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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오래된물건 ] 등산화, 넉넉한 사람들을 만나다

등록 2006-09-22 00:00 수정 2020-05-02 04:24

▣ 문부자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오랜만에 여유 있는 주말, 하늘도 유리알처럼 파랗다. 여름 찜통더위에 조금 주춤했던 등산을 다시 해볼까 하고 등산화를 꺼내든다.
새 천년과 함께 나와 동행한 등산화! 등산에 막 재미를 붙이던 2000년에 신문 전단지에서 마지막 세일을 한다는 백화점 광고를 보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가서 간신히 마감 시간 전에 구입했다.

나중에 보니 그 가격으로 동네 마트에서 항상 판매되고 있었지만. 밑창이 닳아서 한 번 갈고도 변함없이 끄떡없이 나와 험한 길을 동행하는 신발이다. 이 정도 되면 그냥 신발이 아니라 애칭이라도 하나 붙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이 신발을 신고 산행을 하며 산과 친해지면서 친환경적인 인간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산행에 동행해주신 분들은 산새 놀라니 산에서 야호 하지 말라, 뜨거운 물은 직접 버리면 미물을 죽게 할 수 있으니 꼭 바위에 흘려서 버려야 한다는 등 작지만 소홀히 했던 것을 깨닫고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셨다. 좋아하기에 더 아껴야 하고, 그래서 항상 가까이 할 수 있게 하라는 당부. 인생의 연륜만큼이나 넉넉하고 좋으신 분들이었다. 아쉽게도 처음 동행하던 산악회가 없어지고(이윤이 안 되는 것은 금세 사라지는 경제논리에 따라서) 이후 다른 산악회에 갔다가 사진 한 장 찍으려고 갈대밭을 뭉개서 순식간에 평지로 만드는 걸 보고 기겁을 하고 나와버렸다.

이젠 여러 가지 생활의 핑계로 산행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 등산화는 제일 손에 잘 닿는 신발장 위치에서 언제나 대기하고 있다. 모든 물건은 생활의 때가 묻으면서 단순한 물건이 아닌, 어떤 얼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등산화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 뼘쯤 더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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