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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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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 포기’가 ‘정권의 골병’ 되지 않으려면

야당 ‘방탄 프레임’ 공세 비켜 온 ‘분리 대응’ 전략 흔들… ‘시민 위한 검찰·사법 개혁’ 실천적으로 입증해야
등록 2025-11-13 22:18 수정 2025-11-14 13:18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1월1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시장·군수·구청장 초청 국정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1월1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시장·군수·구청장 초청 국정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사법리스크’ 문제로 여러 해 동안 정치적 곤경을 겪었다. 대장동 사건은 그중 가장 치명적이라고 할 만하다. 검찰은 2023년 9월 이 사건 의혹을 포함한 혐의로 이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처리됐지만, 구속영장은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이후 사법리스크에 기반한 정치적 공격은 다소 힘을 잃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세력은 사법리스크 관련 이슈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그것은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당이 벗어날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악마화해 우리 편을 단결시키는 방식’의 정치를 선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권이 각 고비에서 적절히 공세를 차단했기 때문에 야당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다.

항소 포기는 공든 탑 무너진 사건

 

가령 검찰개혁은 ‘보복’으로 포장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재명 정권은 이 문제를 대통령실과 여당이 분리 대응하는 방식으로 피해갔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중심이 돼 강경론을 펴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이를 만류하면서 온건한 방식을 취하려 한 게 대표적이다. 이 문제로 대통령실과 여당은 몇 차례 충돌하기도 했다.

사법개혁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사법개혁의 당위를 사법부가 윤석열을 필두로 한 이른바 내란세력에 온건한 자세를 취한다는 점,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재판 등을 악의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사실 등에서 찾았다. 정파적 시선으로 보면 이는 ‘상대편엔 이익을, 우리 편엔 불이익을 준다’는 주장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우리 편’의 정점에 이 대통령이 있다는 점에서 ‘방탄’ 프레임을 덧대기 딱 좋은 소재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 문제를 두고도 여당과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특히 여당의 재판중지법 추진을 직접 만류한 것은 방탄 프레임을 결정적으로 무력화했다.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1심 판결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는 집권세력 입장에서 보면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진 사건이다. 이전까지 형성해온 ‘방탄과는 관계없다’는 정치적 맥락이 뒤집히는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파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런 얘기다. 대장동 민간업자들에 대한 1심 판결은 이해충돌방지법, 뇌물 등 혐의를 무죄로 보고 검찰이 요구한 추징 규모도 크게 줄였다. 특히 최근 검찰에 불리한 진술을 내놓은 남욱 변호사 등의 수익은 추징 대상에서 제외됐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 뇌물 등 혐의로 따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에게 주기로 약속했다는 428억원은 뇌물이 아닌 배임에 따른 범죄 수익으로만 봤다. 이를 통해 김만배씨가 ‘이재명 대통령 몫’을 약속했다는 유동규 전 본부장의 주장은 배척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 의해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으므로, 2심에선 이런 사실관계를 다시 다투기 어렵게 됐다. 형사소송법상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검찰의 항소 포기가 이재명 대통령 ‘방탄’의 맥락에서 촉발됐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항소 포기가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의식한 권력 작용의 결과라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둘러싼 여당의 대응 역시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기계적 항소를 자제하라”는 언급 역시 약자들의 억울한 사연에 대한 게 아니라 자신의 혐의에 대한 방탄을 시사한 것이다.

‘검사징계법’, 집권세력 결집용 한계

 

보수세력 주장의 종착점에는 여당이 추진하는 배임죄 폐지가 있다. 여당은 배임죄 폐지를 경제 관련 사안으로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이재명 대통령 혐의의 면소 판결을 노린 방탄의 일환이라는 거다. 항소 포기는 이런 식으로, 이전의 모든 사건을 사법리스크 맥락으로 재정렬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원론적으로 항소 여부는 검찰이 결정할 문제다. 그렇다면 사의를 표명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왜 항소하지 않도록 한 것일까? 보수세력은 정성호 장관, 나아가서는 용산의 압력이 있었다고 본다. 야당 입장에선 그런 의심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정성호 장관의 ‘신중히 판단하라’는 뜻이 전달됐을 때 노만석 전 대행이 항소가 정말 필요하다고 봤다면 “차라리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으면 될 일이었다. 용산 외압설도 마찬가지다. 앞서 보았듯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정치적 피해를 보게 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다. 이런 일을 굳이 자초했을까?

해명을 요구하는 검사들을 상대로 노만석 전 대행이 했다는 설명을 볼 때 적어도 그 자신의 정무적 판단이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앞서 봤듯 집권세력 내에는 검찰개혁을 둘러싼 강경론과 온건론의 대립이 있다.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이다. 윤석열 정권에서 있었던 일로 검찰은 완전히 코너에 몰려 있다. 검찰개혁의 큰 방향은 가닥이 잡혔지만 보완수사권 등 세부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온건파와의 극한 대립은 ‘자폭’에 가까운 선택이다. “기계적 항소를 지양하라”는 개혁적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연출하고 수사 관련 권한을 가질 자격이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방식을 취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노만석 전 대행이 “용산·법무부와의 관계를 생각해야 했다” 등을 언급했다는 것은 이런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검사의 시각에서 보면 비겁한 처신이다.

모든 논란이 완전히 해소되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모든 이슈가 사법리스크와 방탄 논란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는 거다. 여당은 일단 ‘반검찰 전선’을 형성해 지지층에 ‘할 말’을 만들어주고 집단 반발 양상을 보이는 검찰 조직에 찬물을 끼얹는 전략을 선택했다. 검사징계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해 검사 역시 다른 공무원과 동일한 방법으로 파면 등 징계를 받도록 하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이는 집권세력 결집용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앞서 방탄 프레임의 논법으로 보면 여당의 대응은 ‘정권을 위협하는 검찰을 혼내준다’는 식으로 읽힐 것이다. 방탄 프레임이 강화되는 것이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이런 식으로 틀어막고 갈 수도 있겠지만, 정권 중반부를 넘어가면 이 문제는 결국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집권세력 전체가 골병이 드는 이슈라는 것이다.

여당은 미래 대응 제대로 하고 있는가

 

결국 난관을 돌파하려면 방탄을 의도하지 않는다는 걸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검사징계법 논의는 검찰 조직의 집단 반발에 대한 대응이 아닌,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등 검찰이 잘못해 일반 시민이 피해를 입은 사례를 근거로 진행해야 한다. 배임죄 폐지 역시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유력 인사들의 재판에 영향이 없도록 하는 방식의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개혁은 복수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제도 개선의 맥락에서 충실히 진행됨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여당은 그렇게 하고 있는가? 최소한 오늘은 아닌 것 같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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