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지난 8월5일 오전 9시11분. ‘고객님 월 54900원으로 900만원 사용 가능하십니다.’ 부글부글을 마감하고 있는 언론계 종사자 하아무개의 휴대전화에 문자가 떴다. 쫌! 대출 문자는 마감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전화를 돌렸다. 조회만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는 것쯤은 안다. 회사 전화를 이용했다. 비발디의 가 흘러나온다. “신한 캐피탈론, 학자금·생활자금 전문대출 기업입니다. 귀하의 휴대전화번호를 5초 안에 누르신 뒤 별표를 눌러주세요.” 재빨리 눌렀다. “현재 모든 상담원이 상담 중입니다.” 오전 9시17분. 문자를 받은 지 6분 만이었다. 상담원을 기다렸다. 결국 2분쯤 뒤 전화는 응답 없이 그대로 끊겼다. 대출업체는 돈 버느라 바쁘다.
같은 시각 ‘대부업체 대학생 약탈대출 급증, 5만명 8백억 빚시름’이라는 제목의 금융감독원발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전국 대학생 200만여 명을 기준으로 5만 명을 추정하면 40명 정원의 한 과에 대부업체에 빚진 친구가 1명 이상이라는 얘기다. 그것도 1년 사이에 40% 늘어났다. 이들이 여기서 빚을 갚지 못하면 1~2년 새 추심업자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대학 졸업자 십수만 명이 추심업자 수만 명에게 시달리는 세상. 우리나라다. 도서관에서, 강의실에서, 연애하다, 당구 치다, PC게임 하다 “돈 안 갚아?”라는 말을 수시로 들어야 하는 자식들. 대학생들. 얼마나 더 참아야 하나. 자식들아. 이제 쫌. 주저할 것 무어냐. 이것저것 따지지 말자. 백발의 노구를 이끄는 어버이도 나서는데, ‘대한민국어버이연합’ 그 깃발 하나 앞세워 40도가 넘는 아스팔트를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데, 희망버스를 잡아 세우려고 ‘특공대’도 조직하는데 자식들이 못할 게 무어냐. 80대 재야운동가의 차를 세우고 폭력으로 위협하는데. 어버이도 마음껏 자신의 뜻을 펼치심에 드디어 세상의 빛, 세상의 진리가 우리 눈앞에 있도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전국자식연합이여 봉기하라. 800억원 빚진 딱 5만 명만이라도. 쫌.
사표를 쓰셨다. 김 사장이 사표를 쓰셨다. 간판 시사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안 된다며 골골하게 만들었다.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를 하차시켜 프로그램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었다. 여당 유력자와의 절친을 자처하는 김흥국씨까지 나서서 1인시위를 할 정도니 말 다했다. 드라마는 시청률을 향해 막 나갔다. 돈 때문에 사람을 땅에 파묻고, 삼각관계는 사각, 오각, 육각으로 얽혀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표를 쓰신 이유는. ‘독재정권 시대 나팔수’라는 오명을 씻고 제대로 된 언론으로 터잡은 자신의 일터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놓은 것에 대한 돈오돈수(깨우침에 더 이상 행할 것이 없다)였을 것이다. 지역방송 통폐합 등 뜻한 바를 이루거나 정치권에 진출하려고 사표를 던지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쯤은 김 사장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충심을 몰라주니 단단히 삐쳤나 보다. 사표를 접었다. ‘쪼인트’를 까인 듯 얼굴빛이 비장하다. 안다. 당신의 충정을. 그러니, 또 쓰시면 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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