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18기 독자편집위원회 첫 회의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당한 문구는 없었다. 회의 시작 때는 어색함이 가득했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누가 그랬냐는 듯 말들이 쏟아졌다. 종종 논쟁이 과열돼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기자가 나서 “정리가 불가능하니 천천히 얘기해달라”고 당부해야만 했다. 저녁 7시에 시작된 회의는 밤 11시 가까이 돼서야 끝났다. 회의의 열기는 고스란히 뒤풀이 자리로도 이어져 밤 12시가 훌쩍 넘도록 이야기가 오갔다.
<한겨레21> 753~757
회의가 끝난 뒤 남은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연대감. 남궁성열 위원과 이오주은 위원은 다변으로 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며 ‘대표 논객’의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다음날 중간고사를 앞두고 시간을 낸 금천고 2학년 권순부 위원에게는 격려성 덕담이 쏟아졌다. 언론 쪽으로 취업을 고민 중인 박홍근 위원과 김승미 위원 사이에는 묘한 연대감이 흘렀으며, 연임에 성공한 최고라 위원과 공무원 신분상 어쩔 수 없이 사상 최초의 익명 독편위원이 된 K의 얼굴엔 ‘경력자’ 또는 ‘맏형’다운 넉넉한 웃음이 자리했다.
폴라니 이론의 논쟁점도 함께 소개했으면사회 753호에서 창간 15돌 기획으로 준비한 칼 폴라니 얘기부터 해보자.
남궁성열 포스트자본주의가 무엇이겠냐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데, 호혜와 공정 등의 개념이 Why Not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더라. 하지만 현실에서 공정무역이나 생협은 일반 상품보다 비싼 가격 등으로 인해 실제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오주은 내 경우엔 우석훈씨 책과 강연을 접하고 칼 폴라니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던 참이어서 반가웠다. 칼 폴라니가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닌 만큼, 가상 대화 방식의 기획을 통해 쉽게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것 같다. 다만 애널리스트와 폴라니 대화의 호흡이 너무 길어서 좀 지루해진 느낌이다.
K 사람들이 경제라고 해봤자 부동산·주식만 알지 않나. 나도 깊이 들어가다 보니 어렵고 해서 ‘무슨 얘기냐’며 그냥 넘겼다.
김승미 신자유주의 종말을 얘기하는데, 대안을 얘기하기에 앞서 지식인 엘리트 계층의 책임을 묻는 것이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그에 대한 설명 없이 또 다른 엘리트 지식인의 말을 빌려 공정과 호혜의 시대가 온다고 설명하니 거부감이 들더라.
박홍근 칼 폴라니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만큼 내용이 어려웠다는 지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폴라니가 뭐라고 했기에 15돌 기획 기사로 선정됐냐는 것과 우리나라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그런데 기사에서는 둘 다 부족했다. 마르크스·케인스·하이에크는 원저를 읽지 않아도 어떤 주장을 했는지 대략 알잖나. 그런데 폴라니의 경우는 그게 뭔지 모르겠더라. 탐욕을 경계하고 호혜나 공정무역? 이는 칼 폴라니 없이도 할 수 있는 말이잖나. 우리나라 현실에서 뭘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도 나와 있지 않다. 제목은 ‘자본주의 이후’라는데, 솔직히 김이 빠지더라.
최고라 폴라니를 너무 선택적으로 받아들인 듯 하다. 낭만적인 경제학, 착한 이론, 이런 생각이 떠오르던데, 폴라니 이론에서도 논쟁적인 부분이 있지 않겠나. 대담자로 나온 3명은 와 에서 익숙하게 보던 사람들인 만큼, 차라리 의견이 다른 사람을 한 명이라도 배치해 다양한 논의를 끌어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 비판적인 의견이 많은데,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완벽한 대안을 제시했다기보다는 논의의 실마리를 던져본 것 아닌가 한다. 이제 754호 ‘30대 여성 표적 실업’ 표지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이오주은 이런 얘기들이 나와줬으면 하고 생각했는데, 표지이야기로 다뤄줘 반가웠다. 그런데 명지대 행정조교 말고는 사례가 부족한 듯하다. 그리고 미혼은 빼고 기혼여성으로만 한정한 것 같아 아쉽더라. 사실 나도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데, 이 기사를 읽으면서 개인사가 아닌 사회적 현상의 여파라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됐고, 살아나기 위해 더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박홍근 표지이야기 기사 꼭지가 셋인데, ‘인턴만 호황’과 ‘MB식 일자리 대책’ 기사는 너무 일반적인 얘기여서 힘이 빠지더라. 이왕에 30대 여성 표적 실업으로 포커스를 맞췄다면, 시대별로 보든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좀더 여성에 집중해서 살폈으면 좋았겠다.
김승미 작은 점을 하나 지적하자면, 여성 취업률이 M자형 곡선을 그리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여성이 30대로 넘어가며 출산·양육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취업률이 낮아지는데, 기사 주제에 맞춰서 억지로 인용한 듯했다.
남궁성열 특집 ‘합리적 보수에 관한 보고서’를 재미있게 읽었다. 읽으면서 ‘합리적 보수가 어딨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그런 내용까지 담겨 있어 좋았다.
18기 독자편집위원
사회 좋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음에도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 대다수인 것 같다. 755호 얘기로 넘어가보자.
남궁성열 역대 최고 표지였다. 평소 표지에는 좀 어두운 게 많았는데, 김연아 선수가 활짝 웃는 사진이 나와서 좋았다. 스포츠 열기에 관한 양쪽의 의견을 모두 다뤄 재밌게 읽었다.
김승미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얘기를 굳이 양극단으로 나눠 얘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한다. 양쪽으로 나누기보다는 조금 중립적인 시각에서 다루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오주은 난 반대다. 더 무게 있게 다뤄야 했는데 좀 모자랐다. 2월 국회가 끝난 뒤 3월엔 미디어법이라든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스포츠에 대한 열광이 당시 그런 중요한 문제들의 처리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갔는지를 상세히 보여줘야 했다. 실제 정국 흐름에서 스포츠의 역할을 분석해야 했다.
김승미 왜 스포츠와 정치를 연관시켜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오주은 나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김연아를 응원했지만, 모든 방송이 그것만 내보내면 제한된 시간 동안 미디어를 접하는 일반인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고라 냉정과 열정으로 나눠놓으니 대립각으로 읽게 됐는데, 내가 보기엔 둘 다 스포츠에 과도한 국가주의를 씌우는 것에 대한 반대에서 출발하더라. 방향이 다를 뿐이지, 출발점은 같다.
박홍근 괴물 얘기가 좋았다. 이처럼 한국적 특수성에 대해 좀더 얘기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K 우리 사회에서는 스포츠 말고 다방면에서 괴물이 많이 나온다. (일동 웃음) 이슈추적 ‘은밀하고 노골적인 접대의 속살’은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더라.
사회 내가 제목을 달았는데 (일동 웃음) 주간지 특성을 살리자면 다소 ‘섹시한’ 제목도 필요하다고 봤다.
이오주은 특집 ‘용산은 망루 쌓을 건물 찾는 중’ 기사가 반갑더라.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용산에 초고층 건물이 계속해서 들어설 계획인데, 경관이나 주거환경, 빈부 격차 등 많은 문제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기대한다.
남궁성열 756호 ‘굿바이 노무현’ 기사를 보고 열받았다. 당시 기사가 쓰일 시점에는 피의자가 아니었다. 권양숙씨가 돈을 받았다고 한 시점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도 확실하지 않았고 수사가 진행 중이었잖나. ‘만리재에서’ 칼럼에서 편집장은 ‘에 인권이란 선물을 주고 싶다’고 말하던데, ‘노무현 개인의 인권은 어디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오주은 나도 좀 실망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거나 그 아들들이 구속됐다. 대통령을 그만두고 나면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관례가 됐다. 다루더라도 예우는 갖춰야 하는데 선호하는 리더십 1위에서 어떻게 됐다는 둥 전직 대통령이 몰락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좀 선정적으로 다뤘다.
박홍근 인권을 추락시켰다거나, 예우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직은 확실히 밝혀지기 전이잖냐고 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먼저 죄송하다면서 박연차 회장과의 관계를 일부 밝힌 다음이다. 그러면 충분히 언론에서 다룰 수 있는 것 아닌가. ‘만리재에서’는 ‘해당 언론사의 인권’을 다뤘는데, 글 자체는 좋았지만 모순된 느낌이 들더라. 공인이면 실명을 공개할 수 있다라는 논지를 한창 펴더니 실제 그 글에서는 를 적시하지는 않더라.
상식적으로 말 안되는 일 자주 일어나최고라 757호는 레드 ‘지지리 궁상은 혁명이다’가 압권이었다. 레드만의 발랄하면서도 뭔가 꿰뚫어보는 시각이 살아 있더라. 블로그에도 많이 퍼올려져 있더라.
K 베스트셀러 마케팅을 다룬 ‘베스트셀러 워스트리더’를 보면서, 책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들도 기획사가 붙어 매상을 올려주는 게 많은데 같이 다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오주은 표지이야기에서 촛불이 진군한다는 것은 좋았지만 4·29 재보선 뒤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한다.
남궁성열 동감한다. 경기도교육감 선거 결과가 굉장히 고무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주변에서도 촛불이 의회로 진군한다는 얘기는 4·29 뒤에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들 하더라.
K 불온도서 지정에 대해 헌법소원한 군법무관 징계와 관련해 탄원서를 낸 변호사들을 다룬 기사가 가슴에 와닿았다. 보편적 상식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어느 조직에서나 조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데, 현 정부 들어서는 그런 노력을 못하게 한다. 군이 대표적이다. 결국 자체적인 노력을 기대할 수 없다면 외부에서라도 최대한 압박을 가해야 한다.
사회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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