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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맞춤당’ 민심과는 점점…

‘당권·대권 분리 원칙’ 깨뜨리는 민주당헌 제25조 개정… 원조 친명 ‘7인회’ 김영진, 우상호 전 의원 등 ‘우려’
등록 2024-06-14 13:31 수정 2024-06-20 01:5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6월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에게 발언을 권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6월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에게 발언을 권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에 출마하려는 당대표는 1년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당헌 제25조에 예외 조항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2024년 6월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의결했다. 추가된 예외 조항에는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당무위원회 의결로 사퇴 시한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개정안은 6월12일 당무위원회를 통과한 뒤 6월17일 당 중앙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1인 보스 정치’ 개혁의 역사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당헌 개정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맞춤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원래 당헌대로라면 이 대표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표직을 연임할 경우 2026년 3월 당대표에서 물러나야 2027년 3월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다. 2026년 6월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이 대표가 공천권 행사 등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당헌이 개정되면 2026년 6월에 열리는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치를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당 장악력이 그만큼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이 ‘위인설법’(특정인을 위해 법을 바꾼다)이라는 비판을 받는 까닭이다.

특히, 해당 당헌에 담겨 있는 ‘당권·대권 분리’ 원칙은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정치권이 당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유지해온 전통이라는 점에서 여당은 물론 민주당 안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최근 출간한 책 <민주당 1999-2024>에서 당권·대권 분리의 역사적 과정을 되짚은 우상호 전 민주당 의원은 이러한 당헌 개정 움직임을 앞장서 비판하고 있다. 그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대선에 도전할 사람이 당대표까지 맡게 되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대선 경선의) 룰을 바꾸거나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을 요직에 발탁하는 방식으로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논란이 오랫동안 있었다. 이러한 공정성 시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당내 합의를 통해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공정성을 해쳐가면서까지 (개정을)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조 친명계(친이재명계) ‘7인회’ 멤버인 김영진 민주당 의원도 이례적으로 공개적인 비판에 나섰다. 그는 6월11일 시비에스(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오해 살 일을 굳이 왜 하느냐”며 “민주당의 당권·대권 분리를 위한 ‘1년 전 사퇴’ 조항은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합의와 함의가 있는 조항이라 위임된 권력인 최고위원 한두 명의 강한 의견으로 수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6월12일 페이스북에 “1년 전 당권·대권 분리 예외 조항은 불신을 자초하는 일”이라며 “왜 하필 지금인지 모르겠다”고 썼다.

한국 정치에서 당권·대권 분리 원칙은 역사가 깊다. 이 원칙의 근간인 ‘당내 민주주의’의 필요성은 이른바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시대’가 막을 내리던 시점인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했다.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보스’ 한 명이 당을 장악한 채 손쉽게 대선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돼서도 당 총재직을 겸임하며 공천 등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던 시대를 끝내자는 개혁적 움직임이 그 출발점이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의 소장파 의원들인 이른바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을 중심으로 이러한 정풍 운동이 벌어졌고, 2001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내려놓으며 개혁의 물꼬를 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민의힘은 원칙 유지하기로

이를 발판으로 대선 후보와 당대표를 분리하자는 ‘당권·대권 분리’ 요구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대선 후보가 당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고 대선 경선을 치르면 결과적으로 다른 대권 도전자들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의원들 입장에서도 ‘줄서기’를 해야 하는 리스크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도 “대선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본인이 선거 관리와 집행의 역할을 다 하게 되는 셈이다. 대선 경선의 공정성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러한 이유로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에서도 오래전부터 당헌을 통해 대선 후보의 당대표 사퇴 규정을 명시해왔다. 당권·대권 분리 요구가 먼저 터져나온 것은 민주당이었지만 이를 당헌에 먼저 못박은 것은 국민의힘이다.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은 2005년 박근혜 대표 시절 ‘차기 대통령 출마자는 대선 1년6개월 전까지 모든 주요 당직(상임고문 제외)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규정을 당헌으로 확정했다. 이 규정을 직접 만든 것은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혁신위원장이었다. 이를 받아들인 박근혜 대표는 이 당헌에 따라 2006년 당대표직에서 물러났고 결국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에게 패했다.

민주당이 당권·대권 분리를 당헌에 명시한 것은 2010년에 와서였다. 2000년대 초반 ‘천·신·정’이 정풍 운동을 통해 해당 이슈를 선점했지만 이후 당이 쪼개지고 합쳐지는 격동기를 거치면서 명문화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2010년 10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주자들 사이에서 당권·대권 분리 논쟁이 벌어졌고, 당시 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1년 전 사퇴’ 규정이 담긴 당헌 개정안을 표결에 부쳐 해당 규정이 명문화했다.

그 이후로도 민주당에서는 해당 규정을 놓고 논쟁이 반복됐지만 원칙을 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민주당의 이번 당헌 개정이 ‘이재명 맞춤형’이라는 비판을 넘어 당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오랜 전통과 대선 경선의 공정성을 허물어뜨린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국민의힘의 움직임과도 대비된다. 최근 국민의힘에서도 안철수 의원 등 일부 당권주자를 중심으로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고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국민의힘 당헌·당규개정특별위원회는 6월12일 원칙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당내 민주주의 외면하는 ‘내로남불’

이런 비판 속에서 당헌 개정을 추진하더라도 실제로 이 대표가 이를 발판으로 대선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가 당 장악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대선 경선이 치러진다면 다른 당내 경쟁자를 압도할 가능성은 커진다. 그러나 중도층의 표심을 잡아야 하는 본선에서는 이러한 선택이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장은 “당원들의 투표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라며 “이 대표가 윤석열 정부의 불공정함을 강조하면서 본인은 당내 민주주의를 외면한다면 내로남불이 될 수 있다. 이는 결국 민심과 괴리되는 방향이기 때문에 본선에서는 불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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