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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해’라는 말, 왜 습관처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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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1-11-16 14:00 수정 2020-05-03 04:26

Q. 한국 사람들은 법을 신뢰하나요? 우리는 ‘법대로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잖아요. 왜 이런 말을 습관처럼 하는 것일까요?(qwelkj33)

법원 이미지./2008.7.17/한겨레21박승화

법원 이미지./2008.7.17/한겨레21박승화

A. 아, 이거 근원적인 질문입니다. “그래, 한번 쳐봐. 때려, 때려. 법대로 하자고.” 이런 수준 낮은 대화 도처에 즐비합니다. 한국인을 얘기할 때 ‘법대로’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입니다. 우선 우리가 신뢰하기 때문에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사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나 생각해봅니다. ‘엄마’가 있네요. 절대적으로 신뢰하죠. 딸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엄마 없으면 우리 아들들은 정말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런데 과연 한국 사람들은 법을 엄마처럼 신뢰해서 ‘법·법·법’거리는 걸까요?

법률 전문가인 검찰 간부에게 물어봤습니다. 손해 보기는 싫고, 법대로 하면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법은 언제나 자기 편일 거라는 착각을 한다는 거죠.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이라고 합니다. 양보가 안 되기 때문이라는 거죠. 혹시나 내가 손해 보지는 않는가라는 불신 때문에 법을 찾는 것이지, 법 자체를 신뢰해서 그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소송 건수는 매우 많습니다. 사법 시스템이 비슷하고 인구가 훨씬 많은 일본보다 2~3배 많습니다. 대법원에서 발간하는 을 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소송사건은 621만6196건이나 됩니다. 이 가운데 민사사건이 무려 423만6740건이나 됐습니다. 판사가 법으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조정이나 화해로 끝내는 절차가 있는데, 조정·화해로 해결되는 사건의 비율은 일본보다 낮습니다. 이런 문제에 굳이 국민성까지 들먹이기는 싫어서 다른 이유가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검찰 간부는 “옛날 원님재판의 문화가 남아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답했습니다. 옛날에 원님, 그러니까 사또가 맡은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분쟁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원님은 자신이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까지 다 했습니다. 요즘은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부정적 의미로 ‘원님재판’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어쨌든 무조건 원님을 찾던 문화가 ‘법대로 해’로 이어졌다는 거죠. 반면 유럽에선 칼 뽑고 결투를 신청하고, 일본에서도 칼로 해결하는 문화가 우리와는 다른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검찰이 꼭 법대로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잘 알지만 검찰 얘기를 조금만 더 해보겠습니다. 검찰에서는 대규모 회식을 할 때 폭탄주를 실어나르는 ‘판’이 종종 등장합니다. 예전에는 사이다병 박스에 맥주잔을 꽂아서 한 번에 돌렸는데, 아예 그런 박스 모양으로 폭탄주를 ‘쏘는’ 기구를 만든 거죠. 모양이 조선시대 로켓병기인 ‘신기전’을 닮았다고 해서 신기전이라고 불립니다. 검찰에 출입할 때 법무부 장관과 기자들의 회식이 있었습니다. ‘법대로’를 가져오라고 해서, 뭔가 봤더니 신기전이었습니다. 신기전에 쓰여 있던 문구가 ‘법대로!’였던 거죠.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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