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이 심상찮다. 적어도 세 가지 지점에서 최고위층 권력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언론 브리핑에 세관 관련 내용을 빼라는 외압과 관련한 것이다.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은 국외에서 필로폰 밀반입을 시도하던 일당을 수사하던 중 인천세관 직원이 연루됐다는 단서를 잡았다. 수사팀은 이 내용을 포함해 수사 진행 상황을 언론에 브리핑하려고 했다.
수사팀은 당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소통한 직후 영등포경찰서장이 ‘용산에서 사건 내용을 알고 있고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브리핑 내용에서 세관 관련 내용을 뺄 것을 지시하면서 서울경찰청 중심으로 외압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수사지휘라인도 아닌,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 조병노 경무관이 당시 영등포서 형사과장 백해룡 경정에게 전화를 걸어 며칠 뒤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는 취지로 압박했고, 결국 보도자료에서 세관 관련 대목이 완전히 빠진 상태로 브리핑이 연기됐다는 거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훌륭한 성과”라며 치하한 바도 있는 수사다. 그런데도 서울청의 외압이 있었다고 하면 정권 차원의 ‘관세청 구하기’ 작전이 가동된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야당 좋은 일 할 수 없다’는 언급도 경찰 내부에서 자체 생산된 것으로 보기엔 어색하다. 외부에서 주입된 논리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조병노 경무관은 ‘이종호 녹취록’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공개된 녹취록에서 조병노 경무관을 언급하며 승진을 모색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는데, 이 역시 이 사건과 최고위 권력과의 연결고리를 가리키는 단서처럼 느껴진다.
이종호 전 대표가 무슨 수단으로든 승진시켜주려 했던 조병노 경무관은 앞서 사건에 대한 외압 의혹이 알려지면서 도리어 징계받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관련 사실을 확인한 윤희근 청장이 직접 조병노 경무관에 대한 감찰 및 징계를 추진한 것인데,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는 놀랍게도 조병노 경무관을 불문 처분했다. 지난 5년간 고위 경찰에 대한 불문 처분은 이게 유일하고, 전체 의결 사안 중 불문 결정은 5%에 불과하다. 최고위 권력의 개입 가능성을 의심해볼 만한 두 번째 포인트인 거다.
결국 윤희근 청장은 직권 경고조치를 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는데, 최고위 권력에 의한 외압 의혹이 사실이라면 서울경찰청은 명확히 알았던 외압의 고리를 윤희근 청장은 까맣게 몰랐다는 게 된다. 김광호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정권 초기 경찰청장 유력 후보군으로 분류됐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에 대해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 처리하겠다”는 ‘충성 발언’을 한 일이 있는 인사다. 윤희근 청장은 ‘패싱’당했던 것일까?
의혹은 영등포서 형사과장이던 백해룡 경정이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으로 좌천되면서 정점을 찍는다. 청문회에 출석한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는 인사 사유에 대해 두 가지를 언급했다. 첫째는 공보규칙 위반이다. 둘째는 서장과 경찰서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검사에 대한 직무배제 및 회피를 요청했다는 이유다. 백해룡 경정의 검사에 대한 직무배제 및 회피 요청은 검사가 관세청 등에 대한 압수수색 신청을 두 차례 불청구 했기 때문이다.
이러면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검사는 왜 영장 청구를 두 번이나 거부했나? 둘째, 그런 이유로 영등포서 형사과장을 지구대장으로 보내는 것은 일반적인가? 반대로 수사 외압이라는 의심을 살 행동을 한 인사들은 고속 승진 코스에 올라탔다. 여기가 최고위 권력의 개입을 의심할 만한 세 번째 포인트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물론 마약 수사에 대한 최고위 권력의 외압 행사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그러나 윗선의 눈치를 보며 권력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수사기관의 행태가 투명하게 드러난 때가 또 있었나 싶은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제3의 장소에서 검찰 조사를 받은 게 대표적 예다.
‘총장 패싱’ 논란을 부른 검찰 조사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권력의 대응이 불가피한 시점에 이뤄졌다. 영부인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정권 초기부터 나왔지만 대통령은 계속 외면해왔다. 하지만 총선에 참패해 특검을 앞세운 야권의 공세가 거세지는데, 전당대회마저 ‘김건희 여사 메시지’ 논란으로 치른 상태로 이런 대응을 계속할 순 없다. 이례적 형태의 검찰 조사는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고, 그렇기 때문에 조사 일정과 방식에 대한 주도권을 김건희 여사 쪽이 가질 수 있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조사까지 이뤄졌으니 수사 결론도 곧 나올 거다. 대통령실이 이 시점에 제2부속실 설치를 공식화한 것은 이런 맥락과 묶어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일종의 ‘중간 정리’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수사 결과는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검찰 조사를 받은 끝에 결론도 나왔고, 재발방지 대책도 취했다. 묵은 숙제를 완전히 해소했다’고 주장하며 논란을 축소해보려는 거다.
의도가 어떻든 제2부속실 설치가 결과적으로 한국 정치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다. 보수언론은 제2부속실 설치를 통해 이뤄야 할 일 중 하나로 비선 논란 극복을 꼽고 있다. 가령 <중앙일보>는 2024년 7월31일 사설에 “무엇보다 제2부속실 출범에 앞서 대통령실 내의 ‘여사 라인 인사’들에 대한 신속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 기존의 ‘배우자팀’에 코바나컨텐츠 출신 인사 등이 포진해 있었던 걸 지적하며 “김 여사의 지인이나 측근만이 아니라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공직자들도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2부속실 설치로 이런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당연히 긍정적 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같은 날 “대통령실은 가급적 최소 인원을 배정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 여사를 보좌하고 있는 ‘배우자팀’ 4, 5명에 책임자로 제2부속실장을 두는 식”이라고 썼다. 이런 식이면 제2부속실 설치는 보수언론의 기대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채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여전히 문제라지 않느냐’는 적반하장식 볼멘소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실 제2부속실 설치는 이미 많이 늦었다. 앞서 ‘이종호 녹취록’ 등에서 보듯 김건희 여사 주변을 둘러싼 의혹들은 뭔가를 예방해야 할 단계가 아닌, 수사 대상이 돼야 할 단계에 이미 진입한 상태다. 정권 초기에 제2부속실 설치 등을 통해 대통령 부부 주변 인사들에 대한 엄중한 관리를 진행해야 했다. 이제 와서 김건희 여사 이슈를 하나 마나 한 검찰 조사와 제2부속실 설치 정도로 수습하겠다는 건 안일한 생각이다.
대통령실의 제2부속실 관련 입장 표명은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간의 비공개 90분 회동이 진행된 날 나왔는데, 두 사람이 김건희 여사 이슈에 대해서도 무언가 대화를 나눴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야당이 제기하는 ‘김건희 특검’과 ‘8명의 이탈표’ 같은 문제까지 언급됐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두 사람의 독대에 언론이 주목한 포인트는 정점식 정책위의장 교체 문제다. 당내 친윤석열계가 정점식 의장의 교체를 막는 거로 한동훈 대표 흔들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파다했다. 그런데 한 대표 쪽 설명에 의하면 대통령은 ‘당직 개편은 당대표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한 대표에게 유리한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한 대표는 모든 당직에 대한 전면 개편에 착수할 태세다. 대통령의 지지(?)를 근거로 한동훈 체제를 안정화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셈이다.
그러나 반대쪽에선 대통령의 생각을 다르게 본다. 대통령실과 친윤계는 “당 대표가 됐으니 이 사람 저 사람 폭넓게 포용해 한 대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앞세웠다. 정점식 정책위의장을 교체해 최고위원회 5대 4 구도를 뒤집는 건 안 된다는 뜻이라는 거다.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도 한동훈 대표와 만찬 자리에서 개인 차원의 조언을 전제해 정점식 의장 유임을 권했다고 한다. ‘독대’가 짧은 ‘봉합’에 그칠 것임을 시사하는 정황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협력 관계를 근본적 차원에서 뒤흔들 변수는 특검이다. 한동훈 대표는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해 ‘제3자 추천’을 전제로 한 특검법 발의를 약속했는데, 전당대회가 끝나고 나니 당내 합의 필요성과 원외 대표의 한계 등을 핑계로 후퇴하는 듯한 모양새다. 채 상병 사건은 ‘이종호 녹취록’이 등장하면서 김건희 여사와의 연관성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됐다. 용산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 대표가 독자적으로 특검을 추진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 된 거다.
특검의 문이 열리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앞서 인천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은 ‘제2의 채 상병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또 다른 특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세상 만물에서 범죄의 가능성을 봐야 하는 검사 출신인 한동훈 대표의 눈에도 이런 사정은 훤히 보일 것이다. 언제까지나 후퇴한 채로 있을 순 없다. 결국 시점의 문제일 뿐이라는 거다. 일시 봉합에도 용산의 시계는 계속해서 돌아가게 돼 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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