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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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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액션 ‘진수성찬’

등록 2003-08-21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size="2" color="red">영화에 관한 상식을 뒤업는 일본 영화의 발견… 액션영화의 진정한 기원을 찾으며 더위를 날린다 </font>

<table><tr><td bgcolor="F6f6f6"><font size="2">‘시네필, 부활을 외쳐라.’ 2003 광주국제영화제(www.giff.or.kr)가 충장로 극장가를 비롯 광주시 일대에서 8월22~31일 열흘동안 영화팬들을 손짓한다. 장·단편 모두 100여편이 상영되는 이번 영화제는 주류 상업 영화의 홍수 속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찾아주겠다며 벼르고 있다. 기존 1·2회의 중심축이었던 ‘월드 시네마 베스트’ ‘영 시네마 섹션’을 비롯해 올해엔 처음으로 ‘논픽션 시네마’섹션을 마련해 실험영화·다큐멘터리를 선보인다. 서부영화의 A~Z를 보여준 ‘존 포드 회고전’을 비롯해 올해 타계한 포르투갈 감독 ‘조앙 세자르 몬테이로 회고전’ 등 특별전도 풍성하다. 이 가운데 1960~70년대 일본 영화전성시대를 이끈 일본 액션 걸작선을 집중 소개한다. 아시아의 액션물을 선도하는 장르적 의미를 더듬어보는 것과 동시에 특별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10편의 작품이 올려진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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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초부터 영화의 역사를 몸소 겪지 않은 이상 누구한테나 영화 보기는 결국 시대를 거슬러오르는 방식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발견’의 체험으로서 일종의 고고학이다. 우리에게 1990년대 초반까지 수입이 금지됐던 일본 영화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기타노 다케시의 를 처음 보았을 때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내게 그건 전혀 새로운 영화였다. 하지만 그는 그보다 앞선 작품인 에서 이미 한 정점에 도달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기껏 음성적인 경로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흑백 고전이나 몇편 구경한 데 불과한 내 눈에 그것은 중간 단계를 통째 생략한 엄청난 도약이었다.

광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나는 일본액션의 고전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일본은 세계에서 할리우드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장르 영화를 다양하게 발달시킨 나라라는 점이었다. 그쪽 학자들이 사용하는 명칭 자체부터가 해괴할 지경으로 다양했다. 죄를 짓고 피해다니는 고독한 떠돌이 사내 이야기는 ‘방랑물’, 메이지 시대 예인(藝人)들 이야기는 ‘예도물’, 특수촬영 기술을 이용한 영화는 ‘특촬물’, 저예산으로 만든 에로물은 ‘핑크 영화’, 연인의 정사(情死)를 다루었으면 ‘동반자살물’,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는 장면이 들어가면 ‘대량사(大量死) 영화’…. 그 종류는 오즈 야스지로의 서민극, 미조구치 겐지의 시대극, 구로사와 아키라의 사무라이 영화 들을 제외하고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그 모두가 장르 명칭이라는 사실 자체였다. 장르란 일정 규모의 관객층이 형성돼 반복적인 재투자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비로소 생기는 것임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장르가 액션물이었다.

여기서 두드러졌다는 것은 일본 안에서의 현상뿐 아니라 다른 나라 영화들에 끼친 영향까지 두루 고려한 표현이다. 국적 불문하고 가장 잘 먹히는 장르란 어쨌거나 액션물의 차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일본 액션물에 그만큼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장철의 외팔이 영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게 박노식이 주연인 국산 외팔이 영화는 물론 모든 외팔이 영화들의 기원인 줄로만 알았다. 한데 야마나카 사다오의 라는 영화에서 애꾸눈에 외팔이 사무라이가 나와 일대 다수의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을 보고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 영화의 제작연도는 1935년이었다. 호금전의 는 제목 그대로 여자 협객 이야기다. 그의 첫 장편인 도 결국은 여협 금연자 이야기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대 일본에는 이미 ‘붉은 모란’이라는 별명의 걸출한 여자 협객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시리즈의 주연을 맡은 후지 준코는 쉬펑이나 정패패보다 훨씬 더 멋지고 매력적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우리가 보았던 명장면은 일본에 있었다

한때 주윤발이 색안경을 끼고 나와 이쑤시개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무용하듯 쌍권총 솜씨를 자랑하는 홍콩 누아르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떻게 저런 캐릭터를 창안해내었을까, 그저 감탄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스즈키 세이준의 에서 시시도 조가 연기한 킬러 하나다를 보고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진리임과 아울러 새삼 일본 영화의 저력과 영향력에 대해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을 참조하거나 베낀 것으로 따지면 할리우드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그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좋다. 올해 광주국제영화제의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일본액션영화전에서 상영되는 60, 70년대 일본 액션 영화 10편이 더없이 훌륭한 길잡이 노릇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주옥같은 명편들이다.

장르가 발달했다는 것은 스튜디오 시스템이 발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할리우드가 그 좋은 사례다. 일본의 액션 영화들도 스튜디오 시스템을 통해 양산되었다. 이번에 상영되는 영화들은 닛카쓰산과 도에이산으로 양분된다. 굳이 가르자면 닛카쓰는 액션, 도에이는 의협이지만 성격은 작품마다 천차만별이다. 감독이 모두 달라서만이 아니다. 평범한 작품이 아닌 탓이다. 이렇듯 프로그램이 십인십색이라면 일단 배우를 중심으로 살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닛카쓰산으로 (1964)은 ‘태양족 영화’의 대명사 이시하라 유지로가 나오는 ‘감상적인’ 형사물이고, 은 공히 두툼한 양 볼과 반항적인 눈매로 한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배우 시시도 조가 나오는 킬러 이야기다. 하지만 그 결이 전부 달라 매우 흥미롭다. 은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멜랑콜리한 킬러 이야기로 여기에도 시시도 조가 나온다. 이번에는 조연이지만 머리가 희끗하니 영락한 킬러 노릇을 하다 허망하게 죽어 충격을 준다. 놀라운 것은 이 네편 모두가 67년 한해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가히 시시도 조의 해였다.

끝내주는 납량특집이 관객을 기다린다

이들에 비해 70년작인 는 권태로운 일상을 견디다 못한 일단의 젊은이들이 은행의 현금수송 차량을 털다 전원 몰사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로 액션이라기보다는 청춘 영화의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대단히 특이한 사례다. 도에이산으로 (1969)와 (1970)은 앞서 언급했던 배우 후지 준코가 발군의 무예를 갖춘 정의로운 여자 협객으로 나오는 ‘붉은 모란’ 시리즈물의 제3작과 제6작이다. 액션만이 아니라 가토 다이 감독 특유의 양식미가 너무도 아름다운 작품들로 필견의 추천 대상이다. 은 우리에겐 로 알려진 후카사쿠 긴지의 무지막지하리만큼 역동적이고 다큐멘터리적인 연출 스타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일명 ‘실록 액션’물에 속하는 야쿠자 영화의 역작이며, (1978)는 한 중학교 교사가 사제 원자폭탄으로 일본 정부를 위협한다는 기상천외한 소재의 이야기로 일본인들이 시달리는 원폭 콤플렉스의 일단을 극명하게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에 값하는 작품이다.

김정수 | 소설가·영화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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