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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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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오래된물건 ] 군번줄에 걸린 너와 나의 맘

등록 2006-06-14 00:00 수정 2020-05-03 04:24

▣ 오미향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

4.5초(4박5일)짜리 100일 휴가 때 ‘100일 동안의 내 땀이 서린 거야”라며 내민 것은 누렇게 변한 군번줄. 자신의 것은 다시 만들었다며 고무신의 상징이라도 되는 양 군번줄을 내밀었고 나는 그 순간 무지 감동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벌써 23개월이 흘렀고 훈련소에서 100일 동안 그가 가지고 있었으니 692일의 군복무 기간에서 100일을 빼면 정확하게 이 물건이 나와 함께한 날은 592일이다.

592일 동안 군번줄을 계속 못살게 굴었다. 가방에 매달고 목걸이도 해보고 심지어는 군번줄만 보면서 하염없이 울기도 했다. 군번줄에는 육군, 군번, 이름, 혈액형이 쓰여진 게 똑같은 모양으로 두 개 있다. 짧은 줄과 긴 줄이 서로 얽혀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실 이 두 녀석은 떨어지면 안 된다. 두 표가 떨어지는 것은 표에 적힌 이름의 주인공의 죽음을 나타낸다. 하나는 시신에, 하나는 상사 보고용으로 가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섬뜩하기 그지없다.

그런 군번줄 두 쌍이 만나게 될 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입대 날 부산에서 논산까지 올라와 끝까지 그 앞에선 눈물을 보이지 않으리라 굳게 맘먹은 찰나 “어~ 어” 하며 그를 뺏겨버렸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100일, 자대 배치, 4.5초짜리 휴가, 10분 정기 휴가, 한 달에 한 번의 면회를 거치면서 우여곡절 넘치는 군바리와 고무신의 이야기는 꼬리를 문다.

이제 병장 주재훈이 아닌 민간인 주재훈으로 돌아오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친구들은 지겨운 군대 얘기 안 듣게 됐다며 더 이상 기다리지 않으니 나보고 좋겠다고 하지만 왠지 이 생활이 그리울 것 같다. 애타게 기다리는 이 시간이 얼마나 설레고 행복했는지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일까? 힘든 군 생활이었지만 그와 나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제대하면 더 바빠질지도 모르지만 우리 지금처럼 쭈욱~ 아름답게 사랑합시다. 당당한 젊음으로 무장한 주재훈. 당신의 전역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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