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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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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로 갈라져 있는데 왜 충청동도, 충청서도가 아닌가요?

[독자와 함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록 2011-05-04 14:38 수정 2020-05-03 04:26

Q. 충청도는 지리적으로는 확실히 동서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충청동도나 충청서도가 아닌 충청남도, 충청북도라고 부르는 거죠?

A. 35년입니다. 기자가 대한민국의 지도가 토끼를 닮았느니 호랑이를 닮았느니 옥신각신하며 들여다본 시간입니다. 심지어 충청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충남 ㅎ고. 자책에 빠졌습니다.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없을까.’ 충남 ㅎ고라고 쓰면서도 왜 단 한 번도 충서 ㅎ고가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느냐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감수성으로 기자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독자님의 감수성에 존경을 표합니다. 당신은 감수성 종결자. 위안으로 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경악한 게 저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시를 썼던 동창 승조도, 한때 말만으로 소주병 뚜껑을 딸 정도의 언변을 자랑했던 후배 명식이도 처음에는 “충서 ㅎ고가 왜 아니란 말이냐”에 황당해하다가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맞습니다. 지도를 보면 분명히 충청도는 남북이 아니라 동서에 놓여 있습니다. 늦었지만 동을 동이라 부르지 못하고 서를 서라 부르지 못해, 남이라 북이라 불러야 했던 세월들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당장 해결하지 못한다면 트라우마가 오래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당장 충남·북의 지자체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들은 질문을 듣고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유레카!”

충북도청의 소개로 충북학연구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연구소의 김양식 박사도 “날카로운 질문”이라며 흠칫 놀라는 눈치입니다. 충청도는 남북이라기보다는 동서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김 박사도 늘 마음에 두고 있었던 듯합니다.

김 박사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충청도라는 표현은 고려시대에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평택을 포함한 경기 남부 모두를 포괄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충북 영동과 보은은 상주에 속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경상도 권역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동서보다는 남북의 형태를 갖추고 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행정구역은 조선 초에 확정됩니다. 물론 이름은 충청도입니다. 남과 북으로 확정된 것은 1896년이니 115년 전입니다. 당시 지방체제를 개혁할 때 동서의 개념 없이 남북의 개념만 갖고 왔습니다. 강원도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보면 영동과 영서로 나눠서 강원동도, 강원서도가 돼야 하지만 그냥 강원도가 된 겁니다.

김 박사는 “가만있어보세요”라며 말을 끊고는 잠시 침묵에 빠져듭니다. “(다시 한번) 유레카!” 역사적 설명만으로는 질문의 재미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기자의 비상식적인 타박에 김 박사는 늘 들여다보던 지도에서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지도를 보세요. 경도만 보지 말고, 위도를 보자는 말씀이죠. 위도를 보면 충청북도가 위로 올라가 있습니다. 쪼끔. 쪼끔. 어디 보자. 음성, 괴산, 충주, 제천, 아… 단양까지.”

박사의 발견은 역사적 배경과 맞닿습니다. 현재의 영동과 보은이 상주에 속했다면 위도상으로 충청북도는 북쪽에 있습니다. 박수를 보내드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남도, 북도를 합리화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김 박사도 하 기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도를 봐도 충북은 충남의 오른쪽, 동쪽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김 박사는 사견을 전제로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그래도 동도, 서도로 불리는 게 상식적이기는 하겠네요.” 역사적 배경과 위도의 세상에는 상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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