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에 한때 역술인 행정관이 근무한 사실이 확인됐다. 윤 대통령이 건진·천공 등의 역술가에게 조언을 듣는 것을 넘어 아예 역술인을 대통령실 내부 직원으로 채용해 국정 운영을 보좌하도록 한 것이다.
2025년 1월14일 한겨레21 취재와 제보를 종합하면, 명리학자 김아무개씨는 2024년 하반기에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3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채용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꼽혔던 정호성 비서관이 이끌고 있는 3비서관실은 홈페이지 민원 관리, 종교계와의 소통 등을 담당한다. 여기서 김씨는 공식적으로 ‘소수종교’를 담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현재는 대통령실을 그만둔 것으로 파악된다.
김씨는 명리학을 공부한 역술 전문가다. 그는 사주명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사주적성상담사이자 명리심리상담사로서 명리학과 관련한 책을 출판했고, ‘명리학으로 알아보는 내 아이의 진로와 적성’과 같은 강연도 해왔다.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역술로 꽤 알려진 김씨는 ㅎ역학연구소라는 곳의 소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ㅎ연구소는 김씨의 이력에만 적혀있을 뿐 법인 등기도 확인되지 않고,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도 되지 않는 곳이다.
대통령실에 역술인이 왜 필요했을까? 이와 관련 김씨가 대통령실 직원들의 사주, 그리고 대통령 부부와의 궁합을 봤다는 증언이 나왔다. 신용한 전 윤석열 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은 한겨레21에 “김씨가 공식적으로는 소수종교 담당이지만, 부가적으로 대통령실에 근무하는 직원, 새로 채용하는 직원들의 사주를 보고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궁합이 맞는지 확인을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역술인으로서 윤 대통령의 중요한 정치 일정을 잡는 데 조언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충청북도에서 활동하는 한 역술인은 한겨레21에 “대통령실이 굿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일들을 추진했던 것으로 안다”며 “무속 관련된 일을 하려면 명리학 등을 공부해서 ‘택일력’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택일력은 그 사람의 사주팔자에 따라 언제 중요한 이벤트를 해야하는지, 어느 날을 피해야 하는 지 알도록 하는 것이다. 김씨가 국정의 중요한 행사 날짜를 정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대구·경북 지역 정계에서 활동하며 중앙 정치권과 연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제18대와 제19대 대구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의 보좌진으로 근무했고, 대구 동구청 정무비서, 대구의 한 구의회 정책지원관 등으로 일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밖에도 2018~2019년 대구 지역 ㅅ여론조사업체의 사내이사를 맡기도 한 사실이 확인됐다. 김씨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대통령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게 맞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아니다. (대통령실을) 떠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통령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등의 추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 부부 주변에서는 ‘무속’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건진, 천공, 무정 등 수많은 도사들이 입길에 오르내렸다. 윤 대통령과 무속의 인연은 30년이 넘어간다. 김건희 여사는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 한 ‘7시간 통화’에서, 무속인 무정스님을 윤 대통령이 20대 때부터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무정스님을 전적으로 믿어서 ‘사법고시 3년만 더 하라’는 말을 따랐고, ‘너는 검사 팔자’라는 말도 들어 검사가 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를 소개해준 것이 무정스님이었고, 그 인연으로 둘이 결혼하게 됐다고도 말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는 직접 윤 대통령의 캠프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씨는 2022년 1월 아예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조직인 ‘네트워크본부’에서 고문으로 사실상 상주하며 인재영입, 주요 의사결정 등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공천을 대가로 예비후보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25년 1월10일 검찰에 기소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멘토’ 천공의 말을 듣고 국정을 운영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조문 불참은 천공이 직접 윤 대통령에게 조언했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대통령실 용산 이전, 영일만 석유 매장 가능성 발표 등은 윤 대통령이 이런 조처를 발표하기 전 천공의 유튜브에서 먼저 이야기가 나왔다는 의혹도 나왔다. 윤 대통령이 천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2021년 대선 티브이 토론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2021년 10월 국민의힘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 윤 후보는 유승민 당시 후보에게 천공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정법’(천공)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정법 유튜브를 보라. 정법은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정법에게 미신이라고 하면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다”며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 부부가 천공을 따로 찾아가 만났다는 사실도 이날 밝혔다.
이밖에도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0월 ‘王’(왕)을 손바닥에 새긴 채 국민의힘 5차 대선후보 경선토론회에 참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한 김 여사는 2006~2008년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재학 시절 사주와 관련된 논문을 3편이나 썼다.
김 여사와 윤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에 처할 때마다 거취 등에 대한 조언을 명리학자 류아무개씨에게 구했다는 류씨의 당사자 진술도 앞선 2024년 11월 한겨레21 보도로 확인된 바 있다. 당시 보도에서 김 여사는 ‘명품백 수수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자신의 사법 리스크가 잇따라 터진 2023년 12월 류씨에게 연락해 “저 감옥 가나요?”라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대통령이 무속을 근거로 인사 채용을 했을 것이라는 상상이 이번에 제보와 증거를 통해 드러났다”며 “이런 정부를 문명사회 국가의 정상 정부라 칭할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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