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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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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오래된물건] 가슴을 적신 옛 일기장

등록 2006-11-18 00:00 수정 2020-05-03 04:24

▣ 서단

내 보물 1호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쓴 일기장이다. 아쉽게도 초등학교 때 쓴 것은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면서 잃어버렸지만 그나마 중학교 때 것부터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얼마 전부터 밤마다 옛날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분량이 많아서 다 읽는 데 2주일이 걸렸다. 맨 첫 번째 일기에는 중학생이 되면 일기를 안 써도 된다고 좋아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일기 검사할 거라고 해서 일기 써야 한다고 엄청 아쉬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때는 일기 쓰는 게 참 귀찮고 싫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이 정말 고맙다. 선생님 덕분에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일기를 읽으며 난 옛날로 돌아갔다. 처음 중학교 들어갔을 때의 설렘, 친구랑 사소한 일로 싸워서 애끓었던 것, 시험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들이 다 생생하게 느껴졌다. 목이 말라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려고 잠시 일기장에 눈을 떼고 책상에서 일어났는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일기를 읽으면서 난 다시 여중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말 신기했다. 고등학교 때 가을을 타서 2학기 중간고사 기간 때마다 학교를 뛰쳐나가고 싶었던 일, ‘고3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병원 가서 주사를 맞으며 울었던 일이 새록새록 생각나면서 가슴이 짠해지기도 했다. 대학교 때는 누군가를 남몰래 사랑하면서 애를 태우기도 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면서 참 열정적으로 살았던 것 같다.

일기를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다. 지금까지 잘 자라온 내가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현재의 삶에 지칠 때 가끔씩 옛일을 떠올려볼 수 있게 해주는 일기장이 있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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