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기 독자편집위원들이 (공식적으로) 마지막 모임을 열었다. 11월23일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열린 독편위는 831호부터 836호까지 돌이켜봤다.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831호의 기사를 두고 독편위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오래된” 이야기 같다고 말했다. 흐르는 시간 앞에서 일상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한반도와 세계 곳곳에서는 ‘흘러가는 시간’보다 더 쌩쌩,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연민 없는 문장의 ‘우리 곁의 오지’이길박지숙 831호 표지이야기 ‘휴대전화에 전자파 경고문을 넣자’는 외국 사례를 들고 위험성을 고발했다. 실생활에도 유용했다. 기사를 읽고 나서 가능하면 핸즈프리를 사용하려 노력한다. 표지이야기로 내세울 만큼 뉴스성이 강하냐에는 의문이 들었다.
정다운 보도 그 뒤 ‘3대 세습이 남쪽 진보에 드리운 그늘’은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는 민주노동당을 다뤘다. 민주노동당은 객관적인 자료를 이용해 우회적으로라도 무슨 뜻이든 표명해야 하지 않았을까.
박지숙 기사의 장점이 기자들의 논평이 객관적 사실과 잘 어우러지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번 기사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대해 어떤 의견도 없었다. 관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김대훈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언론매체가 굳이 나서서 민주노동당에 왜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느냐고 따져묻는 것은 지나친 간섭 아닌가. 민주노동당의 입장을 실어주는 것만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관망’이 아니라 ‘객관’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사회 832호에서 ‘우리 곁의 오지’ 시리즈를 시작했다. 어떻게들 읽었나.
김대훈 첫 회 ‘위험한 대지의 깃발’에 실린 타워크레인 꼭대기 조종석이 인상 깊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올라가는 과정, 꼭대기에 올랐을 때의 현장감 등이 생생히 살아 있었다. ‘오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다. 기사에서 말하는 오지란 여럿이 아닌 소수의 사람이 있는 곳,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곳인 듯하다. 그런 현장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변인숙 어렵고 불편하고 비합리적인 곳이 오지일 것이다. 이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시선을 앞으로도 유지해주면 좋겠다. 행여나 ‘불쌍하다’라는 시선이 비치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 말이 나온 김에 이후에 실린 ‘우리 곁의 오지’ 기사들까지 모아 얘기해보자.
정다운 833호 ‘지하 3m, 도시를 살리는 노동의 시궁창’과 한겨레신문사의 청소 노동자를 취재한 834호 ‘아무도 모르게 아침을 만들다’ 역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기사였다.
박지숙 다른 작업장이 아니라 신문사를 선정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신문사 내부를 궁금해하는 독자도 많을 텐데.
변인숙 한편으론 ‘그래서 뭐?’라는 느낌이 들었다. 현상을 넘어 이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고찰,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사소한 팁 등을 정리해 넣어줬다면 어땠을까.
박지숙 맞다. 833호 사람과 사회에서 제시한 ‘식당에서 개념고객 되는 법’처럼 ‘개념직원 되는 법’ ‘개념시민 되는 법’ 등을 알려주는 것도 좋았겠다.
변인숙 835호 ‘보이지 않는 난민’은 기사 자체로는 좋았는데 우리 곁의 오지 시리즈인 줄 몰랐다.
김대훈 오지의 정의를 명확히 내려주면 좋겠다. 처음 몇 회를 읽으면서는 우리 곁의 워킹푸어가 있는 곳을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난민’은 하우징푸어에 대한 내용이었다.
김경민 대리운전 노동자를 다룬 836호 ‘술 취한 도시를 가로지르는 삶의 드라이버들’을 읽으면서 대리운전 시장이 과열경쟁 구도가 되면서 많은 대리운전 기사들이 악순환의 노동 현실에 빠지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나’에게 다르게 와닿은 주체사상
사회 언급되지 않은 832~836호에서 주목했던 기사는 무엇인가.
김경민 832호 기획 ‘영원한 금기, 주체사상을 말한다’는 도움이 되는 기사였다. 주체사상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는 통로가 없어서 주체사상이 나쁘게만 인식되는 측면도 있다고 보는데 이런 방식으로 조금씩 알려주는 것도 긍정적인 듯하다.
이연경 그러나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기사를 읽으니 한계가 있었다. 대충 맥락만 잡히는 정도였다. 좀더 쉽게 설명해줄 수 없었을까. 학생운동이 거의 전무한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는 ‘NL’ ‘PD’ 같은 용어도 낯설다.
사회 833호 표지이야기 ‘G20은 나의 운명을 바꿀까’는 어땠나.
박지숙 진중권 교수의 말을 빌려 얘기하자면, 정부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대한 호들갑은 반장을 돌아가면서 하는 대안학교에서 자기 아들이 반장 됐다고 떡 돌리는 식이다. 국민을 주목하게 해놓고선 주목할 만한 성과도 보이지 않았다.
김경민 어쨌든 흥미로운 ‘잔치’였다. 하나의 퍼포먼스 같은 느낌이다. 관련 기사인 836호 특집 ‘저항하라! 놀면서 재미있게’에 인터뷰가 실린, G20 홍보물에 쥐 그림을 그려 입건된 대학강사 박아무개씨와 같이 풍자와 해학이 담긴 저항 방법을 보여준 계기였다.
사회 834호 표지이야기 ‘삼성은 MBC 내일 뉴스도 알고 있다?’는 의 특종 보도였다.
김경민 기사를 읽으면서 갑갑했다. 837호 초점으로 실린 후속 기사 ‘삼성 임원도 MBC 내부정보 봤다’를 보면, 삼성이 사과를 하긴 했지만 “직원 혼자 한 일이지만 미안하다”는 식이어서 안 하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연경 일반 기업이 언론매체의 내일 기사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문화방송 입장에서 보면 검찰에 넘길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형상이라 안타까웠다.
김경민 자본권력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정치권력은 그나마 선거 등의 과정을 거치지만 자본은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디선가 남한이나 북한이나 세습사회라고 평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북한은 정치권력 세습, 남한은 자본권력 세습…. 언론의 권력화도 물론 비판해야 하지만, 이제는 자본이 어떤 권력보다 힘이 세진 것 같다. 심각한 사안인데도 삼성이 사과 정도만 하고 그칠 수 있다는 게 부조리하다. 거칠게 말하면, 삼성에 ‘우리도 밟으면 꿈틀한다’ 정도로밖에 안 비쳤을 것 같다.
박지숙 더 오래되고 깊숙한 내막이 있지 않을까. 자본권력의 언론 개입을 더 파헤쳐보면 좋겠다.
김대훈 이어지는 기사 ‘비자금이 양심선언을 이겼다’에서 보듯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비자금이었던 것 같다. 삼성이 비자금에 대해 면죄를 받은 뒤 한화고 태광이고 따라했을 텐데, 삼성이 가진 문제들이 오히려 매뉴얼화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용철 변호사와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의 토론도 흥미로웠다. ‘시민들이 삼성을 너무 짝사랑하고 있어요’라는 제목처럼 삼성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동경과 혐오가 뒤섞인 이중적인 마음이 있는 듯하다.
박지숙 특집 ‘전태일의 시간·공간·생각’은 과거의 전태일과 ‘현재의 전태일들’을 나란히 놓고 이야기해서 좋았다. 오늘의 전태일은 단순히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에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계약직, 학원 강사 등 불안한 노동구조에 놓인 노동자가 모두 전태일이다.
변인숙 젊은 감각으로 편집됐다. 신파조로 접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덤덤한 투로 이어지는 이야기 덕분에 기사가 살아난 것 같다.
정다운 박지숙 위원의 의견처럼 불안한 노동구조에 놓인 사무직군의 노동자에게도 시선을 둔 기사를 써주면 좋겠다. ‘노동자’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경계에 거품을 걷을 필요가 있다.
천안함 기사, 소장의 이유사회 마지막으로, 이 천안함 흡착물질을 직접 실험한 결과를 보도한 836호 표지이야기를 이야기해보자.
박지숙 매번 말하지만 천안함 기사는 지속하는 점 자체가 좋다. 다른 언론, 특히 방송에서는 천안함이 잊혀진 것 같아 안타까웠다.
변인숙 그런데 까만 배경에 초록색 동그라미가 있는 표지 이미지를 처음 봤을 때는 천안함 사건과 또렷하게 연결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천안함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표지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김대훈 천안함 선체와 어뢰 부품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 폭발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천안함으로 희생된 젊은 장병들을 생각한다면 민·관·군 모두 적극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와 국방부, 다른 언론매체들은 그렇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반론을 제기한 의 의지를 높게 산다. 더불어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 어떤 문제에 대한 과학적 검증에 익숙하지 않은 태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연경 솔직히 말하면 내게 천안함 사건은 어제는 ‘핫’했지만 오늘은 관심이 조금 수그러든 사안이다. 중요한 문제를 두고 여기저기서 지속적인 보도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핑계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여전히 ‘핫’한 문제인데 증거들을 명확히 검증해주지 않는 정부의 태도가 아쉽다.
정다운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노력한 점이 문장에 배어 있었다. 그러나 길게 나열되는 화학식 등 과학적 이야기는 여전히 어렵다. (웃음) 하지만 의 소장 가치는 천안함 기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거짓말에 대한 꾸준한 증거가 돼줄 것이다.
사회·정리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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