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아빠가 아프시던 첫해, 엄마는 평생 처음으로 장담그기에 실패하셨습니다. 40년 가깝게 직접 장을 담그시던 엄마는 처음 겪는 일에 적잖이 당황하시며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장맛이 변한다더니, 정말이구나” 하셨는데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독자 이지연)
A. 장맛이야 집안마다 다르니,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라면입니다. 가장 표준화가 잘된 ‘국민 음식’이죠. 대학 시절, 학교 옆에서 함께 자취하던 저와 김남일 기자는 ㄴ사의 ‘ㅅ’라면을 즐겨 먹었습니다. 일주일에 열 끼 이상을 때운 적도 있죠. 아, 중간중간 ‘3종 세트’로 불리는 ㄴ사의 짜장라면과 우동면도 끼워 먹었습니다. 그런데 라면맛이란 게 한결같지 않습니다. 물의 양이나 가열 시간, 불의 세기가 달랐던 것도 아닙니다. ‘면발 인생’ 십수 년에 그 정도 기본기도 못 갖췄다면 분식점 똥개 앞에서 ‘형님!’ 하고 무릎을 꿇어야죠. 라면맛이 달라지는 이유, 따져보면 당연합니다. 기말고사 죽 쑤고 돌아와 어둑한 반지하방에서 끓여 먹는 라면맛이 평소 라면맛과 어찌 같기를 바란단 말입니까. 같은 이치입니다. 집안에 우환이 있는데 장맛이 같을 리 없지요. 존재가 의식을, 아니 미감을 규정하는 법입니다. 답변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요? 좋습니다.
민속학자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에게 물었습니다. “관리가 되는 집안과 안 되는 집안의 차이”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아픈 사람이 있으니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할 것이고, 그러니 간장독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는 얘깁니다. 맞습니다. 간장, 정말 손 많이 가는 식품입니다. 볕 좋을 땐 뚜껑 열어주고, 수시로 장 위에 뜨는 효모막도 걷어주고, 장마가 지난 뒤엔 한두 번은 달여줘야 제맛이 납니다. “탈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는 옛말이 공연히 나온 게 아니겠죠. 에는 전쟁터로 나가던 김유신이 집의 장맛을 본 뒤 “맛이 변하지 않았으니 무탈할 것”이라 안도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김 장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남일 기자가 옆에서 거듭니다.
그런데 장맛이 달다 쓰다는 건 무슨 얘기일까요. 장의 메카, 전북 순창에 있는 장류연구소 박영수 연구원에게 묻습니다. “달다는 건 짠맛에 고소한 맛이 섞였다는 뜻인데, 장의 고소한 맛은 원료인 콩의 단백질이 분해돼 생성되는 글루탐산 때문”이라는군요. 알려진 대로 글루탐산은 인공감미료인 MSG의 주성분입니다. 반면 글루탐산 함유량이 낮고 소금맛이 강해지면 장맛이 나빠집니다. 소금에 섞인 염화마그네슘과 황산마그네슘 탓인데, 장을 오래 묵히면 이 성분이 산화되거나 침전돼 그 강도가 약해집니다. 이때 장을 끓여주면 중합반응이 일어나 고소한 맛의 강도가 높아진다는 게 박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근면과 평상심이 장맛의 근원이란 얘깁니다.
꽃게가 풍년이라죠. 노란 알이 꽉 찬 간장게장 생각이 간절해지는 계절입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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