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라는 폭설의 여파인가. 1월5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19기 독자편집위원회 두 번째 회의에 상당수 위원들이 지각을 했다.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투덜거림에 “지하철도 늦더라” 등 궁색한 변명이 이어졌지만, 위원들의 수세적인 자세는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송년호를 두고서도, 신년호를 두고서도, 레드 기획을 두고서도 공세적인 쓴소리가 이어졌다.
<한겨레21> 787~792호
‘사법 만능주의’ ‘이명박식 법치’ 함께 다뤘어야
사회 해가 바뀌어 그런지 더 오래만인 것 같아 반갑다. 오늘도 자유롭게 얘기를 시작해보자.
박준호 송년호부터 얘기해보고 싶다. ‘올해의 판결’을 2년 연속으로 송년호 표지이야기로 다뤘다. 판결이 국민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참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사법만능주의의 문제점도 함께 다뤘어야지 않나. 행정수도가 관습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보듯이, 사회·정치적으로 해결돼야 할 여러 사안들이 사법부로 가고 또 여기에서 황당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나.
박지숙 평소 웬만한 판결 기사는 그냥 넘기는 만큼,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획으로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런데 선정된 판결이 다 너무 당연한 것들 같더라. 우리가 그만큼 상식이 통용되기 어려운 사회에 산다는 얘기일 텐데,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이명박식 법치의 허와 실을 짚어주는 꼭지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K 비슷한 생각이다. 심사위원들도 당연한 판결이 올해의 판결에 선정된 게 아쉽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리고 ‘최악의 판결’도 선정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홈페이지에서 투표를 하는 등 독자 참여를 통한 판결 선정도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조금 보완을 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해줬으면 싶다.
나혜윤 대다수 언론에서 연말에 ‘올해의 인물’을 뽑는데 은 판결을 선정하는구나 싶어 관심 있게 읽었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더라. 독자 의견을 반영하면 더 좋은 기획이 될 것 같다.
박준호 계속 해나가면 좋을 것 같다. 다른 언론에서 하는 ‘올해의 인물’ ‘올해의 10대 사건’ 등은 좀 식상하잖나.
사회 독자 참여를 통한 판결 선정, 최악의 판결 선정 등은 좋은 지적인 것 같다. 다음 기획 때 참고하겠다. 다른 표지이야기에 대한 얘기도 해보자.
정유진 신년호 표지이야기 ‘아줌마의 힘’에서는 지방자치와 관련해 일본 사례를 주로 다뤘는데, 그에 앞서 우리의 현실을 먼저 진단하는 게 우선 아니었나. 많은 사람들이 동네에 뭐라도 들어서면 시장이나 국회의원을 칭찬하지만, 그런 외형적 발전이 없으면 시장·의원을 욕한다. 대다수 국민의 이런 심리도 짚어줬더라면 싶다.
박지숙 비슷한 생각이다. 일본의 좋은 사례를 주로 짚었는데, 결국엔 우리 얘기가 초점이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시민은 지방자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역 문제에 얼마나 관심 있는지, 중앙 정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뭔지 등 우리의 인식 수준을 먼저 다뤄야 했다.
진보언론 내부의 위기 제대로 안 다뤄나혜윤 경기 과천시 사례를 다루긴 했는데, 일본 이야기에 비해 너무 간략했다.
홍부일 집에서 엄마가 이 기사를 보더니 “나도 이런 아줌마들처럼 할 의사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실제 참여할 수 있는 장치나 방법이 소개됐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기사가 너무 길어 혼났다. 아무리 넘겨도 (기사 맨 끝에 있는) ‘21’이 안 나와 지치더라. (웃음)
박지숙 787호 ‘진보언론 길을 묻다’ 표지이야기도 아쉬웠다. 사실 진보언론의 위기는 이명박 정부 이전부터 진행돼왔던 것 아닌가. 그런데 기사는 현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만 다룰 뿐 시장의 위기, 진보언론 내부의 위기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또 보조기사로 유럽 진보매체의 수익 구조나 위기 탈출 노력 등은 자세히 다뤘던데, 우리나라의 사례는 없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박준호 ‘진보는 충분조건 아니다’라는 보조기사에서 각계 인사가 말하는 대안을 다뤘는데, 제각각 상반된 얘기도 섞여 있더라. 이런 식으로 정답이 없다는 혼란상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인가.
나혜윤 하기 어려운 자기 얘기를 꺼낸 것은 좋았는데, 정작 솔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두루뭉술하게 돌아간 느낌이랄까.
박지숙 너무 조심스레 얘기하는 게 확 느껴졌다.
사회 뭘 조심하는 것처럼 보였나.
박지숙 자기 밥그릇 얘기한다는 비판을 염려했는지, 보수신문들의 공격을 걱정했는지, 아무튼 여러 가지 것을 의식해 두루뭉술하게 마무리지은 느낌이었다. 언론시장의 왜곡이 사회 왜곡까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사회의 균형을 위해 언론의 균형이 왜 필요한지까지 전면적으로 다뤘어야 했다. 787~792호 가운데 제일 아쉬움이 많이 남는 표지이야기다.
사회 분위기가 자못 매섭다. 787호 ‘만리재에서’를 통해 발행 부수를 공개했는데, 어떻게 봤나.
나혜윤 당연히 올바른 행동이었다.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며 독자에게 함께 진실을 좇을 수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현실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고군분투라고나 할까.
홍부일 안 그래도 연도별 발행 부수 그래프를 보고 깜짝 놀랐다. 특히 하향 곡선을 그리는 민감한 자료를 공개하다니 정말 놀랐다.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다른 시사주간지는 얼마나 팔리는지 모르기에, 진보언론의 위기인지 전체적 시사주간지의 위기인지를 그래프를 통해 알 수는 없어 아쉬웠다.
제19기 독자편집위원회
발행 부수 공개 용기에 박수를
사회 다른 표지이야기들은 어땠나.
박준호 790호 ‘코펜하겐 자전거 대장정’ 기사는 재미가 있더라. 자전거 대장정이란 개인적 이야기를 통해,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식상하지 않게 다뤘다. 기사에 링크를 걸어 작은 상자기사를 여럿 배치한 것도 좋았다.
홍부일 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회의장 주변에 모였다는 수많은 환경운동가·청소년·기업가 등의 이야기가 부족해 아쉬웠다. 그리고 (기후변화 협약과 관련한) 한국 쪽 견해가 뭔지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지 않나. 한국 사람이 독자인데, 왜 가장 기본인 한국의 입장은 거의 안 다뤘는지 이상했다.
정유진 791호 레드 기획 ‘여배우의 약진, 왜 아무도 말 안 하지?’ 기사가 실망스러웠다. 몇몇 사람에게 원고를 부탁한 뒤 그냥 모아서 낸 것 아닌가. 내용도 일부 겹치고….
박지숙 나는 그 기사를 보며 ‘송년호다 보니 기자들이 많이 바빴나’라고 생각했다. (웃음)
박준호 그래도 하나씩 모은 이야기들이 재미있지 않았나.
나혜윤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골고루 섞인 것은 좋았는데, 좀 조잡하다는 느낌이랄까….
박지숙 같은 호 레드 가운데 오프더레코드(‘구설에 오른 명가’)는 괜찮았다. 경주 최씨 부잣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를 누가 미는 것 같은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경주 최씨 중앙종친회장이라니…, 깜짝 놀랐다.
정유진 맞다. 인터넷 포털에서는 이런 기사들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프로그램을 띄워주는 기사밖에 없다.
박준호 레드 기사 가운데 788호 엘리트 체육의 문제점을 환기한 글과 790호 월드컵 B조 3개국의 정치·사회·문화를 축구와 함께 다룬 것은 좋더라.
박지숙 월드컵 B조 이야기는 나도 좋았다.
홍부일 개인적으로 갈수록 레드가 실망스럽다. ‘여배우의 약진…’ 기사도 그렇지만 호랑이 이야기를 다룬 792호는 뭔가. 너무 토속적인, 잡다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 아닌가.
박지숙 첫 페이지의 호랑이 사진은 좋았다. 그런데 내용은 좀 그렇더라. (웃음) 차라리 호랑이와 관련한 한두 가지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여러 이야기를 얕은 수준에서 다룬 것 같았다.
K 예를 들어 1924년에 한국 호랑이가 자취를 감췄다면 이후의 복원 시도 노력 등을 다루든지 해야 하는데, 이야기가 더 진전되지를 않더라.
정유진 앞의 기사들이 딱딱한 만큼 부드러운 레드 기사를 좋아하는데, 호랑이를 다뤘을 때는 ‘이번호 레드는 별로구나’라며 넘기고 말았다.
박지숙 경제 기사 가운데서는 792호 ‘아이폰의 두 얼굴’을 재밌게 읽었다. 메기와 배스 비유도 좋았다. 아이폰을 좋게 쓴 기사가 많은데, 균형 있게 얘기해준 느낌이다.
나혜윤 나도 경제 관련 기사 가운데 제일 쉽게 이해하며 읽었다.
사회 이 새해 캠페인으로 ‘운동합시다’를 시작했다. 어떻게들 봤나.
나혜윤 평소 시민단체 참여를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기사를 보니 쉬운 것 같고 또 내 취향대로 할 수 있겠다 싶더라. ‘내게 맞는 시민단체 찾기’를 해보니 E타입이 나왔는데, E타입 해설 내용이 나랑 맞는 내용이어서 신기했다.
운동합시다 캠페인, 진보언론 위기 해법 될 수도정유진 나는 B타입이 나왔는데, 정말 맞는 것 같더라. 시민단체에 가입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실천은 못했는데, 나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에게 자극이 됐을 것 같다.
K ‘아름다운 동행’ 캠페인과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시민과 시민단체의 친밀성을 높여주는 이 기획이 ‘진보언론 길을 묻다’에서 다룬 진보언론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박지숙 시민단체 두 곳에 회비를 내는 중이다. 이 단체들에 참여할 때 조금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주변 친구나 가족이 나를 어떻게 볼지 주저가 되더라. 물론 말도 안 되는 편견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 분위기에 실제 그런 게 있지 않나. 이런 주저하는 마음까지 짚어주며 얘기를 풀어가면 좀더 설득력 있는 시리즈가 될 것 같다.
[기자소환제] 안수찬 사회팀장
“아카데미즘-저널리즘 융합한 리영희 선생이 롤모델”
개성적인 문체와 도발적인 문제제기성 기사로 적지 않은 열성 독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안수찬 기자(사회팀장)가 독자편집위원회라는 ‘도마’ 위에 올랐다. 19기 독편위의 첫 ‘소환 대상’이 된 안 기자는 특유의 달변으로 독편위원들의 ‘칼질’을 비켜나가며, ‘노동 OTL’ 시리즈와 리영희 선생 인터뷰 등의 뒷이야기를 풀어놨다.
박준호 어디서나 ‘갑’인 기자가 노동 OTL에서 ‘을’의 처지를 체험한 소감이 어떤가.
안수찬 기자의 노하우 가운데 하나가 사람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다. 정치인·기업인의 껍질을 벗겨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해왔는데, 노동 OTL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놀라고 실망했다. 서민들, 평범한 시민의 속내를 끌어내는 노하우는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하더라.
박지숙 시리즈 마지막회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인 ‘망치들의 언어로’를 읽고 많이 울었다. 고민한 흔적이 행간 사이사이 묻어나더라.
안수찬 ‘망치’한테서는 아직 연락이 없다. 기사를 못 봤는지….
나혜윤 마트가 아무래도 20대에게는 가장 가까운 모델이었다. 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 중인데, 동료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기사를 보여줬다. 다들 공감하면서도 가슴 아파하더라.
안수찬 사실 독자도 언론을 소비하는 기호에 길들여져 있다. 기사는 어때야 한다는 정형화된 기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 OTL 기사들은 그 틀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과거 언론이 현실의 진실을 제대로 못 보여줄 때 문학이 그 자리를 메워줬다. 작은 시민의 일상에 주목해 이것을 풀어가며 커다란 실체적 진실을 보여줬다. 그런데 지금은 문학도 그런 힘을 잃은 시대 아닌가. 얘기하자면 언론 암흑기에 문학이 담당했을 역할을 노동 OTL이 대신 해보이고 싶었다.
박지숙 리영희 선생님을 인터뷰했는데, 뒷이야기가 듣고 싶다.
안수찬 몸이 불편하시잖나. 인터뷰 중 자리를 옮길 때 부축하려고 했더니 뿌리치시더라. 고집이랄까, 꼿꼿함이랄까…. 사실 리영희 선생은 내 롤모델이기도 하다.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을 융합해 양쪽을 오가며 사회를 바라보고 비판하는 작업을 해오셨다.
박준호 안 그래도 안수찬 기자가 에 온 뒤 그런 기사들이 많아졌다. 뉴라이트나 보수, 칼 폴라니 기획 등이 아카데믹한 기획 아니었나. 반응은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것 같더라.
안수찬 그때그때 나오는 발언에 주목하는 게 저널리즘이라면, 그런 발언의 흐름이나 맥락을 짚는 게 아카데미즘 아니겠나. 개인적으로 그런 흐름과 맥락에서 발언을 읽는 기자가 되고 싶다. 물론 계몽주의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많이 조심하고 있다.
사회·정리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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