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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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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독자도 외면할 수 없는 ‘생명 OTL’

‘생명 OTL’에 대한 논쟁으로 뜨거웠던

21기 독편위 두 번째 모임, “보편적 복지 의제 리드하길”
등록 2011-02-10 16:23 수정 2020-05-03 04:26

전날 내린 눈으로 만리재길이 질척거렸던 지난 1월24일 저녁,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21기 독자편집위원회 두 번째 회의가 열렸다. 기말고사로 첫 회의에 참석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고등학생 염은비 위원이 가장 먼저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웃는 얼굴이 해맑은 김원진 위원과 미소년의 수줍음을 지닌 안재영 위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착했다. 꼬박 6시간 동안 전남 무안에서 달려왔으나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는 김은숙 위원도 제시간에 당도했다.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뻤다는 신성호 위원은 오자마자 컵라면으로 주린 배를 달래 안쓰러움을 더했다.
날치기 예산이 엎어버린 아이들의 밥상에 주목한 841호부터 MB 레임덕을 표지이야기로 다룬 845호까지 을 향한 독편위원들의 모진(?) 비평은 이번 모임에서도 계속됐다. 특히 ‘생명 OTL’ 시리즈를 둘러싸고 ‘뻔한 결론’이라는 지적과 ‘다운 접근’이라는 지지가 팽팽했다.

〈한겨레21〉841호, 842호, 843호, 844호, 845호

〈한겨레21〉841호, 842호, 843호, 844호, 845호

생명 OTL, 통계보다 시스템을

사회: 눈이 많이 와서 오는 길이 힘들었겠다. 짧고 굵게 지난 를 파헤쳐보자. 예산안 날치기가 우리 사회의 그늘에 미칠 영향을 되짚은 841호 표지이야기부터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한다.

김원진: 무난했다. 짚을 것은 다 짚었다. 기존 논의는 서울 중심이었는데, 논의를 지방으로 확장시켜 더 좋았다.

김은숙: 24쪽 상자 기사 ‘부모가 낸 세금을 아이들에게 돌려라’를 읽고 이 문제가 단순히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밥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밥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 (웃음)

신성호: 밥을 못 먹는 아이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그들은 활동을 잘 안 해서 숨겨져 있다. 그래서 많이 모르는 것이다.

김원진: 예산안 날치기 관련 기사는 좀더 폭넓게 다뤘으면 싶다. 신문이나 이나 비슷한 톤이라 조금 아쉬웠다.

사회: ‘생명 OTL’은 전반적으로 어떻게 읽고 있나.

김은숙: 결국 질병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것 같다. 궁극적으로 복지의 확대로 나아가자는 호소다. 호스피스나 복지시설의 문제점에 주목하기보다는 복지제도 전반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김대훈: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경제력의 차이다. 여기 있는 분들도 암에 걸릴지 모른다. 중산층도 암에 걸리면 취약해진다. 이런 점에서 ‘생명 OTL’은 건강에 대해 달리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김원진: 생각이 좀 다르다. 계속 힘이 실리지 않는 느낌이다. 예전의 ‘인권 OTL’이나 ‘노동 OTL’보다 덜 와닿는다. 내가 젊어서 그런가. (웃음) 좀 뻔한 느낌? 응급실 문제나 사고사를 다룬 부분은 좋았다.

김대훈: 그렇게 생각하는 건 본인이 건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웃음) 이런 상태에서 의료가 개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편적 인식인 듯하다.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김은숙: 동의한다. 뻔하다고 하는 건 아직 느낌이 안 오기 때문일 것이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느낌이 온다.

김혜진: 건강한 독자에게도 위기의식을 줘야 ‘생명 OTL’ 기획이 성공한 게 아닐까. 사례별로 가면서 대다수 젊은 독자들은 회피하고 싶지 않았을까.

김대훈: 의료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의료는 서비스로만 여겨지는 듯하다. 개인이 받는 서비스지만,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김원진: 지금처럼 보편적 복지 논의가 있을 때, ‘생명 OTL’로 의제를 리드해야 한다고 본다.

안재영: 아는 얘기가 나온 듯했다. 가난한 사람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죽는 얘기 같은. 그런데 읽으면서 느낀 점이 많다. 건강마저 가난 때문에 차별받는 현실을 일깨우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통계자료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 늘어놓은 느낌이다. 건강지도도 그렇게 많이 나열할 필요가 있었을까.

김은숙: 각 지역에 지면을 할애해준 것이 난 더 좋았다. 자신이 사는 동네가 궁금하지 않나.

안재영: 그렇게 되면 자신이 사는 동네만 보지 않나. (웃음)

제21기 독자편집위원회

제21기 독자편집위원회

‘통큰치킨’에 대한 통큰 비판

사회: 이른바 ‘닭세권’ 관련 기획은 어땠나.

김혜림: 프랜차이즈 치킨에 가격 거품이 들어가 있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를 하면서 치킨 단가가 많이 올랐고, 그 광고비를 서민들이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다. 결국 닭집을 운영하는 이는 얼마 못 먹고 기업만 살찌는 구조다.

김원진: ‘통큰치킨’이나 ‘이마트 피자’나 대기업의 횡포라는 측면을 배제하긴 어렵다. 이런 점에서 841호 닭세권 분석 기사는 대기업의 본질을 잘 짚었다. 한국 사회는 대기업만 살고 나머지는 다 죽는 구조 아닌가.

신성호: ‘통큰치킨’은 미끼 상품이다. 롯데마트는 이걸로 재미 좀 봤을 것이다. ‘통큰’이라는 말이 유행하지 않았나. 사실 오늘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통큰 검진’이라고 하더라. 다른 검진에 비해 반값이라서. (웃음)

안재영: 이마트 피자의 ‘회사 기회 유용’을 지적한 상자 기사도 유용했다. 이 부분을 별도의 기사로 썼으면 어땠을까. 이마트 피자에도 편법 증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점은 이마트 피자를 먹지 말아야 하는 색다른 이유를 제공해준다.

염은비: 기업형 슈퍼마켓(SSM) 문제도 함께 논의됐으면 어땠을까. 롯데마트와 이마트의 행태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는 SSM으로 귀결되는 것 아닌가.

김대훈: 동네 치킨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궁금하다. 통큰치킨을 옹호하고 싶진 않지만, 동네 치킨 가격이 비싼 것 또한 현실 아닌가.

신성호: SSM보다 동네 구멍가게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쉽지 않다. 편리하고 세련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도 매력이다. 의식적으로 동네 슈퍼를 이용해야지 하면서도 이런 사정 때문에 SSM을 이용할 때 불편한 마음이 든다.

부족했던 종편 기사, 발랄했던 ‘놀이 정치’

사회 올겨울 전국은 소·돼지의 무덤이었다. 구제역 기사는 어땠나.

김대훈: 구제역은 치사율이 높지 않은 병인데, 그렇게 죽인다는 게 문제다.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소를 죽이는 게 맞나. 그걸 잃으면 대단한 위기가 오나. 이런 시각에서 기사를 써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김혜림: 백신 접종만이 능사가 아니고, 그렇다고 살처분은 아닌 것 같고, 명확한 답을 내기 어려운 문제라서 기사도 그렇게 나간 것 아닐까.

김은숙: 기사에도 나왔지만 결국 육식인간의 문제다. 온 지구인이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이 해법 아니냐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웃음) 집에서 육식을 거의 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는 것 같긴 하다.

안재영: 특히 845호 이슈추적에서 다룬 구제역 농장의 이주노동자 얘기가 좋았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사회: 843호 신년호를 얘기할 차례다. 표지이야기로 다룬 ‘놀이 정치’부터.

안재영: 제도 변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너무 가볍게만 접근한 게 아닌가 싶다.

김원진: 난 가끔은 이런 것도 좋다. 한 번은 빵빵 터트려줘야 하지 않나. (웃음)

김은숙: 표지를 보고 정치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신성호: 삼성 비판 기사를 매주 볼 수 있어서 고맙고 다행스럽다.

김은숙: 앞으로 복수노조와 관련해 다른 기업의 사례도 보여주면 좋을 것이다.

사회: 844호로 넘어가자. 종편 특집부터 얘기해보자.

김원진: 844호와 845호 모두 종편 특집 기사가 너무 적었다.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던 것 아닌가.

김은숙: 모르는 입장에서는 깨우쳐준 데 한 표.

김혜림: 844호 특집 ‘닥치고 종편사수란 시대착오’ 기사의 부제가 잘 짚어준 것 같다. 조·중·동 종편이 미디어 흐름에는 역행하지만 정치적 퇴행에는 부합한다는. 종편 관련 기사는 새롭지는 않았는데, 깔끔하게 잘 정리한 느낌이었다.

김대훈: 한국의 롤모델인 미국의 문제점을 보여줬다. 미국이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소셜미디어 같은 게 나오지 않았을까. 종편이 장악하면 우리나라는 이런 싹도 못 나오게 하지 않을까.

김혜림: 방송이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강화하는지를 좀더 부각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박노자 칼럼 ‘한국의 진보는 진정 전쟁에 반대하는가’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가슴에 남은 ‘철의 노동자’

사회: 마지막으로 845호에 대해 말해달라.

안재영: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면 다음 대선주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레임덕이 언급된다. MB가 레임덕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약의 이행을 추궁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집권 1년차에도 국민은 힘들었다.

신성호: 보온병 사건을 비롯해 안상수 대표가 좋은 일(?)을 많이 하신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사람과 사회’로 다룬 한진중공업 노동자 기사가 가슴에 남는다. 경영진의 잘못으로 노동자가 잘리는 게 가슴 아프다.

사회·정리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21기 독자편집위원의 포부

“ 독자라는 데 안주하지 않겠다”

안재영: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전공을 살려 과 같은 좋은 매체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독편위 활동이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을 아끼는 사람이 더 많아지도록 열심히 보고 비판하겠습니다.

김원진: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입니다. 과 우연한 기회에 조우해 많은 정신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나를 일깨워준 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기사 하나하나 정성스레 톺아보며 ‘한겨레스러운’ 독자편집위원이 되겠습니다.

김은숙: 내가 좋아하는 잡지, 내 생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에 나도 좀 영향을 줘보자고, 독편위원이 되어 에 단소리, 쓴소리를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잡지에 도움이 된다면 좋지 아니한가요?

김대훈: 20기 독편위 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었고, 뛰어난 소양을 갖춘 독편위원 간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소중한 경험을 21기 독편위로 이어가게 돼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염은비: 은 답답한 일상에 무언가 생각할 일을 만들어주는 존재입니다. 더욱 열심히 꼼꼼하게 읽어서 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와 모두 파이팅!

신성호: 어느덧 일상에 안주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새로운 각성과 긴장을 도모하기 위해 한동안 안 봤던 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독자로 안주하는 저를 확인했습니다. 결국 안주하지 않기 위해 지원했습니다.

김혜림: 에 조금 가까이 다가서 대화할 수 있게 돼 영광입니다. 독편위 첫 회의에서도 같은 기사를 두고 호불호가 갈렸는데, 이 만들어나가는 ‘상식’과 ‘기준’의 설정, 그리고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식’을 찾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안명휘: 독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에 대한 칭찬보다는 비판을 더 많이 하려 합니다. 성역 없는 보도의 새 장을 연 이 앞으로 더 많은 발전을 통해 민중의 가슴을 더욱더 시원하게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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