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유럽에는 유독 엇비슷한 국기가 많은데, 왜 그런 건가요? 프랑스의 삼색기 와 비슷한 게 많아요. 우연의 일치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요?(박아무개)
A. 독자님의 질문을 접하니 얼마 전 들은 이마트 피자의 해프닝이 떠오릅니다. 이마트 피자 포장박스에는 ‘정통 이탈리아 피자’라는 문구와 국기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국기가 이탈리아가 아닌 헝가리로 잘못 나갔답니다. 이에 누리꾼들은 “피자의 종주국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헝가리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당황한 이마트 쪽은 서둘러 이탈리아 국기 스티커를 만들어 헝가리 국기 위에 붙이는 것으로 진화에 나섰습니다. 인쇄 과정의 오류겠지만, 여기엔 비슷한 삼색기가 불러온 혼동도 한몫 했을 겁니다.
유럽을 비롯해 우리가 사는 이 별에는 삼색기를 가진 나라가 꽤 여럿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국민주권 국가를 탄생시킨 프랑스혁명이 세계에 끼친 영향은 압도적”이라며 “프랑스혁명 이후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하던 나라들은 프랑스의 삼색기를 본 따 국기를 만든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치 러시아혁명 이후 등장한 사회주의 국기가 레드플랙의 변주인 것과 같은 이치인 셈이죠. 국기의 기원에 대해서 최 교수는 “1815년 비엔나회의를 통해 나라가 나라다울 수 있는 기준으로 국가, 국기, 헌법, 중앙박물관, 중앙도서관 등이 제시됐다”면서 “이후 나라별로 국기 만들기가 진행됐고, 우리나라도 그 이후인 19세기 중반에 태극기를 만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인터넷을 보면, 실제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의 삼색기는 프랑스의 삼색기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일찌기 영국에 대항해 독립투쟁을 해온 아일랜드는 프랑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녹색·흰색·오렌지색의 삼색기를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하다 1937년 독립선언과 함께 정식 국기로 채택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삼색기를 사용했다는 이탈리아 국기의 삼색(초록·하양·빨강)은 그 가치마저 자유·평등·박애로 똑 같습니다.
프랑스의 삼색기는 서유럽 뿐만 아니라 동유럽과 아프리카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루마니아는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삼색기를 쓰기 시작했고, 1959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아프리카의 차드는 식민 모국의 국기를 저본 삼아 가운데에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노란색을 넣어 자신의 국기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문득 태극기가 없어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덧그려 사용했다는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가들이 떠올랐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 여러 나라 국기의 바탕이 된 프랑스의 삼색기는 부르봉 왕조의 상징인 백합의 흰색과 시민군의 상징인 파란색과 붉은색을 더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럼 세 개의 색깔이 들어간 국기는 모두 프랑스 삼색기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삼색기를 쓰는 나라들은 대부분 프랑스의 삼색기를 본떠 만든 것이다. 이는 프랑스 혁명이 인간 해방의 계기였다기보다 부국강병의 계기였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원래 그런 것 같다.” 최 교수의 쓸쓸한 결론이었습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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