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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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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을 특종답게, 비판을 비판답게

21기’라서 더 뜻깊은 독자편집위원회 첫 모임…
“‘삼성의 MBC 엿보기’ 특종 등 더욱 센 이슈 파이팅으로 의제 리드해야”
등록 2010-12-30 14:16 수정 2020-05-03 04:26

연평도 포격 훈련으로 전쟁 발발에 대한 공포가 치솟던 지난 12월20일 저녁,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21기 독자편집위원회의 첫 모임이 열렸다. 시국에 대한 불안도 독편위 활동에 대한 설렘을 꺾지 못했던 것일까. 기말고사 때문에 불참한 고등학생 염은비 위원을 제외한 7명의 독편위원이 모두 제 시간에 맞춰 당도했다. 데면데면한 분위기도 잠시, 독편위원들은 상냥한 얼굴을 접고 기사에 대해 속사포처럼 ‘독한 멘트’들을 쏟아냈다. 특히 회의 초반에 ‘고시 열풍’을 둘러싸고 청년 세대인 김원진·김대훈·김혜림 위원과 장년(?) 세대인 김은숙·신성호 위원이 작은 논쟁을 벌여 회의실의 열기를 더했다. 나이에 비해 중량감이 있는 안명휘 위원과 나이에 비해 동안을 자랑하는 안재영 위원도 처음이라고 봐주는 것 없이 비판을 보탰다.
제2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작 를 표지이야기로 한 837호부터 ‘생명 OTL‘ 시리즈 첫 회가 실린 840호까지, 3시간30분에 걸친 독한 비평으로도 모자랐는지 독편위원들은 한겨레신문사 앞 호프집에서 새벽 1시까지 논쟁을 이어갔다.

<한겨레21> 837~840호

<한겨레21> 837~840호

‘공시촌’ 표지, 살가웠으나 새롭지는 않았던

사회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데 이렇게 자리해주셔서 감사하다. (웃음) 21기라서 더 뜻깊다. 먼저 제2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작 가 표지이야기인 837호부터 비판해달라.

김대훈 20대에 대한 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지만 새롭지는 않았다.

김혜림 한국 청년들이 고시에만 몰두하는 건 그들이 세속적이라서보다 사회 안전망이 없는 한국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 기획이 와닿았다.

김원진 이 88만원 세대에게 관심이 덜한 것 같다. 오랜만에 다룬 느낌이다. 이번 표지이야기도 진부한 이야기를 스타일로 풀어낸 것 아닌가.

사회 다른 기사들은 어땠나.

김은숙 삼성 직원의 문화방송 내부정보망 접속 의혹을 제기한 특종과 연이은 후속 보도가 맘에 들었다. 삼성에 대해 끈기 있게 보도하는 태도가 ‘역시 이구나’ 싶었다.

김원진 삼성 기사는 달리 볼 여지도 있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힘이 부족했다. 엄청난 특종이었고, 사안의 중대성도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슈 파이팅하는 힘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신성호 의 보도로 삼성 직원이 문화방송의 내일 뉴스를 들여다본 것이 드러났다. 이는 대단한 사건이다. 삼성이 언론과의 유착을 넘어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 아닌가.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너무 쉽게 묻혀버려서 역시 삼성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에 소름 끼쳤다.

김원진 문제가 있을 때마다 삼성 문제는 계속 다뤄왔는데, 아는 사람만 아는 게 문제다. 삼성 보도를 할 때 너무 단순하게 기사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좀더 세게 써주었으면 한다. (웃음)

제21기 독자편집위원회

제21기 독자편집위원회

신성호 동의한다. 삼성 문제에 관심이 있지만, 어떤 때는 지겨워서 안 읽고 넘긴다. 무심한 자신도 문제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고 느끼게 하는 정형화되고 형식화된 기사 작법도 문제라고 본다.

김대훈 한겨레만큼 삼성을 비판하는 언론은 없다. 그렇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수익구조를 광고에서 다른 부분으로 이동하는 전략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비판과 동시에 잘하라고 격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회 이 꾸준히 다루는 민간인 불법사찰 기사는 어떻게들 보고 있나.

안명휘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쪽으로 세게 의제 설정을 해야 한다. 책임 소재와 대상을 명확하게 짚어 비판해야 한다.

김원진 결국 중요한 것은 기사가 읽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사를 좀더 자극적으로 써야 한다. 제목도 선정적으로 가야 한다. (웃음)

김혜림 너무 선정적으로 가는 건 문제라고 본다. 독자가 읽어보면 바로 알게 되지 않겠나.

신성호 인간은 원래 망각의 동물 아닌가. 나쁜 놈 욕하다가도 시나브로 잊어버리는 게 인간이다. 그런 점에서 은 이 망각과 싸워야 한다. 계속 관심을 갖고 보도해야 한다.

사회 838호로 넘어가보자.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전국이 충격에 빠진 주였다. 서울 사람들의 불안을 다룬 표지이야기는 어땠나.

안명휘 농담인데, 보온병이 여러 개 있는 걸로 표지디자인을 하면 어땠을까. (웃음)

김은숙 연평도 포격은 개그나 패러디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사실 남쪽 끝인 전남 무안에 살다 보니 연평도가 와닿지 않았는데, 표지이야기에 실린 사진을 보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구나 생각하게 됐다.

김원진 838호 기사가 좋아서 주위에 일독을 권했다. 특히 송민순 전 장관의 인터뷰가 좋았다. 인터뷰이 선정부터 제목, 내용까지 시의적절했다. 특수한 외교적 측면을 잘 다룬 것 같다.

신성호 외교적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되지만, 일반 국민의 정서에 분노가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그 점을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

김대훈 동의한다. 숨진 사람들과 유족의 심정도 다뤘어야 한다. 기사는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위주가 아니었나.

안명휘 외교로 풀어야 하는 이유를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자위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뭔지 따져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김은숙 자워권이나 작전권 같은 건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전쟁은 없어야 한다.

김원진 동의한다. 연평도 주민이나 아들을 군대를 보낸 부모님 인터뷰가 같은 주 에 실렸다. 은 너무 서울 시민 중심이 아니었나.

김대훈 사실 논조는 맞는데 너무 차갑지 않았나 싶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맞아 울고 있는데 그만 울고 참으라고 말하는 듯했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본다고 했지만 특수한 상황에 처한 대다수의 감정적인 사람들이 여기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얘기를 한 다음 그럼에도 냉정을 찾자고 얘기했으면 달랐을 것이다.

현장이 없었던 839호 표지이야기

사회 말이 나온 김에 연평도 이후를 다룬 839호 표지이야기 ’나를 따르라?’도 얘기해달라.

안명휘 북한 붕괴론 기사에서 우익이 말하는 흡수통일이 지금 한국의 경제 여건으로 과연 가능한지 분석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김원진 기사 자체에 현장이 없었다. 현장의 군인들이나 주민들에 관한 내용이 없더라. 책상에서 책을 보고 쓴 게 아닌가 싶었다.

신성호 약간 다른 얘기인데, 이제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 진영도 북한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김혜림 대중의 분노하는 마음도 헤아리고 반영해야 한다. 의 편이 아닌 사람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안재영 대북정책에 관해 너무 참여정부 주장만 다루지 않았나 싶다. 정반대로 지금 MB 정부의 국방부 장관이라도 공격적으로 인터뷰하는 건 어땠나.

김대훈 그건 좀 생각이 다르다. MB 쪽 의견은 조·중·동과 한국방송을 통해 일상적으로 과대 홍보되고 있는데 마저 그들에게 지면을 내줘야 하나.

안재영 지면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논박하는 공격적인 인터뷰를 하자는 의미다.

사회 ‘우리 곁의 오지’는 어땠나.

김은숙 사실 가사도우미를 다룬 기사가 별로 와닿지 않았다. 이 직업이 오지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웃음) 가사도우미를 부르는 사람도 내 집에 다른 사람이 와 있어서 불편한 게 사실이다. 가사도우미가 하는 일도 여느 가정의 며느리나 어머니들이 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무래도 오지는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4대 보험이 안 되는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 (웃음)

김혜림 가사노동의 저평가가 가사도우미의 사회·경제적 저평가와 동일선상의 문제라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

김원진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는 대다수 가정주부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하다. 반면 가사노동을 못해본 사람들은 공감해볼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안명휘 그럼에도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하긴 어렵지 않았나 싶다.

생명 OTL, 더 정교한 분석 기대

사회 840호부터 새롭게 시작한 ‘생명 OTL’을 말해보자.

안재영 우선 읽기에 부담스럽도록 페이지가 많았다. 맨 뒤에 나온 소득에 따른 암 발병·사망 수치 기사가 너무 당연한 느낌이었다. 차라리 얼마나 지원이 필요하다든지 지원되는 부분이 어느 정도라든지 하는 수치가 나왔으면 현실감이 있었을 것이다.

안명휘 ‘마음의 독까지 벗겨줄 수 있을까’에 실린 감동적인 내용이 메인 기사에 담겼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김대훈 짧게 끊는 글이 오히려 와닿았다.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기사다. 수치나 대안 부재 등은 연재 초반이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혜림 그렇다고 해도 가난과 죽음을 연결하는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지 않았나. 더 정교하게 분석해야 하지 않았나.

신성호 어려운 주제였으나, 사실 대부분은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새로운 이야기가 없었다. 그저 가난과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겠다.

김대훈 암은 여전히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다. 치사율도 가장 높지 않나. 암에 걸리면 집안이 기운다는 것도 여전한 사실이고. 빈곤과 암환자를 들여다본 것은 적절했다고 본다. 다른 질병을 다루었다면 여러모로 설득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독자편집위원회가 뽑은 올해의 표지
내년에는 연평도와 한반도에 평화를


연말이면 찾아오는 그렇고 그런 시상식이 아닙니다. 지들끼리 나눠먹는 그들만의 잔치도 아닙니다. 에 대한 애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19·20·21기 독자편집위원 17명에게 ‘올해의 표지 베스트 & 워스트’를 뽑아달라 청했습니다. 표지 디자인 부문도 선정해봤습니다. 대한민국에 무슨 마가 끼었는지 사건·사고가 유독 많은 한 해였던 만큼, 1위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습니다. 이제 결과를 공개합니다. 짜잔~.

올해의 표지 1위 8표 (★★★★★★★★)
<한겨레21> 838호

<한겨레21> 838호


올해의 표지 디자인 1위 9표(★★★★★★★★★)
대망의 1위는 두 부문 공통으로 838호 ‘무엇을 할 것인가-연평도를 서울의 미래로 만들지 않기 위하여’가 차지했습니다. 838호는 살아남은 자의 공포로 충만했던 생생한 연평도 현지 사진을 싣고 서울에 포탄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현실적인 불안을 다뤘습니다. 전쟁 발발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커진 오늘, 독편위원들의 평화의 바람이 투표로 이어졌다는 분석입니다.
“표지 전체를 차지한 연평도 포격 현장의 사진은 생생함과 함께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20기 김경민)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하는 사진과 기사였다.”(21기 김은숙)


올해의 표지 2위 6표 (★★★★★★)
<한겨레21> 829호

<한겨레21> 829호


2위는 829호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에게 돌아갔습니다. 은 829호를 통해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눈길을 피하고 싶었을 금기의 문을 열었습니다. 몇몇 독편위원들은 “읽기조차 힘들었다”며 충격과 불편함을 내비쳤습니다.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단순하고 중요한 사실을 다시 일깨운 기사였다.”(19기 박준호)
“장애인을 무성의 존재로만 바라보았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다.”(20기 김대훈)


올해의 표지 디자인 2위 5표 (★★★★★)
<한겨레21> 830호

<한겨레21> 830호

올해의 표지 디자인 부문 2위는 북한의 3대 세습을 다룬 830호 ‘발가락도 닮았을까’로 선정됐습니다. 김정은의 모습을 ‘김일성 코스프레’라고 한 광고 카피는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는 후문입니다.
“김일성-정일-정은 3대를 희화화해 북한 세습을 걱정과 불안으로만 인식했던 내게 사안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볼 수 있게 했다.”(19기 박지숙)
“웃기기도 하고 내용이 궁금해져서 읽고 싶게 만드는 표지였다.”(21기 염은비)

사회·정리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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