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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탄핵’ ‘헌재 폐지’ 말하는 야만적 보수…어떤 민주주의 질문할 때

직무정지 대통령·보수 여당의 초현실적 헌정 유린 … ‘비극의 반복’ 막을 절박한 과제 보여줘
등록 2025-01-10 19:58 수정 2025-01-12 12:26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4선 이상 중진 의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025년 1월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한 것과 관련해 항의 방문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4선 이상 중진 의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025년 1월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한 것과 관련해 항의 방문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상상해보자. 영화나 드라마라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는 순간 곧 스태프 롤을 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영장은 집행되고, 주인공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극은 끝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스크린보다 극적이다. 영장이 발부됐는데 현직 대통령이 감제고지의 요새에 틀어박혀 수사기관을 상대로 농성전을 벌이는 시나리오를 감히 구상한 작가는 지금까지 없었다.

이 판타지에 가까운 사태에 수사기관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2025년 1월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법원이 내준 체포영장의 1차 집행에 실패했다. 공수처의 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숫자에서 밀렸다’는 거다. 경호처가 약 200명의 인원을 동원해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할 줄 몰랐고, 거기에 물리적으로 대응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상식을 무너뜨리는 활극

이는 공수처의 준비가 다소 미흡했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체포영장 집행 전날 윤석열 대통령 쪽은 경찰기동대가 공수처의 영장 집행에 조력하는 경우 “직권남용 및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으로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건 수사기관에 대한, 물리적 충돌을 감수하는 극단적 저항을 ‘체포’로 포장하려는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 경호처 내에 ‘케이블타이’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일반 사병까지 ‘인간 방패’ 구성에 동원된 정황을 잡고 있다. 단지 직무가 정지됐을 뿐인 이 나라 최고 권력자는, 봐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공수처가 끈기 있게 더 밀어붙였어야 한다거나, 애초에 자신이 없었으면 검경에 사건 이첩을 요구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공수처가 2차 영장 집행 시도를 경찰에 일임하겠다고 했다가 법적 문제가 있다는 반박에 ‘하던 대로 하자’고 결론 내린 건 코미디를 보는 거 같다. 무능인가, 무기력인가?

그러나 이런 지적을 하면서도 윤석열 대통령 쪽의 야만에 가까운 행태를 동시에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최고 권력자가 작정하고 이렇게 나오면 어떤 수사기관이 나서더라도 체포는 극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원의 영장 발부엔 헌법적 근거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영장 집행에 불응하는 것은 헌정 질서 유린이다. 현직 대통령이 이러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대통령 권한대행의 최우선 임무는 헌정 질서 유지다. 따라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경호처에 체포영장 집행의 협조를 주문해달라는 수사기관의 요청을 당연히 받아들였어야 한다. 그런데 최 대행은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기 위해 경호 인력을 보강하도록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해달라는 경호처의 요구를 수용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조차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데 발을 맞춘 것이다.

김기현 의원(가운데)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2025년 1월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앞에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의원(가운데)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2025년 1월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앞에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 대행이 이러는 것은 여당의 정파적 요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회가 선출한 3명의 헌법재판관 중 억지 논리로 1명을 빼고 나머지 2명을 임명했다는 이유로 국무위원들이 들고일어난 사태를 보라. 여당은 한술 더 뜬다. 체포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45명의 현역 의원이 관저 앞으로 달려가는 판국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경제만 챙기겠다’는 식의 기회주의적 행보가 이어지는 이유가 나름 있는 셈이다.

 

반국가 행위 일삼는 법조 출신들

평론가들은 이러다 국민의힘이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우려는 여당 내에서도 나온다. 관저 앞 45명 결사대의 계산도 나중에 ‘그 어려웠던 시절 우리 팀 방어를 위해 몸을 던졌다’는 서사를 활용하기 위한 거다.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에서나 먹히는 계산이다. 중도에서의 득표력이 중요한 수도권 지역 기반의 인사들은 ‘중도가 다 넘어가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한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먹히는 분위기는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 와중에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을 부결시켰다. 이탈표는 6표, 4표에 불과했다. 특검은 물론, 이전에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도 찬성 입장을 밝힌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권성동 원내대표로부터 탈당 압박을 받았다.

국민의힘은 아예 탄핵을 부정하는 데까지 갈 태세다. ‘사기탄핵’을 말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국회 탄핵소추단이 내란죄 판단을 두고 다투지 않기로 했다는 이유다.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표결과 실제 탄핵심판을 진행할 때의 탄핵 사유가 달라졌다면 탄핵소추안을 재의결해야 하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하지만 대다수 법학자는 탄핵 사유를 법리적으로 재정리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상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탄핵심판은 본질적으로 징계 재판이고 헌법 위반 여부를 최우선으로 다룬다. 파면을 결정하는 데 내란죄 성립 여부 판단이 정 필요하면 헌법재판소가 적절한 결정을 내리면 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소추위원장이었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인사다.

그런데도 ‘사기탄핵’을 주장하는 건 지지층이 반발하면서 결집할 수 있는 소재를 계속 던져주기 위한 계산으로 보인다. 검사와 판사 출신으로 충분한 법적 전문성을 가진 인사인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은 ‘헌법재판소를 없애자’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가 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을 불러다놓고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각하하지 않고 변론한다면 위법”이라며 “저항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했다. 극우 지지층이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결론을 내놓을 경우 실력 행사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여당이 조성하고 있다.

무슨 생각일까? 탄핵은 이미 과거에 경험한 바 있다. 어차피 당분간 회복이 어려운 중도는 포기하고 극우 지지층을 발판으로 삼아 똘똘 뭉쳐 버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계산이 아닐까 싶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상대의 실패에 기대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황교안 체제’의 극우적 자유한국당도 문재인 정권의 실패를 파고드는 ‘김종인 매직’에 힘입어, 이후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집권에 이를 수 있지 않았는가?

이런 계산법의 존재는 지금의 보수 정치가 국가, 헌법, 사회 안정보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나 회복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폭로한다. 보수 정치는 너무나도 간편하게 남들에게 ‘반국가세력’ 등의 딱지를 붙여왔는데, 이제 보시라. 가장 반국가적이고 위헌적인 일을 거리낌 없이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저들의 ‘어부지리’가 더는 불가능하도록

이제 이렇게 질문해보자. 이런 세력이 도대체 왜, 어떻게 집권한 것인가? 불법 계엄선포와 내란사태는 어느 한순간에 상대를 잘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게 실제 누구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도 잘 모른 채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앉히는, 이런 민주주의의 유효기간이 이제 끝났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와 탄핵, 조기 대선만큼 중요한 게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이라는 거다. 다시, 어떤 민주주의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 역사는 결국 반복되리라는 예고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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