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정 부산 해운대구 우2동
얼마 전 아버지가 문갑 깊숙한 곳에 있던 당신의 물건들을 정리하시면서 꺼내 보여주셨던 분필통이다. 지금은 교실마다 분필통이 딸린 칠판에다 좋은 재질의 분필꽂이까지 갖춰져 있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수업마다 이런 개인 나무 분필통을 가지고 들어가셨다고 한다. 뚜껑에는 당시 수업에 들어갔던 학급의 요일별 시간표 흔적이 보이고 분필통 안쪽에는 아직도 하얀 분필 가루가 남아 있다.
원래 지급된 분필통은 크기가 더 컸으나 아버지가 사용하시기 좋게 크기를 줄이고 열기 편하도록 뚜껑에 작은 못으로 스토퍼와 홈까지 만드셨다고 한다. 분필 하나하나를 종이로 감싸 사용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학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말하는 아버지는 어느새 한창 때 젊은 열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버지는 올여름 36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셨다. 반평생 몸담은 곳을 떠나시면서 어찌 아쉬운 마음이 없으랴마는, 아버지는 물건을 정리하시면서 “이젠 필요도 없는 걸 왜 이리 오래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이 분필통을 버리려 하셨다.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자식들도 다 교사가 됐다. 그런 우리 눈에 이 분필통이 예사로 보일 리 없다. 나는 혹여 버릴세라 얼른 그것을 가져와버렸다. 까맣게 손때가 묻은 분필통을 보고 있노라면 교사로서의 아버지 체취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년퇴직을 하셔서 집에서 손자 재롱을 보거나 간간이 등산을 소일거리로 삼으시지만, 나는 안다. 아버지의 그 주름과 흰 머리칼 한올 한올에 담긴 지나간 나날들의 땀과 노력을. 아버지, 당신은 대한민국의 교사입니다. 당신이 이 분필통을 가지고 첫 수업에 임했던 그 마음을 저도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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