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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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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찜통처럼 뜨겁게 사랑하오

등록 2007-11-09 00:00 수정 2020-05-03 04:25

▣ 홍경석 대전시 중구 산성동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따뜻한 난로와 불이 확 붙은 연탄불이 그립다. 어제는 장모님의 칠순잔치가 있어 처갓집에 갔다. 점심엔 마침 처조카가 마당에서 연탄불과 번개탄에 돼지고기를 구워줘서 여간 잘 먹은 게 아니었다.

한겨울의 연탄난로는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이런저런 대화의 마당도 되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금상첨화로 정말로 오래 사용하고 있는 사진의 찜통에 아내가 쪄주는 백설기, 송편 등의 떡에다 동치미를 곁들이면 임금의 수라상조차 부럽지 않은 우리 집만의 화려한 파티가 된다.

이 찜통은 아들의 첫돌 때 평소 떡을 잘 빚으시는 장모님께서 수수팥떡을 가득 해 가지고 오셨던 용기다. 한데 ‘시집간 딸은 모두 도둑’이라고 아내는 이 찜통을 그 당시에 슬쩍 뒤로 챙기곤 여태껏 자신의 물건인 양 사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엉큼한 아낙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나도 딸을 키우다 보니 아빠로서 뭐라도 하나 더 보태주고만 싶은 게 본심이다. 그래서일까. 장모님께선 어쩌다 우리 집에 놀러오셔서 문제의 찜통을 보셔도 달라고 하시질 않으신다.

하여간 이 찜통은 떡의 마술사다. 그래서 이 찜통에 곡식을 담아 불에 찌기만 하면 근사하고 맛도 기막힌 떡이 척척 나온다. 아내는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겨울방학에 서울로 유학 간 딸이 집에 오는 때에 맞춰 호박떡을 해 먹겠다며 늙은 단호박을 사다놓고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장모님의 손을 탄 지가 얼추 10년은 되었다는 찜통이 우리 집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25년이 다 되었다. 돈벌이엔 영 젬병이자 허릅숭이인 이 못난 서방 탓에 지금껏 고생만 하고 있는 아내를 보자면 늘 묵직한 미안함이 명치 끝에 걸린다. 지난해의 은혼식에 이어 이담의 금혼식 때까지도 아내만을 사랑하리란 각오와 함께 찜통처럼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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