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인규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우리 집 안방 한켠에는 오래된 풍금이 자리하고 있다. 35년도 훨씬 전인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던 풍금이다. 당시만 해도 피아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구경하기 어려웠다. 학교에서 한 대뿐인 풍금은 음악 시간마다 교실을 옮겨다녀야 했다. 동급생 중 덩치가 컸던 나와 세 명의 친구들이 도맡아 풍금을 운반했다. 그때는 네 명이 드는데도 얼마나 무겁던지…. 하지만 담임 선생님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려주던 노랫소리와 하얀 건반에서 사뿐히 날아다니던 희고 고운 선생님의 손가락에 넋이 빠져 유난히도 기다려지던 음악 시간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지리산 초입에 자리잡은 작은 시골학교여서 두 동네 학생들이 다녔는데, 우리는 수업을 마치면 학교 앞 냇가에서 멱도 감고 피라미도 잡곤 했다. 물놀이를 끝내고 파래진 입술을 덜덜 떨면서 집으로 가는 길에 학교에서 들려오는 풍금 소리는 이제 생각해도 참 많이도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우연찮게 이제는 폐교가 되어버린 학교를 들러보던 중 창고에서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쓰고 있는 풍금을 발견해 들고 왔다. 이제는 35년 전 나보다 훨씬 커버린 중학생 막내 딸아이가 풍금을 치면 그때의 아련한 추억이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곤 한다. 학교 운동장에서 세상 모르고 뛰어놀던 병두. 키가 유난히도 작았지만 냇가에서 물고기를 귀신같이 잡아올리던 천수. 여자애들 고무줄놀이 하는 곳에 가 싹둑 고무줄을 잘라버리고 돌아서면 그 큰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우리를 원망스런 눈으로 쳐다보던 미선이, 행심이….
힘겹던 시절 생활이 어려워져 평수를 줄여 집을 옮기면서, 산 지 3년밖에 안 된 기름기 자르르한 피아노는 가져오지 않았지만 풍금은 챙겨왔다. 오래된 풍금은 꿈같은 동화 속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나의 몇 안 되는 물건 중 으뜸이기 때문이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연락 안 받는 사연 [그림판]
군복 벗은 노상원, ‘김용현 뒷배’ 업고 장군들 불러 내란 모의
[단독] 여인형 “윤, 계엄 사흘 전 국회에 격노…작년부터 언급”
[단독] 국회 부수고 “헌법 따른 것”…계엄군 정신교육 증언 나왔다
한덕수, 내란·김건희 특검법엔 시간 끌며 눈치 보나
검찰, ‘계엄 체포조 지원’ 혐의 경찰 국수본 압수수색
“닥쳐라” 김용원이 또…기자 퇴장시킨 뒤 인권위원에 막말
[단독] 백해룡의 폭로… 검찰 마약수사 직무유기 정황 포착
현실의 응시자, 정아은 작가 별세…향년 49
‘윤석열 색칠놀이’ 비판 시민 용산어린이정원 출입 거부는 “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