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계약서에 ‘갑·을’이란 말을 쓰나요? 한겨레 자료
벌써 1년 전입니다. 저는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멤버들의 이름을 밑줄 긋고 외우는 방송담당 기자였습니다. 당시 연예기획사와 소속 연예인들의 계약 문제가 터져나오면서 ‘노비문서다’ ‘노예계약이다’ 등 팬들의 제보(“우리 오빠들도 이렇게 당하고 있어요”)와 항의(“이런 현실을 왜 알리지 않는 건가요”)가 빗발쳤습니다. 제보 내용에는 제가 외운 오빠들의 이름은 어디로 가고 ‘갑’과 ‘을’만이 빼곡했지요. 팬들조차 기획사를 갑으로, 오빠를 을로 매겨놓고 따져물었던 것입니다. 그때 갑·을이라는 표현부터 고쳐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 갑·을은 순서뿐만 아니라 우열을 뜻한다고 돼 있습니다.
갑·을이 최선일까요? 법제처에 물었습니다. 국민불편법령개폐팀 이근호 주무관은 적잖이 당황합니다. 일단 최선은 아니라고 전제합니다. “법령 어디에도 갑·을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계약서를 쓸 때 표준계약서를 이용하는데, 그 계약서는 오래전 공인중개사협회나 건축협회 등에서 내놓은 것이지요. 협회의 견본을 일상에서 사용하다 보니 그렇게 정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굳어진 관행’이라는 것밖에 연원을 확인할 길은 찾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법학 교과서가 일본 문헌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는 점은 그 유래를 짐작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일제의 잔재라고 규정짓기도 힘듭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의 계약서에서도 갑·을은 등장하니까요. 갑·을 사용에는 실용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가·나’같은 경우에는 조사와 연결지어 쓸 때 조사와 혼동할수 있지만, 갑·을은 일상적으로 잘 쓰이지 않고 낯선 단어여서 문장 가운데 있어도 눈에 잘 들어오죠.” 강문대 변호사의 말입니다.
관행이다 보니 쓰임새가 규칙으로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특히 계약 당사자가 4명일때는 갑·을·병·정 등이 문제가 없지만, 4명이 넘는 관계에서는 무·기·경·신·임·계 등을 흔히 쓰지는 않습니다. 한 포털에서 ‘법률상담’을 담당하는 이상권 변호사는 “십간의 순서대로 10명까지 표기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보통 4명, 그러니까 정에서 무로 넘어가는 경우에는 십간을 쓰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10명 이상일 때에는 (저도) 심히 궁금합니다”라고 답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슈퍼주니어처럼 13명이 계약 당사자인 경우에는 ‘A·B·C’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참, 일반인들의 오해와는 달리 법률과 판결문에 갑·을이라는 표현은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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