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루판 유물도 FTA 거짓말도 건강정보 속임수도 일러바쳐준 …부드러운 공연·문학·트렌드 기사에서도 그 날카로운 감각 유지해주길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짧디짧은 설 연휴를 막 마친 2월20일 저녁, 독편위원들은 저마다 복을 한 아름 안고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일찌감치 일상으로 돌아온 위원의 여유와 이제 막 상경한 위원의 분주함이 엇갈렸다. 이번 회의에는 11, 12기 선배 위원들도 참석해 13기 위원들과 함께했다. 645호부터 설 특대호인 648호까지 네 권의 모니터링 회의는 이렇게 시작됐다.
장일호: 645호 표지이야기인 ‘제3의 니혼 웨이브’는 워낙 일본 소설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재밌게 읽었지만 뭔가 한 박자 늦은 느낌의 기획이었다.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일본 소설 열풍에 대해서는 개략적인 소개로 그치고, 그 열풍의 이면에 숨은 문제점과 더불어 한국 출판계와 독자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담았으면 어땠을까.
김영경: 그러나 모르는 사람도 아직 많고 한류만 대단한 줄 아는 경향이 있는데 문학계에 불고 있는 일본의 강세를 짚은 것은 적절했다.
신기수: 현황 소개에 머무르는 감은 있지만 34쪽의 ‘토론에서 소설이 태어난다’ 기사가 참 좋았다. 고단샤의 예에서 보면 일본은 문학조차도 작가와 출판사가 사전회의를 통해 만들어간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부럽다. 이런 주제로 국내 출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얘기했다면 좋았겠다. 어쨌든 신선했다.
조성웅: 한국 문학의 위기가 ‘기획성의 부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획회의가 한국 문학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신기수: 라이프 & 트렌드에서 남자들을 위한 패션을 제안해줘 반가웠다. 패션이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풍토를 깼으면 좋겠다. 그런데 생경한 단어가 많았다.
조성웅: ‘참치 다다키를 넣은 루콜라 샌드위치’ ‘블랙빈 소스의 펜네를 넣은 오징어 먹물빵’ ‘니트를 아주 벌키하게 짜서 압둘라의 것처럼 불륨감 있게 만든 것’ 등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가 많았다.
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훑어주는 센스
홍선표: 사람과 사회 ‘세 차례 성폭행, 기억 안 난다?’는 성폭행 장면 묘사에 너무 치중한 듯하다. 이럴 필요가 있었나. 석궁 사건을 다룬 ‘항소기각은 사형선고였다’의 경우에도 김명호 교수를 너무 옹호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쏘기 위해서, 최소한 위협을 하기 위해서 석궁을 가져갔을 텐데 그 점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
장일호: 사법부 앞에서 김명호 교수가 약자 아닌가. 기본적으로 그 편에 서는 것이 맞다고는 생각한다.
이윤주:김명호 교수에 대해 마녀사냥식 보도로 몰고 가는 상황에서 석궁을 쏘게 된 원인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기사가 나온 것 같다.
신기수: 646호 표지이야기 ‘너희가 건강정보를 믿느냐’는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잘못된 건강정보에 대한 지적이 시의성 있어 보인다. 하지만 다양하게 문제를 다루었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장황한 느낌이 있다.
장일호: 표지이야기 전체의 구성이나 접근이 좋았다. 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훑어준 건강관리의 사소한 대책들도 유익했다. 건강정보에 대한 사회적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책임과 더불어 ‘소비자 주체성’을 촉구하는 결론은 무자비하게 제공되는 건강정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줬다.
홍선표: 특집2 ‘기획하는 그대, 세상을 다 바꿔라’가 개인적인 관심 때문인지 좋았다. 기획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던 사례를 좀더 들어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신기수: ‘빼빼로데이’ ‘우행시’ 등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통찰력 있는 기획의 파급력에 대해 언급한 점이 돋보인다. ‘기획형 인간이 되는 법’을 주제로 한 실무지침 코너와 기획 관련 도서 사진을 통해 바로 실천해볼 수 있도록 했다.
장일호: 굳이 기획형 인간이 되기를 바라지 않더라도 사회생활 전반에 필요한 조언이었다.
홍선표: 문화면에서 인터넷 악플과 여성 연예인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악플을 양산해내는 언론에 대해 지적한 점이 좋았다. 악플을 다는 네티즌보다 악플을 권하는 언론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댐으로써 의미가 있었다.
장일호: 647호 ‘한-미 FTA, 6개의 거짓말’은 무거운 주제였지만, 재치 넘치는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 기사가 뜸해 섭섭했는데, 거짓말이라는 이름으로 조목조목 따진 여섯 개의 쟁점을 살피니 뭐가 문제인지 한눈에 보였다.
이번엔 이음아트를 찾아야겠네
김영경: 한동안 토요일마다 이음아트를 찾았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연극을 보다’라는 기사가 반가웠다. 작지만 아름다운 사회 구석구석의 얘기를 많이 발굴해주길 바란다.
장일호: 지난번 700원짜리 미술관에 이어 이번엔 이음아트를 찾아가야겠다.
이윤주: 공연 기사도 그렇고 요새 공연 리뷰 기사가 칭찬 일색이 아닌가 싶다.
신기수: 파워 리뷰어를 다룬 라이프 & 트렌드 기사가 재밌었다. 경제 주간지가 아닌 시사 주간지에서 다루는 이런 기사들이 반갑다. 제품 리뷰어 사이트라는 소재도 재미있고 유익했다.
장일호: 이슈추적을 읽으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매일 쓰게 되는 돈에 대해 내가 참 무심했구나 싶었다. 지폐 디자인에 그렇게나 많은 사회적·정치적 함의가 숨어 있는 줄 몰랐다.
신기수: 647호는 칼럼이 전부 멋졌다. 강준만의 칼럼은 이문열이 ‘상류 지식인’으로 자신을 설정하고, ‘하류’의 비판에 대해 전혀 소통하려는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이문열뿐 아니라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이런 인사들이 있다고 말했는데, 날카롭고 적절한 지적이다.
홍선표: 648호 표지이야기 ‘투루판 석굴이 용산에 묻는다’는 우리가 늘 피해자인 것처럼 다뤄졌는데 그 반대로 돌려보는 시도가 좋았다.
김영경: 기사의 마지막에서 길윤형 기자의 ‘우리가 먼저 시작할 수는 없을까’라는 글귀가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부끄러운 한국을 탐사하다’라는 이번호 제목처럼 기사를 읽고 과연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부끄러운 독일·러시아·영국·일본을 탐사하다’가 맞지 않을지.
장일호: 가 과하게 애국심을 조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기사량에 비해 부끄러운 한국이 덜 강조되고 내용이 지엽적으로 나가지 않았나. 서북공정을 통해 주권을 강탈당한 웨이우얼의 아픔과 그 배경도 주목했더라면 좋았겠다.
이윤주:표지이야기가 양이 많은데 서로 중첩되는 내용도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접하는 소식이다 보니 정리가 잘 안 되는 느낌도 있다.
‘파란 거탑’이 느낌을 제대로 살렸네
홍선표: 특집 ‘쪼개지면 죽는다, 파란 거탑의 불안’에서 제목의 ‘파란 거탑’이란 표현이 적절했다. 드라마에서 조직 내 권력암투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런데 언론에서 늘 이명박-박근혜 둘의 구도로 얘기를 하니 다른 가능성이 묻히는 듯하다.
장일호: 이렇게 특집으로 다루면 사람들은 그것이 대세라고 생각하고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게 돼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아쉽다.
이윤주: 정치 기사다 보니 주관적인 분석이 많지 않겠나. 대선주자를 보는 ‘~카더라’ 식의 이야기로 팩트가 조금 부족해 보이는 기사를 계속해서 양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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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나자 묵묵히 13기 위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11·12기 선배들이 입을 열었다. 후배 위원들에게 거는 묵직한 기대에서 을 향한 애착이 배어났다.
최수근(11기):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을 계속 보고 있다. 독편위원을 하면서도 그렇고 지금도 비판적 시각에 항상 목말라하고 있다. 독편위는 총론적으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독자의 시각으로 비판을 쏟아낼 수 있는 자리이다. 하지만 각론적으로 기사 방향이 아니라 제목이나 기사 문구의 부족함과 같은 소소한 부분만을 지적하는 것에 그친다면 아쉽다.
최영선(11기): 독편위가 단순히 기사에 대한 모니터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편집 방향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더 적극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어떤 기사들은 막을 내려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면 거침없이 말하라. 기사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내용을 다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개선해나갔으면 한다.
한윤기(11·12기): 고등학교 때부터 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잡지가 아니라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극단에 선 무엇이라고. 기자들의 색깔도 분명하고 개성이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엔 외부 필진 의존도가 높아지고 색깔이 희석되면서 그냥 재미있는 잡지라는 느낌이다. 지금 와서는 성격이 오히려 더 편안해지지 않았나 싶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용감한 로 남아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주변에선 점점 더 을 편하게 생각하는데 나로서는 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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