍보를 제대로 못해서 참가자가 적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국제기구 취업특강으로 주제를 바꾸면 대박 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이 오신 것을 보니, 국제기구 취업 얘긴 안 하셔도 될 것 같다. (웃음)” 사회를 맡은 안수찬 편집장이 우스갯소리로 북콘서트를 시작했다. 가 지난 7월 문을 연 미디어카페 ‘후’의 행사 공간 50여 석이 빽빽하게 가득 차고도 일부는 선 채로 행사를 지켜봤다.

북콘서트는 이상헌 박사와 최우성 논설위원이 주고받는 대화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전 편집장인 최 논설위원은 이 박사를 글쟁이로 데뷔시킨 당사자이다. 이 박사가 오래전부터 블로그 등에 쓰는 글을 눈여겨보다가 몇 년간 삼고초려한 끝에 칼럼 연재를 승낙하게 만들었다. 최 논설위원은 연재 칼럼을 묶어낸 책 제목()까지 직접 지어줬다.

안수찬(안) 저자 소개를 간단히 하겠다. 국문과를 지망했는데 시험 성적이 너무 잘 나와서 경제학과로 갔다고. (웃음) 영국으로 유학 가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서 15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 가운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다음으로 고위직이 아닌가 한다. (웃음) 사무차장 정책특보라는 직함이 어렵게 느껴지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먼저 이야기해달라.

이상헌(이) 국제노동기구라고 하면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빨갱이 집단도, 노동자기구도 아니다. (웃음) 노동권을 보호하고 고용의 질을 높이는 데 정책적인 기여를 하는 국제적 노·사·정 기구다.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만 2천 명 이상, 지역사무소에 3천 명 이상 일하는 공룡같이 큰 조직이다. 최근엔 경제위기 이후 어떻게 일자리를 확보하고 안정된 소득을 보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 중이다.

최우성(최) 책을 출판한 소감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다보니 경상도 사투리 섞인 영어로 먹고산다. 한글로 뭔가 쓰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 깊숙이 자리잡았다. 어느 순간 그게 조금씩 밖으로 흘러나온 것 같다. 외국 생활에선 ‘절대 한국을 들여다보지 말라’는 게 철칙이다. 그런데 나는 자꾸 한국이 보고 싶다. 외국에서 한국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건 좋은데, 그럴수록 계속 늪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대학 후배인 출판사 대표가 내가 썼던 글들을 엮어 보내주면서 “당신이 여태까지 벌인 일이니 책임지라”고 하더라. 글을 추려내면서 내 안에 있던 고민과 마음의 짐을 털어냈다. 홀가분하면서도 굉장히 쑥스럽다.

경제학을 연구하는 건 ‘하드코어’ 같다

경제학에 대해서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문학에 대해선 그리움이 남아 있다고 책에 표현했다. 경제학을 30년쯤 공부했으면 이제 경제학에 물들 때도 된 것 아닌가. (웃음)

경제학을 연구하는 건 ‘하드코어’ 같다. 계량경제학 등을 잘 이해하려고 할수록 경제학의 약점이 분명히 보인다. 경제학은 인간 본연에 천착하는 학문인데, 어느 순간 인간은 빠지고 이해관계에만 기초한 학문으로 전락한 게 아닌가 싶다. 문학은 인간을 다면적으로 보게 한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사회과학이 그 실마리를 풀어갈 방법을 찾아줘야 하는데 점점 도구적으로만 되어간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감동, 감성, 공감이 첫걸음이다. 그래서 문학을 좋아했다. 내 감수성의 뿌리를 찾는다면, 삼천포 시골에서 태어나 산에 나무하러 다니고 고기 잡으며 놀던 시절인 것 같다.

책에서 ‘시민으로서의 노동자’라는 이야기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 또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에 대해 인상비평 수준에서라도 말해달라.

노동자한테 최저임금 주는 것만큼이나 노동자를 사람으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하는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정책, 법률 변화나 의식 변화 캠페인 같은 것도 좋지만, 기업이 바뀌는 게 가장 쉽다. 기업이 노동자를 부려먹는 사람 내지는 월급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한 시민으로서 대우해주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나는 ‘구조개혁’이라는 말 자체를 안 좋아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노동권을 후퇴시킨 시기마다 구조개혁의 기치를 내세운 이들이 있었다.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의문이다.

진짜 대화가 오갔던 북콘서트

북콘서트 중간중간 무대 아래에 앉은 참석자들도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한국 사회에서 경제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균형 있는 소득 재분배가 생산성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쉽게 풀어 설명해달라.” “재벌이 식당을 물려주듯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인간이 기계한테 밀려나고 있다. 인간 노동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때론 묵직했고, 때론 예리했다. 이상헌 박사는 진땀을 흘리거나 “후유” 한숨을 내쉬면서도 평소 품고 있던 생각을 막힘없이 쏟아냈다. ‘두려움’이란 감옥에서 나와 자유롭게 마주 앉은 필자와 독자 사이의 대화는 북콘서트가 끝난 뒤에도 맥주 한 잔씩 기울이는 자리로 이어졌다. ‘필독 콘서트21’이 어쩐지 독자 ‘필참’ 행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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