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장마철이나 소나기가 내린 뒤 민물고기인 미꾸라지가 마당이나 길가에서 발견되곤 합니다. 빗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칠십이 훨씬 넘으신 선배님 말씀이 초등학교 때 서울 종로 한복판의 운동장에서 직접 봤는데, 주변에 개천이 없는 것으로 봐서 하늘에서 떨어진 게 분명하다고 말하시던데요.(정병덕)
A. ‘무엇이든’에 질문이 채택되려면 대략 10:1 정도의 경쟁률을 뚫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고민 없이 뽑았습니다. 전자우편이 아닌 손편지로 질문하신 분은 이 코너가 생긴 이래 처음입니다. 게다가 ‘칠십이 훨씬 넘으신 선배님’을 두고 계신 분이라면 나이도 지긋하실 테니 ‘어르신 우대’라는 의 편집 방향과도 일치하니까요.
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우선 백과사전을 뒤져봤습니다. 잉어목-미꾸릿속-기름종갯과-미꾸라기종으로 연못·논·도랑 등 물이 느리게 흐르거나 고인 곳에 살며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를 먹는 고마운 친구더군요. 진흙 속에서 겨울잠을 잔다는 새로운 사실까지 알게 됐는데, 독자님이 궁금해하는 대목만 미꾸라지처럼 쏘옥 빠져나가더군요. 이럴 땐 전문가를 찾는 손과 발이 바빠지지요. 경남 산청에 있는 논미꾸리연구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토종 미꾸리 인공 부화를 연구하는 민간 연구소인데, 이곳의 구본선 소장님은 10년 이상 미꾸라지의 생태와 습성 등을 연구해왔다고 하시더군요.
미꾸라지가 빗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느냐, 고는 차마 묻지 못했습니다. 민물에서 사는 놈이 왜 물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예전부터 빗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다가 떨어진 것이라는 속설이 있는데”로 말문을 여시더군요. 빗줄기를 타고 오르지는 못해도 물줄기를 찾아 오르는 습성이 있다고 하네요.
그렇다고 붕어나 잉어, 연어처럼 점프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미꾸라지는 물이 흐르면 거슬러 올라가려는 습성이 있고, 50도 정도의 경사지도 배로 바닥을 밀며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약간의 물만 흐르고 있다면 말이죠. 8월 말과 9월 초에는 올라가고 가을에는 내려옵니다. 다른 어종들처럼 산란기와 관련 있는지 물었더니, 성냥개비만 한 새끼들도 그리 하는 걸로 봐서 산란기와는 상관없다고 합니다. 지금은 온통 시멘트와 콘크리트투성이지만 과거엔 서울에서도 작은 개천과 도랑이 많았잖아요. 따라서 선배님이 목격하셨다는 ‘종로 한복판 운동장의 미꾸라지’도 비로 이어진 물길을 따라 어디선가 올라왔다가 고립된 놈일 가능성이 큰 거죠. 그게 아니라면, 에서 입담 좋기로 소문난 김남일 기자의 추론대로 부근 추어탕집 주인이 흘리고 갔거나요. 미꾸라지가 용이나 이무기 새끼가 아닌 이상, 수직으로 내리는 빗줄기를 타고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에서 중절모를 쓴 남자들이 비처럼 내리는 그림을 그렸는데, 남자들 대신에 미꾸라지를 그려넣어도 재밌겠다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독자님 덕분에 오늘 점심 고민은 덜었습니다. ‘거꾸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 한 그릇 뚝딱 하고 오겠습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이선영 인턴기자 sunzxc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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